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기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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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42편- 오직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 느헤미야강
- 2016-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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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130(수) 새벽기도회 / 432장 큰 물결이 설레는 어둔 바다
시편 42편
제2권의 첫 시작인 42편은 본래 43편과 하나의 시로 볼 수 있습니다.
그 이유는 형식과 주제가 유사하기 때문입니다.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 하는가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그가 나타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내가 여전히 찬송하리로다(5절)”
42편의 5절, 11절 후렴구와 43편의 5절 후렴구가 일치하고 있습니다.
42편 내용을 보면 후렴구에 따라 2개의 연으로 구성되어 있고, 각 연이 끝날 때마다 같은 후렴구로 마무리되고 있습니다. 1-5절은 원수들의 조롱을 당하는 중에 지난 날 성전에서 하나님을 즐겁게 섬기던 때로 돌아가고픈 애통한 마음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6-11절은 환난을 하나님을 향한 소망으로 극복하겠다는 신앙의 결단과 구원을 호소하고 있습니다.
결과적으로 어려움 가운데서도 하나님에 대한 소망을 잃지 않고, 자기 영혼에게 왜 낙담하고 불안해 하느냐고 책망하며 하나님만 바랄 것을 권고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구원으로 인해 그 분을 찬양하게 될 것을 확신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결코 버리지 않으실 것이라는 확신하며 시를 마무리합니다.
제목을 보면 이 시는 “고라 자손의 마스길”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마스길”은 교훈이라는 뜻입니다. 고라 자손이 보관하여 교훈으로 삼고 있는 내용이라는 뜻입니다.
고라는 출애굽기 6장을 보면 레위의 후손 가운데 고핫이라는 사람의 손자였습니다. 그런데 민수기 16장을 보면 고라를 비롯한 고핫의 후손들은 레위인이면서도 제사는 집례하지 못하고 성막의 집기를 옮기는 일만 하였습니다. 그래서 고라가 여기에 대해서 불만을 제기했는데 결국에는 이 불만 때문에 하나님께 징계를 받아서 비참한 죽임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이런 와중에도 고라의 아들들은 죽지 않았고 그 후손들은 성막과 성전의 문지기가 되기도 했고 오늘 시편 42편처럼 하나님을 찬송하는 자가 되기도 했습니다. 비참한 죽음의 위기앞에서 그들이 바라보았던 것은 오직 하나님이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교훈으로 삼고자 한 시로 보여집니다.
42편은 고라자손의 교훈시이지만 그 내용과 저자는 압살롬의 쿠테타로 인한 다윗이 위기가운데에서 기록한 시라고 이야기합니다.
다윗은 신앙적으로 아주 극심한 수난을 당하고 있습니다.
“내가 전에 성일을 지키는 무리와 동행하여 기쁨과 감사의 소리를 내며
그들을 하나님의 집으로 인도하였더니 이제 이 일을 기억하고 내 마음이 상하는도다”(시편 42:4).
3절과 10절을 보면 다윗을 대적하는 원수들은 네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고 아예 하나님까지도 무시했습니다. 예배를 드릴 성전이 없고 믿음의 잔치에 참여하지 못하는 것도 감당하기 힘든 고통인데 원수들은 자기 생명보다 소중하게 생각하는 하나님까지도 부인하고 무시하고 조롱했던 것입니다.
시편 42편은 이 세상에서 고난에 직면하며 막막함을 경험하는 성도들에게 자신이 체험한 하나님의 축복을 근거로 하나님을 향한 소망을 끝까지 간직하는 것이 시련을 극복하는 힘이 된다는 교훈을 전해주고 있습니다.
우리의 낙심과 절망의 근본 원인은 연약해진 믿음에 있다는 것입니다.
5절은 오늘날 우리에게 공감을 불러 일으키는 말씀입니다.
42편에서 시인이 자신이 낙망하며, 불안해하는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드러내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그 이유가 무엇인지를 찾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돈, 건강, 원수의 조롱도 아니었습니다. 소망 없는 장래도, 하나님께서 도와주시지 않았기 때문도 아니었습니다. 바로 하나님께 대한 자신의 신뢰가 부족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자신의 신앙이 하나님께로부터 떨어져 하나님을 바라볼 줄도, 하나님께 소망을 두지도 못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그가 나타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내가 여전히 찬송하리로다” 라고 자신에게 외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우리 역시 모든 불안, 염려, 외로움이 사실은 외부적 환경보다는 우리의 믿음이 약해짐으로 인한 것입니다. 우리의 믿음이 마치 엄마 품에 있는 평온한 아이와 같이 온전히 하나님께 붙어 있다면 아무리 힘이 든다 할지라도 불안해 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마음이 낙심될 때, 5절 말씀을 자기 자신을 향해 선포해야 합니다.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그가 나타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내가 여전히 찬송하리로다.”
우리의 구원은 오직 주께 있습니다. 더욱 하나님을 찬양하시길 바랍니다.
42편의 고백처럼 성숙한 성도가 되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은혜가 있기를 기도합니다.
이 시편 42편을 묵상하면서 초대교회 그리스도인들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들은 믿음을 지키기 위해서는 밝은 태양 아래 살수가 없었습니다.
생업조차 포기하고 사람들의 눈을 피해 지하 동굴에 숨어서 살아야 했습니다.
모진 박해와 핍박을 받으면서도 도대체 어떻게 새 힘을 얻을 수 있었던 것?
죽기보다 힘든 하루하루를 어떻게 기쁨과 소망 가운데 살아갈 수 있었습니까?
“하나님이여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 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니이다”(시편 42:1).
초대교회 그리스도인들은 누구보다도 이 말씀대로 사슴이 시냇물을 찾듯이 하나님을 사모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실제로 초대교회 그리스도인들은 자기들끼리 그리스도인이라는 것을 알리는 표시로 “물고기” 표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 이유는 물고기가 물을 떠나서는 살 수 없듯이 자신들은 주님을 떠나서 살 수 없다는 의미를 포하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전해오는 말에 따르면 그들은 “사슴” 표를 통해서도 자기들이 그리스도인이라는 것을 알렸다고 합니다. 물고기도 물을 떠나서는 살 수 없지만 사슴도 연약한 동물입니다. 그런데 초대교회 그리스도인들은 온갖 핍박을 당하면서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는 자기들의 모습을 목이 말라서 시냇물을 찾아 헤매는 사슴에 비유했습니다.
그런데 초대교회 그리스도인들뿐만 아니라 시편 42편을 노래하는 시인 역시
하나님을 사모하는 심정을 시냇물을 찾아 헤매는 사슴에 비유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여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 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니이다”(시편 42:1).
우리의 상황과 상관없이 우리의 구원은 오직 여호와께 있음을 확인하시고 오직 하나님께만 소망을 두는 성도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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