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기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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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토새-큰일은 작은 일부터 - 시편78:70-72

  • 느헤미야강
  • 2017-0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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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0225 자녀위한 새벽기도회

 

큰일을 하려면 작은일부터 잘 감당해야 합니다.

- 3가지 실천사항: 성실하게, 탁월하게, 즐겁게

 

시편78:70-72

 

오늘 본문은 다윗의 이야기입니다. 다윗은 본래 일개 양치는 목동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목자로서 양치는 일에 성실했을 때 하나님은 마침내 그에게 이스라엘 민족을 기르는 나라의 목자가 되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그의 종 다윗을 택하시되 양의 우리에서 취하시며’(78;70).

양의 우리에서 취하시며 라는 말씀은, 그가 작은 일을 잘 감당했을때 하나님은 그에게 큰일을 맡기셨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작은일이 주어졌을 때 그 일을 어떻게 감당할까요?

 

1. 작은일에 성실해야 합니다.

 우리에게는 일반적으로 큰일로 보이는 일, 생색나는 일에는 열심이어도 작은 일에는 열심을 내지 못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하나님의 관점에서는 큰일과 작은 일이 따로 없다고 가르칩니다.

마태복음 25장에 나오는 달란트의 비유가 있습니다. 주인이 먼 나라로 떠나가며 맡긴 5,2,1 달란트는 매우 작은 것으로 느껴지지만 당시로는 어마 어마하게 큰 액수였습니다. 당시 금 한 달란트면 약 20년의 생계비에 해당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다섯 달란트면 100년을 살아갈 수 있는 액수입니다. 그러나 다섯 달란트를 맡은 종이 다시 그 다섯 달란트로 다섯 달란트를 남겼을 때 돌아온 주인이 어떤 칭찬의 말을 했습니까?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이 주인의 관점이 바로 하나님의 관점인 것입니다.

큰 일과 작은 일을 나누는 것은 사람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의 관점에서는 큰일도 작은 일이고 작은 일도 작은 일인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이일이 큰일인가 작은 일인가가 아니라 맡겨진 그 일에 대한 충성스러움 곧 성실성인 것입니다.

 본문의 71-72절을 다시 읽어보십시오. 하나님이 다윗을 택하신 이유가 양떼를 잘 돌보는 다윗을 지켜 보시고 그에게 이스라엘 민족을 기업으로 맡기셨다는 것입니다. 그랬더니 72절의 증언처럼 그는 양떼를 돌보던 때처럼 마음의 성실함으로 자기 민족을 돌보는 지도자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16:10의 말씀처럼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된자는 큰것에도 충성되다"는 말씀 그대로인 것입니다. 정말 중요한 것은 작은 일에서부터의 성실성입니다. 무엇보다 그리스도인들이 먼저 그렇게 살아야 할 줄로 믿습니다.

 

2. 작은일에 탁월해야 합니다.

 본문 72절에 보면 다윗이 자기 백성을 지도할때에 "그의 손의 능숙함으로"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사용된 능숙함이란 말은 "기술적으로" 했다는 말입니다. 대부분의 영어 번역은 'skilful'이란 표현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요즈음 말로 하면 전문성, 탁월함이란 말입니다. 그런데 다윗은 이런 전문성, 탁월함을 목동으로 양을 칠 때부터 발휘했다는 말입니다.

우리가 어떤 맡겨진 일을 감당할 때에 성실성과 함께 반드시 필요한 것이 바로 이 탁월성입니다. 성실하기는 한데 기술이 없다면 과연 일이 제대로 되겠습니까?

 여러분이 어떤 외상을 입어 외과의사의 수술이 필요한 경우를 만났을 때에 찾아갈 수 있는 의사 두분이 있는데 한분은 아주 성실하신데 기술이 전혀 없고, 또 한분은 전혀 성실하지는 않은데 탁월한 수술기술이 있다면 어떤 분을 찾아 가시겠습니까? 좀 성실성이 떨어져도 기술있는 의사를 찾지 않겠습니까? 두가지 극단적인 가정이지만, 성실성과 탁월한 전문성을 겸하고 있다면 가장 이상적일 것입니다.

 저는 그리스도인들은 바로 이 두 가지를 동시에 추구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성실하면서 그러나 동시에 탁월하게!--이것이 그리스도인들의 일처리의 자세가 되어야 합니다. 어디에서부터입니까? 작은 일에서부터 말입니다.

 

3. 작은일을 기뻐해야 합니다.

 다윗은 목동시절부터 맡겨진 양을 돌보는 작은 일에서부터 성실하게 그리고 탁월하게 일하는 모범을 보여 왔음을 살펴 보았습니다.

그렇다면 다윗은 이런 일들을 어떤 기분으로 감당했을까 하는 것입니다.

저는 의심의 여지없이 그가 즐겁고 기쁘게 감당했을 것이라고 믿습니다.

그 증거는 그가 남긴 엄청난 분량의 시편들이 그것들을 증명합니다.

그는 시를 쓰며 악기를 타면서 일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본래 사울왕이 다윗을 궁중으로 데려온 동기도 그가 지혜롭고 용맹할뿐 아니라 수금을 잘 타서 주변 사람들을 즐겁게 하는 재능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성경은 증언합니다.

 오늘의 본문 자체도 시편입니다. 잘 아시는 것처럼 대부분의 시편은 바로 다윗에 의하여 지어진 것들이고 그중에 상당한 부분은 그가 목동이었을 때에 지어진 것으로 보입니다. 그에게는 노동이 음악이었고 시였던 것입니다. 주께서는 목동 다윗이 즐겁게 양치는 모습을 보고 그가 동일한 즐거움으로 그의 민족을 목양할 것이라고 판단하시게 된 것입니다. 작은일에 즐거워 할수있는 사람은 큰일도 즐거워 할수 있는 것입니다.

 인류 구속의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도 소위 3년의 공생애가 있기전에 30년동안 그 아버지 요셉을 도와 목공실에서 성실하게 일하는 모범을 보여주셨습니다. 그가 목공실에서 성실하셨던 것처럼 십자가를 지시는 구속의 사역에도 성실하셨습니다. 그는 십자가를 향해 가시면서 "아버지께서 일하시니 나도 일하신다"고 고백하셨습니다. "때가 아직 낮이매 지금이 일해야 할 시간이라"고도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십자가의 고통의 절정에서 그는 "다 이루었다"고 말씀하실 수 있으셨습니다.

 성경 히브리서에서는 예수께서 이 십자가조차 즐거움으로 지셨다고 증언합니다. 그분이야 말로 성실하게 탁월하게 즐겁게 일하고 마침내 구속사역을 완성하신 것입니다.

그러면 그가 이루어 놓으신 구속사역의 결과로 우리가 구원을 받았다면 오늘 우리는 그의 제자답게 살고 일하고 있다고 고백할수 있을까요?

만일 우리가 예수를 구주와 주님을 영접하고 성령님의 도우심을 입는다면 무엇보다 우리는 그렇게 살고 일해야 마땅할 것입니다.

어떻게요? 성실하게, 탁월하게 그리고 즐겁게!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