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기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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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회 특별새벽기도회 -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 시편23;3, 출13;17-22
- 느헤미야강
- 2016-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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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117(목) 특별새벽기도회(시편23편)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시편 23;3, 출애굽기 13:17-22
양들의 생리중 하나가 양들을 제멋대로 버려두면 목초지의 풀을 밑둥이 초토화될때까지 뜯어먹고 자기끼리 싸우면서 그 땅을 항폐하게 만든다고 합니다. 목자의 인도가 없으면 양들은 가지 말아야 할 것 같은 길로만 계속해서 다니고, 같은 곳만 지나치게 짓밟는 습관에서 벗어나지 못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지혜로운 목자들은 양들로 하여금 새로운 길, 새로운 초장으로 이동시켜 병적인 습관에 집착하지 않도록 훈련시킨다고 합니다. 이것이 잘못된 길이고 나쁜길입니다. 그러므로 잘못된 길, 나쁜길의 반대는 옳은길, 바른길입니다. 그런의미에서 3절의 의의길은 ‘path of righteousness’가 아니라 ‘right path’입니다.
이 의의 길, 바른 길을 역사속에서 가장 잘 보여주는 말씀이 출애굽기입니다. 출13;17,18절을 보면 ‘이스라엘 백성이 바로에게 해방된후 하나님은 그들을 가나안까지 가까운 길 대신 홍해의 광야 길로 인도하셨습니다.’ 왜 그렇게 하셨을까요? 하나님의 길로 인도하시고자 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그 길이 의의 길입니다. 그렇다면 주의 양된 그의 백성들이 걸어야 할 의의 길은 어떤 길입니까?
1. 빠르거나 쉬운 길이 아닙니다.
출애굽기 13:17절에 보면 애굽을 떠난 이스라엘 백성이 블레셋 사람의 땅을 통과하면 가나안으로 쉽게 빨리 갈수 있는 가까운 길이라고 기록합니다. 오늘날 오늘날 자동차로 4-5시간이면 갈수 있는 길입니다. 당시에 걸어도 한달이면 갈수 있는 길인데 이 길 대신 홍해 남쪽 광야 길로 가면서 이스라엘은 40년을 방황해야 했던 것입니다. 우리의 사고 방식으로는 도무지 이해가 안되는 방법으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인도하신 것입니다. 그 이유는 첫째로, 불레셋 땅을 통과하려면 블레셋 사람들과 일전을 치러야 하는데 아직 이스라엘 백성에게 전쟁능력이 없다고 판단하신 것입니다.(17절) 둘째는 이런 과정을 통해서 자기의 백성이 순종하는 의로운 백성으로 훈련되는 것을 보고 싶어하신 때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 시대의 주의 백성들에게 가장 필요한 훈련입니다. 우리는 모두 너무 쉽고 빠르게, 편안하게,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무엇인가를 얻으려고 하지만 하나님의 이끄심에는 틀림이 없다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그래서 더딘 것 같더라도 정도를 걸으십시오.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그 길을 걸으십시오.
2. 궁극적으로 유익한 길입니다.
의의 길은 결코 쉬운 길이 아닙니다. 어려운 길이고, 고난의 길입니다. 그러나 우리를 유익하게 하는 길입니다. 자신과 하나님을 유익하게 하는 길입니다.
(1) 자신에게 유익한 길입니다. 시119:71절을 보면, “고난당하는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인하여 내가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나이다.” 67절에서는 “고난 당하기 전에는 내가 그릇 행하였더니 이제는 주의 말씀을 지키나이다.”고 했습니다. 광야의 40년 길은 이스라엘 백성을 의의 백성으로 훈련하기 위한 학습의 길이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여러움앞에서도, 고난의 길을 걸으면서도 찬양을 해야 합니다. 이 길이 의의 길이기 때문입니다.
