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기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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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99편 - 즐거워하라, 떨라

  • 느헤미야강
  • 2017-0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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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99편과 97편은 동일하게 여호와께서 다스리시니로 시작합니다.

971절은 여호와께서 다스리시니 세계는 즐거워하고 기뻐하라.

991절은 여호와께서 다스리시니 만민은 떨 것이라

똑같이 하나님께서 다르시시는데 97편은 즐거워하라, 99편은 떨라 합니다.

이 즐거워함과 떠는 것은 서로 상반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다스리심에 대한 서로 다른 반응입니다.

 

시편2;11은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떨며 즐거워할지어다 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기쁨은 경박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다스림에는 기쁨을 수반하지만 한편으로 두렵고 떨림을 포함합니다.

하나님의 다스림에는

기쁨만 있고 두려움과 떨림이 없거나,

두렵고 떨림만 있고 즐거움이 없으면 안됩니다.

사랑하기 때문에 두렵고 떨림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아는 사람은 이 두 가지고 균형을 이루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왜 하나님의 다스림안에 즐거워하고 떨러야 할까요?

시편 99편은 세 부분으로 나뉘어 말씀하고 있습니다.

99편은 핵심 구절과 단어로 그는 거룩하시도다.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언급합니다.

3,5,9절 각 끝부분에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말씀합니다.

거룩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사람이 거룩하다는 것과는 다른 차원입니다.

사람이 선하고 거룩하다 할때는 도덕적이며 상대적인 가치에 불과합니다.

누가 조금 더 선하냐 아니냐의 %의 차이만 있을 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전혀 다른 차원에서의 거룩함을 말합니다.

하나님께 쓰임받으면 물 그릇도 거룩하고, 장소도 거룩하여 성전, 성소라고,

그리스도인을 거룩한 무리라고도 합니다.

여기에서 거룩은 구별됨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거룩하다는 것은 피조물, 인간과 세계와는 구별된 분임을 뜻합니다.

어떻게 세상, 인간과 하나님께서 구별되실까요?

 

첫째, 1-3절은 하나님이 광대하시다는 면에서 구별됩니다.

인간은 광대하지 못합니다. 위대하고 크고 높으신 분입니다.

사람이 가벼이 볼 수 있는 분이 아닙니다.

사람이 위대하다고 칭송받아도 누군가는 깎아 내립니다.

과거인물도 권위도 깎아 내립니다.

러나 시대를 불문하고 하나님은 여전히 광대하고 위대하십니다.

그것은 훼손되지 않습니다.

자연의 놀라운 신비를 보아도, 사람이 태어나고 자라는 모습,

생명주시고 자라게 하시는 모습만 보아도 크시고 위대하심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 하나님이시기에 떨고 기뻐해야 합니다.

 

둘째, 4~5, 하나님은 완전히 공의로우신 차원에서 구별되시는 분입니다.

모든 종교에는 불의, 부정한 신의 모습이 있습니다. 변덕스럽습니다.

로마의 신화속의 신들을 보아도, 샤머니즘의 신도 잔인하고 사악하며 인간을 저주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공의는 차원이 다릅니다.

이스라엘에게 의로운 법을 주셨고,

이 법을 실패할때에는 법을 통해 죄인인 것을 알게 하십니다.

인간은 다른 사람에게 공의를 요구하면서도 정작 자신은 공의롭지 못합니다.

 

본문의 야곱에게 하나님을 공의를 베푸셨습니다.

지극히 약하고 속이기를 좋아하는 자 야곱을 들어서

이스라엘의 언약의 족보되게 했습니다.

그 가정을 통해 민족의 지파를 형성하게 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부족함과 교활함과 속이기를 좋아하는 그 것에 대해

하나님을 20년동안 무너뜨리고 다듬어 가셨습니다.

죄에 대한 책임과 댓가는 공의의 기준에서 만들어가셨습니다.

한없이 사랑하시는 분이지만 공의에 대해서도 분명한 분입니다.

그렇기에 즐거워해야하지만 동시에 두려워해야 할 분입니다.

그것이 우리와 구별되는 하나님의 거룩하심입니다.

 

셋째, 6-9, 은혜로우신 차원에서 구별되는 분입니다.

8절은 용서하시는 분으로 소개합니다.

하나님은 의로운 법을 주셨으나 감당하지 못했습니다.

그럼에도 용서하셨습니다.

모세는 80에 오직 가진 것은 막대기 하나와 빈털터리가 전부였습니다.

아론도 대제사장으로 부름받기 전에는 작은자에 불과했습니다.

사무엘은 자녀없는 까닭에 하나님께 서원하여 낳게 된 인생, 젖뗀 후

실로의 성전에서 길려진 존재였습니다.

 

모세, 아론, 사무엘 다 약하고 부족한 인생이었지만

하나님의 손에 붙들인 인생이 되었고

그들이 기도할때마다 응답해주셨습니다.

은혜 아니면 설 수 없는 존재입니다.

 

우리와 구별되는 하나님의 성품인 거룩함, 그 분의 다스림 가운데 머물게 되면

한 없이 즐거워하지만 또한 두렵고 떨림이 마땅한 우리의 태도입니다.

크고 광대하신 하나님, 완전한 공의를 이루시는 하나님,

은혜로 세워주시는 그 하나님앞에서

즐거워함으로 자유하시되, 모든 것 아시고 지켜보시는 하나님

너무 크고 놀라워 두렵기까지하신 하나님을 함께 고백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다스림앞에서 우리가 가져야 할 태도는 즐거움과 떨림,

이 두가지는 늘 균형을 이루어야 할 성도의 자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