새벽기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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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새_베드로의 삶(5) 통곡과 회개를 가능케 한 그것 _ 눅22;54-62
- 느헤미야강
- 2017-0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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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415 고난주간특별새벽기도회 / 베드로의 삶(5)
통곡과 회개를 가능케 한 그것- 말씀과 엠블레포
누가복음 22:54~62
오늘은 '베드로의 배반과 회개' 의 내용입니다. 이 사건이 베드로의 신앙고백 이후에 되어진 사건입니다. 놀라운 신앙고백을 했어도 자기교만에 빠지면 얼마든지 넘어질 수 있음을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고난당하시고 죽으실 것을 말씀하시자 베드로는 주님이 어디를 가시든지 죽음의 길도 가기를 각오하였다고, 절대 예수님을 배반하는 일은 없을 거라고 호언장담을 했었습니다. 하지만 작은 여자아이 앞에서 세 번이나 예수님을 모른다고, 세 번째는 저주까지 하며 부인했습니다.
본문 55절~60절의 내용입니다. 실수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컸습니다.
희한한 것은 배반자였던 베드로가 후일 초대 예루살렘교회의 기둥이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많은 기적을 행하며 십자가 복음을 전하다 순교까지 했습니다. 예수님 편에서 생각해도 베드로 편에서 생각해도 놀랍습니다. 어떻게 예수님은 그런 배반자를 계속 수제자로 인정하셨단 말인가? 또 베드로는 철저히 실패한 사람인데 어떻게 위대한 사도로 재기할 수 있었을까요? 그 이유가 본문 62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베드로가) 밖에 나가서 심히 통곡하니라" 이것은 한 마디로 '회개'했다는 겁니다.
예수님은 회개하는 사람을 얼마든지 받아주십니다. 기독교 신앙은 회개로부터 시작하고, 회개를 반복함으로 신앙이 성숙해집니다. 그런 점에서 신앙 생활에서 회개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습니다.
그렇다면 ‘회개란 무엇인가?’ ‘어떻게 할 수 있는가?’ ‘회개의 결과가 무엇인가?’ 를 아는 것은 너무나 중요합니다.
[1] 회개의 의미
베드로가 통곡한 것은 단순히 눈물만 흘린것이 아닙니다. 전 인격적인 변화로 나가는 참된 '회개'였습니다. 회개라는 말은 신구약 성경 도처에 등장합니다. 구약 히브어로는 '슈브', 신약 헬라어로는 '메타노이아'라는 단어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두 단어 모두 '방향전환‘을 의미합니다. ’죄악의 길에서 돌아서서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것은 단순한 '후회'와 전혀 다른 겁니다. 후회는 죄악의 길을 가다가 그냥 속상해 하고 슬퍼하는 것으로 그칩니다. 이 두 가지의 차이를 분명하게 보여주는 것이 베드로와 가룟 유다의 비교입니다. 베드로는 진정한 회개를 통해 죄에서 돌이켜 예수님께 돌아왔습니다. 반면에 가룟 유다는 예수님이 체포된 후 후회와 죄책감에 시달렸지만 예수님께 돌아오지 못하고 자살하고 말았습니다. 이렇게 비교해 보면 '회개'와 '후회'는 하늘 땅 차이입니다. 베드로는 진정한 회개를 통해 새 사람 되어 위대한 일꾼으로 쓰임 받았지만, 가룟 유다는 영원히 멸망 받고 말았다는 사실입니다.
[2] 회개의 과정
어떻게 회개할 수 있겠습니까? 베드로의 회개를 살펴보면 알 수 있습니다. 60절~62절 보면, "닭이 곧 울더라 주께서 돌이켜 베드로를 보시니 베드로가 주의 말씀 곧 오늘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하심이 생각나서 밖에 나가서 심히 통곡하니라"
여기에 몇 가지 중요한 내용이 나옵니다. 닭 울음소리, 예수님의 시선, 베드로의 눈물과 고백 등입니다.
① 닭 울음소리(말씀) : 닭 울음소리는 곧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왜냐하면 그 소리를 듣고 주님의 말씀을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 말씀이 죄를 깨닫게 한 겁니다. 사람이 자신의 죄를 속속들이 깨달으려면 말씀의 역사가 있어야 합니다. 이때 말씀과 더불어 성령께서 역사하게 됩니다.
* 히4:12~13 →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나니 지으신 것이 하나라도 그 앞에 나타나지 않음이 없고 오직 만물이 우리를 상관하시는 자의 눈앞에 벌거벗은 것같이 드러나느니라”
말씀은 마치 사람의 깊은속까지 감찰하며 죄를 깨우쳐줍니다.
② 예수님의 시선(용서와 사랑) : 닭 울음소리가 들리는 순간 예수님께서 뒤를 돌아보셨습니다. 그분의 시선이 비수처럼 베드로의 심령에 꽂혔습니다. 그때 주님의 시선이 어떤 모습이었을까요? 책망과 증오의 눈길이었을까요? 미리 예수님께서 예언했던 것으로 보아 그건 아닐 겁니다.
눅22:31~31 보면, "시몬아, 시몬아, 보라 사단이 밀 까부르듯 하려고 너희를 청구하였으나 그러나 내가 너를 위하여 네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기도하였노니 너는 돌이킨 후에 네 형제를 굳게 하라"
주님은 미리부터 베드로를 위해 기도하셨고, 배반할지라도 돌아오면 얼마든지 용서하고 사랑하실 생각을 하고 계셨습니다. 더 나아가 사도의 사명을 다시 맡겨주실 뜻을 갖고 계셨던 것입니다.
그러나 더 주목하게 되는 말씀이 있습니다.
