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기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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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9편 - 내게 일어난 기이한 일
- 느헤미야강
- 2016-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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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002(토) 새벽기도회
기이한 일을 전하리라
시편9편
시편 9편은 표제어 뭇랍벤에 맞춘노래로 되어 있는데 악기연주법을 의미합니다. 어떻게 부르고 연주했으면 좋겠다는 뜻으로 읽으면 되나 정확히 해석이 되어 있는 것은 아닙니다. 대부분 학자들은 ‘아들의 죽음에 관하여’, ‘여성의 목소리로’ 그런 감정으로 읽고 부르는 시라고 합니다. 그리고 16절 끝에 힉가욘, 셀라는 추임새로 이해하시면 될 것입니다. ‘얼쑤’ 라고 하면 될 듯 합니다.
시편9편은 ‘감사’, ‘기이한 일들’ 두 가지 핵심 단어로 시작하고 있습니다.
내가 전심으로 여호와께 감사하오며 주의 모든 기이한 일들을 전하리이다(1절)
본문에서 감사의 이유는 하나님께서 행하신 기이한 일들 때문입니다.
이 기이한 일이란 첫째, 3-8절, 악인을 심판하시는 하나님(4절). 둘째, 9-17절 주의 이름을 의지하는 자를 버리지 않으시는 하나님(10절) 셋째, 18-20절 인생을 심판하시고 하나님이 승리하신다(19절)는 내용입니다.
문제는 이 세가지 일들이 기이한 일인가 하는 것입니다. 성경속에 나타난 기이한 일들이란? 적어도, 출애굽하는 백성들을 인도한 구름기둥이나 불기둥, 홍해가 갈라지는 초자연적인 역사, 히스기야때에 예루살렘을 포위하하고 있던 앗수르의 18만 5천 대군이 하루아침에 죽어 극적인 승리를 얻은 것, 나아만이 고침받고, 여리고성이 무너진 것과 같은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시편 기자에게 나타난 하나님의 기이한 일들은 지극히 평범하고 당연한 것들입니다. 특별하다고 할 만한 것들이 없어 보입니다.
다윗이 경험한 기이한 일들이 무엇이었습니까?
하나님께서 악인은 심판하시고 의인에게는 요새가 되어 주신다(3~8절).
4절은 주님이 심판대위에 앉으사 다윗의 의를 변호하시고 의롭게 심판하시는 모습이고, 8절은 정직과 공의로 심판하시는 모습, 9절은 압제당하고 환난당하는 자의 요새가 되어 주시는 하나님의 모습입니다.
다윗은 악인, 원수의 공격앞에서 공의로 심판하시는 하나님만 믿고 정직히 행했더니 결국에 하나님께 변호받았고 요새 되어 주심을 경험했습니다.
2. 주를 찾는 자를 버리지 않으셨다(10절)
주님을 찾는 자를 버리지 않으신다는 고백은 하나님을 목말라하는 자,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살 수 없는 자임을 인정하고 하나님만 찾는자를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런자를 ‘사망의 음침한 문에서도 일으키시는 분’(13절)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18절에서는 주를 찾는자는 가난한 자 궁핍한 자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가난한자, 궁핍한자는 물질적 개념을 넘어서 하나님에 대해서 목말라하는 표현으로 하나님의 은혜외에 살 소망이 없다고 여기는 사람을 뜻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마5;3 ‘심령이 가난한 자는 천국이 저희 것이라.’ 하나님이 다스리고 인도하시는 자리에 거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기이한 하나님의 역사이다.
인생은 실패하나 하나님은 승리하신다(19절)
우리는 짧은 인생이 주는 쾌락, 즐거움, 만족, 평안이 영원할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이다. 영원한 승리는 하나님께만 있다고 선언합니다.
다윗은 이러한 것들이 일면 평범해 보이나 기이한 일임을 선언합니다. 기적이나 기이한 일은 특별함에만 묻어 있는 것이 아니라 일상의 삶속에서 하나님이 행하심을 믿고 확신하면 모든 것은 하나님의 역사가 됩니다.
문제는 나는 하나님의 의로우심을. 주를 찾는자는 버리지 않으신다. 하나님없는 인생은 실패라는 것을 내 삶의 분명한 고백으로 삼고 그것이 내 삶의 기이한 일이라는 것을 인정하는가입니다. 우리는 기이한 일을 특별한 일로 여기나 다윗은 하나님중심으로 내 삶을 만들어가는 것, 그랬더니 하나님께서 책임지시더라 그것이 기이한 일이라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확실하다면 하나님만 신뢰하고 찾고 의지하며 하나님 말씀대로만 살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다윗의 그것이 내게 있는가입니다. 그렇다면 왜 불안해 하고, 혼란스러워하며, 우울하고, 죽고싶다고 하는걸까요? 하나님의 말씀은 알지만 실제로 믿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실재가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오늘 새벽예배 끝나고 집에 가실 때 길을 몰라서 고민, 방황, 염려할 분 있으십니까? 날씨가 춥고, 비바람 불고, 어두어졌어도 집에 가는 길은 간단합니다. 더디갈수도, 멈추었다가 가더라도 걱정하지 않습니다. 아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왜 인생은 그렇게 살지 못하는가를 물어야 합니다. 상황, 여건이 아무리 어려워도 가장 안전하고 복된길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하나님만 의지하며 사는 길임을 알면 되는 것입니다.
집에 가는 길은 수없이 가보았기에 어떤 처지에서도 흔들리지 않습니다. 우리의 인생길, 가보지 않는 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공의로 변호하시고 피하는 자에게 안아주시고 하나님만이 승리이심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길이 하나님이 약속하신 길입니다. 머리로만이 아니라 삶속에서도 확신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1절의 다윗의 고백처럼 감사하고 그의 하나님의 기이한 일들을 여러분도 전하는 삶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한가지 더 나누고 싶은 말씀입니다.
2절, 내가 주를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지존하신 주의 이름을 찬송하리니(2절)
다윗은 2절에서 기쁨, 즐거움, 찬송이라는 단어를 사용합니다. 기쁨, 즐거움, 찬송케 하는 주체가 어떤 소유나 지위때문이 아니라 주님 때문이라고 선언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믿는 자들의 영적태도입니다. 여러분은 무엇을 가지고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찬송하십니까? 주님 때문에 기쁨과 즐거움, 찬송이 넘치시기를 소망합니다. 다윗이 보고 있는 그 주님이 누구입니까? 어떤 가치와 상관없이 주님 때문에, 나와 같은 이가 주님을 만났다는 그 존재자체만으로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찬송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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