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기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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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112편 - 다테와 다비투르
- 느헤미야강
- 2017-0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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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112편은 111편의 내용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아마도 동일한 시인이 썼던 것 같습니다. 111편 10절 말씀을 구체적으로 112편 1절에서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 내용은 “할렐루야,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의 계명을 크게 즐거워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라는 것입니다.
111편 10절과 112편 1절은 동일하지만 다른 점은, 10절에서는 “그의 계명을 지키는 자는 다 훌륭한 지각을 가진 자”라고 한 반면, 1절에서는 “그의 계명을 크게 즐거워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라고 했습니다. 특히 앞 구절에서는 ‘지킨다’고 했고, 뒷 구절에서는 ‘크게 즐거워한다’고 했습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의 말씀을 지킨다는 것은 다른 말로 그분의 말씀을 즐거워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말씀을 즐거워하는 사람이 계명을 지킬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종종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며 살아야지 하며 맹세하곤 합니다. 하지만 맹세를 했음에도 지키기란 쉽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지키겠다고 생각하고 지키는 사람은 정말 하나님의 말씀을 즐거워하는 사람입니다. 그분의 말씀을 즐거워하지 않고서는 지키기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또한 10절에서는 ‘훌륭한 지각을 가진 자’라고 했다면, 1절에서는 ‘복이 있다’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훌륭한 지각을 가진 자란 곧 복 있는 자라 말할 수 있습니다.
이어서 112편은 그분의 말씀을 즐거워하며 지키려는 훌륭한 지각을 가진 복된 자가 어떤 복을 받는지 2절부터 말씀합니다.
“그의 후손이 땅에서 강성함이여 정직한 자들의 후손에게 복이 있으리로다. 부와 재물이 그의 집에 있음이여 그의 공의가 영구히 서 있으리로다.”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는 자들에게 부와 재물이 있고, 그의 후손들이 복을 받는다고 말씀합니다.
그렇다면 그분의 계명을 지킨다고 했을 때, 과연 하나님의 말씀을 완전하게 지킬 수 있는 사람이 있습니까? 어떤 부분은 지킬 수 있는 반면 또 어떤 부분은 지키기 쉽지 않는 것도 있습니다. 분명 하나님을 경외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즐거워하면서도 우리는 다 지킬 수 없습니다. 물론 하나님께서도 이것을 알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하나님의 계명을 다 지키기 때문에 이런 복을 주시는 것이 아닙니다. 비록 다 지킬 수는 없지만, 또한 어떤 것은 지키기도 하고 또 어떤 것은 지키지 못하는 것도 있지만 그럼에도 지키려고 하는 사람들에게 복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시편112편에서는 하나님을 경외한다는 또 다른 표현으로 ‘정직한 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한다는 것은 하나님앞에서나 사람앞에서 정직한 사람입니다. 하나님을 의식하고 살면 정직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경외한다, 계명을 지킨다. 정직한 사람이 된다는 것이 다 후손이 땅에서 강성하고 부와 재물(구약적 축복개념)의 복과 연결되어 있는 말씀입니다.
시편112편은 하나님을 경외한다, 계명을 지킨다, 정직한 자를 동일시하되 은혜를 베풀고 꾸어주는 자(5절), 즉 구제와 나눔(9절) 역시 같은 선상에서 보고 있습니다. 우리는 소유해야 복이라고 생각하나, 하나님은 나눌 때 복으로 채우신다고 말씀합니다. 그러니 부자가 된다고 나누는 것이 아니라 나눌 때 부하게 된다는 뜻입니다.
종교 개혁자 마틴 루터는 사람이 베풀어야 할 이유에 대해 한 비유를 들어 얘기한 적 있습니다.
오스트리아에 한 수도원이 있었는데, 과거에 그 수도원은 매우 부유했고, 가난한 사람들에게 많이 베푸는 동안에는 부를 유지했습니다. 그런데 구제를 대폭 줄인 다음부터는 궁핍하게 되어 오늘날까지 그 상태로 남아 있습니다. 한 가난한 수도사가 그곳에 가서 구제를 청하였다가 거절당했습니다. 그 사람은 하나님을 위한 구제를 왜 거절하느냐고 물었을 때, 수도원 문지기는 수도원이 가난해졌기 때문이라고 대답했습니다. 이 말을 들은 수도사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당신들이 가난해진 이유가 바로 그겁니다. 과거에 이 수도원에는 두 형제가 있었는데, 한 사람의 이름은 다테(주다)였고, 다른 한 사람의 이름은 다비투르(네게 주어질 것이다)였습니다. 그런데 당신들이 전자를 쫓아내자, 후자가 제 발로 걸어 나간 것입니다.”
우리는 마틴루터가 한 수도원의 비유를 들어 베풀어야 하는 이유에 대해 우리에게 말해 준 것은 아주 적절하다 할 수 있습니다. 후히 베풀고서 빈손으로 전락하는 일은 없다고 마틴 루터는 말했습니다. ‘다테’할 때, ‘다비투르’ 된다는 것을, 즉 줄 때, 네게 주어질 것이라는 것을 생각하며, 베푸는 삶을 통해 시인이 말씀한 복을 받는 은혜가 있길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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