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기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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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23;3 나의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 느헤미야강
  • 2016-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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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23;3, (참고. 열왕기상19:1-14)

시편기자는 선한 목자의 사역가운데 하나가 "내 영혼을 소생시키는 일"이라고 노래 합니다. 소생의 반대는 낙심 혹은 낙망입니다. 우리의 영혼이 소생할 필요가 있는 것은 우리의 영혼이 낙망한 까닭입니다. 낙심을 다른 말로 하면 마음이 눌려있고 의욕이 상실된 상태입니다. 더 이상 움직이조차 싫어지고 더 이상 살기조차 싫어집니다. 우리는 인생의 여정에서 이런 낙심을 경험할 때가 있습니다. 심지어 신앙의 거인들 조차 이런 낙심에 빠지기도 합니다. 다윗도 시42:11에 보면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망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하여 하는고"라고 독백하고 있습니다. 바울도 고후1:8-9절에서 "--살 소망이 끊어지고 자기 마음에 사형선고를 받았다"고 고백합니다. 열왕기상 19장의 엘리야도 이런 낙심에 빠져 있었습니다. 그도 역시 "자신의 생명을 거두어 가 달라""더 이상 살고 싶지 않다", "조상이 바꾸지 못한 이 나라를 내 힘으로 어쩔수 없다" 고 독백합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영혼이 이런 낙심에 빠질때 어떻게 소생이 가능할 수 있을까요? 무슨 일 부터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요? 낙망해버린 우울한 영혼을 소생시키시는 선한 목자의 처방은 무엇일까요?

1. 육체의 피곤이 회복되어야 합니다.

 목자였던 필립 켈러는 양의 낙심의 순간을 양이 뒤집어 지는 순간이라고 말합니다. 모든 양들이 경험될 수 있는 것인데 말 그대로 뒤집히기도 하는데 일단 뒤집힌 양들은 네 발을 허공에 뻗치고 허우적거리지만 혼자의 힘으로는 다시 일어서지 못한다고 합니다. 원인은 몸의 중심을 잃어버리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뒤집힌 양들은 맹수, 독수리, 말똥가리, 들개, 이리의 표적이 되고 만다고 합니다. 그래서 목자의 임무의 하나는 매일같이 자기의 양들의 숫자를 헤아리며 뒤집힌 양들이 없는가를 살피는 것입니다. 목자는 뒤집힌 양들을 발견하자마자 일으켜 세운다음 맛사지를 해주어 혈액순환을 돕습니다.

엘리야가 바알 선지자들과 싸움에서 승리한 후 루뎀나무 아래에서 죽기를 구할 때 하나님께서 하신 일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일차적인 처방은 영적인 것이 아니라 육체적인 것이었습니다. 모든 낙심을 영적으로만 치유하려 해서는 안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때로는 잠간의 휴식, 잠간의 산책, 잠간의 침묵, 잠간의 낮잠이 우리의 낙심을 치유할수 있습니다. 성도의 육체는 하나님의 성전입니다. 육체를 학대하지 마십시오. 육체에 쉼을 주십시오. 엘리야를 향한 하나님의 치유는 먹는 일, 마시는 일, 누워 자는 일 이었습니다. 이렇게 엘리야의 소생을 도우신 하나님은 이제 그를 육체적으로 회복시킨 다음 그를 호렙산으로 가게 하십니다. 둘째 처방을 위해서 였습니다.

2. 영적인 교제가 회복되어야 합니다.

육체적으로 소생을 시작한 엘리야를 위해 하나님은 다음 처방을 준비하십니다. 곧 영적인 처방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엘리야로 하여금 하나님과 교제하게 하시는 일이었습니다. 하나님과의 교제의 두가지 방편은 말씀과 기도입니다.

엘리야로 쉬게 하신 하나님은 그로 하여금 하나님과 교통하게 하십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하시고 또한 그로 하나님에게 응답하게 하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은 말씀을 읽고 말씀에 귀를 기울임으로 가능합니다. 또한 하나님께 말할 수 있는 것은 기도함으로입니다.