(2) 하나님에게 유익한 길입니다. 주께서 우리를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 이유는 시편23;3절에, “자기의 이름을 위하여” 라고 노래합니다. 하나님 자신의 거룩한 명예를 위해서 그는 자기의 백성들이 의의 길을 걷기를 열망하십니다. 만일 인생을 쉽게 빨리 출세한 사람들이 다 천국에 간다면 천국은 사기꾼과 복권 당첨자들로 가득찰 것입니다. 그 곳이 천국일까요? 천국은 의의 나라요 거룩한 나라입니다. 이 나라의 통치자는 의로우신 여호와이십니다. 예레미야 23:6에 보면 “그 이름은 여호와, 우리의 의”라고 말합니다. 만일 의로우신 절대자 하나님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이 세상에서의 도덕적인 모든 주장들은 의미를 상실합니다.
의롭게 살아야 할 이유가 어디에 있습니까?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불의한 사회구조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의로운 삶을 열망하고 의로운 세상을 열망하는 것은 의로우신 하나님의 존재와 하나님의 의롭게 일하심을 믿기 때문이 아닙니까? 그래서 예수님도 의에 주리고 목마른자가 복이 있다고 가르치신 것입니다.의의 길은 때로 고난의 길이지만 결국은 우리를 유익하게 하는 길인 것입니다.
3. 여호와께서 인도하시는 길입니다.
의를 기뻐하시는 하나님은 의의 길을 걷는 자들을 인도하십니다. 이 길은 결코 빠른 길도 쉬운 길도 아닙니다. 고난의 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 길을 걷는 당신의 백성들에게 특별한 방법으로 함께 하십니다.
출13;21~22절을 보면, 낮에는 뜨겁고 밤에는 차가운 광야 길을 걷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낮에는 구름기둥 밤에는 불기둥으로 인도하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문제는 이사야의 증언처럼 “우리는 다 양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던 사람들” 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회개하고 도움을 구하는 순간 목자는 지체없이 우리에게 다가오시며 “나를 따르라”고 “내가 곧 길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제 다시 그의 인도따라 걷는 길, 이 길의 이름이 바로 의의 길인 것입니다.
이제 그분은 우리가 다시 길을 잃어버리지 않도록 주의 깊게 우리를 주목하며 인도하실 것입니다. 물론 이 길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친히 인도하시는 길이지만 하나님의 백성편에서 보면 여전히 단호한 결심을 필요로 하는 길입니다. 왜냐하면 이 길에 고난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출애굽기 13장을 보면 모세가 이 돌아가는 험한 길을 가야 할 이스라엘 백성들 앞에서 흥미있는 시청각 교육을 시연하는 모습을 볼수가 있습니다. 19절 말씀을 읽어보십시오. 그는 이 길을 떠나면서 요셉의 해골을 취한 것입니다. 그의 해골로 요셉의 마지막 유언의 부탁을 상기시키고 단호한 결심과 함께 떠나게 하려는 의도가 아니었습니까? 우리의 조상 요셉을 생각해서라도 우리는 이제 이 길에서 다시 돌이키면 안된다고 어떤 고난이 있어도 우리는 이 길을 끝까지 가야 한다고 부탁하고 싶어한 것입니다.
실망하실지 몰라도 하나님은 우리를 빨리 성공시키는 것에 관심이 없으십니다.하나님의 관심은 무엇입니까? 우리가 의로운 삶을 사는 것입니다. 거룩하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억지로 의의 길을 갈 수는 없습니다. 의의 길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래서 본문에 보면 우리를 의의 길로 인도하시기 전에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하신 것입니다. 영생의 눈이 열려야 의의 길이 보입니다. 하나님만이 목자임을 인정하는 사람만이 영혼이 소생되고 그런 백성만이 의의 길을 갈 수 있습니다.
이 길은 결코 빠르지도 쉽지도 않은 길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자랑스런 선배들이 걸었던 길입니다. 그리고 분명한 것은 이 길은 우리를 유익하고 온전케 할 것입니다. 그리고 이 길을 목자의 인도따라 걷는 사람들 때문에 하나님의 이름이 높임을 받으실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사람들은 인생의 마지막에 반드시 이렇게 고백하게 될 것입니다. “그가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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