‘주께서 돌이켜 베드로를 보시니’(61절) 할때 ‘보시니’가 (엠블레포)라는 단어입니다. 그리고 요1;42절 ‘데리고 예수께로 오니 예수께서 보시고 이르시되 네가 요한의 아들 시몬이니 장차 게바라 하리라 하시니라 게바는 번역하면 베드로라.’안드레가 예수님을 만나고 이어 베드로를 예수님께 소개시킬 때의 장면입니다. 42절 예수께서 보시고할 때 ‘보시고’. 이 단어가 역시 ‘엠블레포’입니다.
예수님께서 처음 베드로를 보시고 말씀하시기를 네가 요한의 아들 시몬인것 내가 안다. 그러나 앞으로는 게바로 살게 될 거야. 반석으로 살게 될거야. 지금까지는 네가 고기를 낚는 어부로 살아왔지만 앞으로는 영혼을 구원하는 사람으로 살게 될거야 라는 말씀입니다. 그런 선언을 하시면서 베드로를 보신 예수님의 눈빛은 어떤 눈빛이었을까요? 거기에는 기대감이 있었고, 설레임이 있었을 것입니다. 다정한 눈빛, 따듯한 눈빛, 사랑스러운 눈빛이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눅22;61절의 베드로가 주님을 모른다 했을때 보시니 했던 예수님의 눈빛이나 처음 만났을때 보시니 했던 그 눈 빛이나 동일하게 ‘엠블레포’라는 단어를 사용했다는 것입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을 모른다고 부인했을때 마주친 그 예수님의 눈빛이, 처음 자신을 보시고 너는 장차 게바로 살게 될거야 라며 보내주셨던 기대감과 설레임 가득한 눈빛이었고, 따듯함과 사랑의 눈빛 그대로였다는 것입니다. 나는 모른다 했는데 그런 나를 지켜보시는 예수님의 눈빛과 기대는 여전히 한결같으셨다는 말입니다.
내가 실패하고 주저앉아 어찌할 바 모를때에, 도대체 하나님은 계시기나 한거야 라며 한숨쉴때에도 나를 보시는 그 눈빛은 한결같으십니다.
내가 너를 잘 안다. 내가 너를 사랑한다. 바로 그 눈빛이었던 것입니다. 베드로는 여기에 마음이 무너졌고 예수님께서 네가 나를 세 번 모른다 할 것이다 라는 말씀이 생각난 것 보다 더 가슴이 무너지고 눈물 짓게 했던 것은 실패한 자신을 향한 한결같은 사랑의 눈빛 때문이었습니다.
주님의 그 눈빛은 바로 우리를 향한 눈빛이기도 합니다.
③ 베드로의 고백과 변화(통곡과 회개) : 베드로는 닭 울음소리와 예수님의 시선에 담긴 말씀과 사랑에 그만 눈물이 왈칵 쏟아지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차마 그곳에 머물지도 못하고 밖으로 뛰쳐나간 겁니다. 실컷 목을 놓아 통곡하며 울었습니다. 그리고 결단하고 새롭게 변화됩니다. 그래서 다시 예수님을 따르게 되었습니다. 물론 이후에 예수님의 부활과 성령강림을 체험하면서 더욱 더 변화되고 견고한 신앙으로 세워지게 됩니다.
우리도 마찬가지 베드로처럼 늘 넘어지고 쓰러집니다. 때로는 세상의 유혹 앞에 넘어지고, 때로는 세상의 고난 앞에 굴복해 버립니다. 주님을 배반하고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해드릴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그 다음입니다. 여러분, 이 말씀을 잘 음미해 보십시오.
"사람이 죄를 지어서 망하는 게 아니다. 회개하지 않아서 망하는 것이다." 만일 죄를 지으면 멸망한다면 저도 여러분도 모두 다 이미 멸망했을 겁니다. 우리는 다 죄인입니다. 십자가 대속을 믿음으로 죄 사함 받았지만 여전히 죄성을 안고 있습니다. 죄 사함을 받았다는 것은 죄책에서 해방되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지 죄성에서 완전히 벗어났다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에게는 죄의 관성이 남아있어서 옛 사람의 모습이 불쑥 불쑥 나옵니다. 이때 중요한 것은 속히 깨닫고 회개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 신앙이 새로워지고 더 성숙해질 수 있습니다. 이를 위해 우리는 늘 영적으로 깨어 신앙 생활을 해야 됩니다. 그럴 때 영적으로 민감하고 작은 죄나 실수라고 즉시 깨닫고 돌아서게 되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 말씀을 묵상하고 기도함으로 성령 안에 있어야 합니다. 날마다 주님의 십자가 사랑을 바라봐야 합니다. 그러면 혹시 어긋난 길을 가더라도 금세 회개함으로 회복하고 더 좋은 신앙으로 발돋움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모쪼록 깨어 있는 신앙으로 작은 실수나 죄도 용납지 마고 늘 회개함으로 실패가 아닌 승리의 삶을 살아가시기를 축원합니다.
오늘은 고난주간중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깊은 어둠 가운데 계신 날입니다. 고난 주간은 십자가를 생각하는 시간은 맞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닙니다. 고난 주간은 십자가를 바라보되 회개하는 시간이어야 합니다. 십자가는 회개를 요구합니다. 예수님을 배반하고 인간 실패자로 끝장날 뻔했던 베드로! 그가 통곡하고 철저히 회개함으로 주의 은혜를 체험하고 승리했습니다. 저와 여러분도 늘 주님 앞에 엎드리고 회개함으로 늘 은혜가 풍성하고 승리하는 삶을 살아가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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