그동안 엘리야는 늘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행동하여 왔습니다. 그는 결코 말씀보다 기도보다 앞서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처음으로 이세벨의 위협앞에서 말씀없이 기도없이 행동합니다. 그리고 로뎀 나무아래 주저 앉아 모든 것을 끝내고 싶다고, 죽고 싶다고 투정합니다. 그런 엘리야를 하나님이 소생시키는 것입니다.

엘리야로 하여금 주의 음성을 듣게 하십니다. 9절 말씀을 보십시오.

"엘리야가 그곳 굴에 들어가 거기서 유하더니 여호와의 말씀이 저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엘리야야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 10절은 어떻게 시작됩니까? "저가 대답하되--"하나님이 말씀하시고 엘리야가 대답합니다. 그것이 바로 영적인 교제요, 교통입니다. 영적인 교제가 회복된다는 말은 하나님을 가까이 하게 되었다는 말입니다. 바로 이런 영적인 교제가 회복되는 거기서 엘리야는 두려움을 떨쳐 버리고 일어서는 것입니다.

필립 켈러는 그가 목자시절 뒤집힌 양을 바로 일으켜 세운 다음 제일 먼저 하는 일이 부드럽게 음성을 들려주는 일이었다고 합니다. "조심해야지 왜 뒤집혔어? 이제 내 곁을 떠나면 안돼~~"그러면 양은 목자의 음성을 알아 듣고 즉각적으로 안정감을 되찾는 다고 합니다. 그리고 기분이 다시 좋아진 양은 음매애~하고 화답한다고 합니다. 그 순간이, 바로 그 순간이 목자와 양 사이에 교제가 회복되는 순간입니다. 그리고 그가 다시 소생하는 순간인 것입니다.

말씀과 기도를 통한 하나님과의 영적인 대화가 회복될때에야 비로소 우리는 영적으로 소생되었다고 선언할수 있습니다.

3. 주님의 임재가 경험되어야 합니다.

엘리야가 갈멜산에서의 특별한 경험, 기도하고 있었을때에 하늘의 창을 여셔서 비가 오게 하는 특별한 경험을 했습니다. 그러나 로데나무 아래에 주저앉은 곳에서는 적막감이 있었고 더 이상의 기적은 없었습니다. 아마도 그때 엘리야는 하나님의 침묵을 느꼈던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삼상1910절에서 그는 "내가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를 위하여 열심이 특심하였으나--이스라엘 자손은 주의 언약을 버렸고--이제는 나만 남았나이다"고 고백합니다. 이런 엘리야에게 하나님은 산에 서 잇으라고 하시고 지나가시겠다고 했습니다. 처음에 큰바람이 지나갔습니다. 다음에는 지진이 지나갔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거기에 계시지 않았습니다. 이번에는 불이 나타났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불 가운데도 자신을 계시하지 않으셨습니다. 마지막 무엇이 있었습니까? 12절을 보십시오. 세미한 소리였습니다. 잔잔하고 부드러운 목소리였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거기에 계셨습니다. 불안해하고 두려워하고 놀라고 있던 그에게 하나님은 바람도 불도 아닌 세미한 음성으로 다가오신 것입니다. 그리고 그분은 조용히 속삭이십니다. "넌 혼자가 아니라고. 내가 함께 있는 거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때 엘리야가 완전히 회복되어 온전한 사명의 길을 감당했습니다.

그리고 그분은 먼 훗날 우리에게 임마누엘로 찾아오셨습니다. 그리고 범죄하고 두려워하고 불안해 하는 우리를 안고 이렇게 말씀하고 싶어하신 것입니다. "두려워 말아. 나는 너와 똑같은 인간의 모습으로 왔기에 너의 모든 것을 이해할 수 있어. 넘어짐도 이해할 수 있어. 내가 너를 바로 세워 줄거야. 내가 너를 씻겨 줄거야. 내가 너와 함께 하는 거야. 이제는 내가 너를 놓지 않을 거야. 너를 결코 버리지 않을 거야."

주님의 임재의 경험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사랑의 경험이었습니다. 바로 이 선한 목자의 사랑을 경험하는 그 순간 우리역시 영혼의 온전한 회복을 경험하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