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기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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욥기 26장 _ 고난과 고통의 터널을 지날때도

  • 느헤미야강
  • 2016-0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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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825(목) 새벽기도회

고난과 고통의 터널을 지날 때도

욥기 26:1~14


25장에 나타난 빌닷의 발언이 끝나자 욥은 빌닷을 향한 신랄한 비판을 쏟아놓았습니다.

“네가 힘 없는 자를 참 잘도 도와주는구나 기력 없는 팔을 참 잘도 구원하여 주는구나”(2절)

욥의 이 말은 빌닷의 발언이 더 이상 그 어떤 위로도 설득력도 없음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빌닷은 욥의 세 친구 중 엘리바스에 이어 두 번째로 발언을 하곤 했는데 그는 엘리바스의 발언을 토대로 내용만 약간 바꾸어 자신의 의견을 말한 것에 불과했습니다. 4절이 그 내용입니다.

“네가 누구를 향하여 말하느냐 누구의 정신이 네게서 나왔느냐”(4절)

예를들어, 엘리바스의 첫 번째 발언에서 엘리바스는

“생각하여 보라 죄 없이 망한 자가 누구인가 정직한 자의 끊어짐이 어디 있는가”(4:7)라고 말했습니다. 엘리바스는 욥의 고난이 욥의 죄악에서 비롯되었음을 주장한 것입니다. 빌닷은 이 말을 근거로 “왕골이 진펄 아닌 데서 크게 자라겠으며 갈대가 물 없는 데서 크게 자라겠느냐”(7:11)고 말했습니다.

즉 빌닷은 아닌 땐 굴뚝에 연기가 나겠느냐고 욥을 죄인으로 몰아간 것입니다.

욥기15;23, 18;5절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렇듯 빌닷은 엘리바스의 견해를 토대로 내용만 살짝 바꾸어 자신의 논지를 펼치는 사람이었습니다. 이러한 빌닷의 모습은 그의 마지막 발언에서도 그대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엘리바스는 자신의 세 번째 발언에서

“사람이 어찌 하나님께 유익하게 하겠느냐 지혜로운 자도 자기에게 유익할 따름이니라 네가 의로운들 전능자에게 무슨 기쁨이 있겠으며 네 행위가 온전한들 그에게 이익이 되겠느냐”(22:2~3)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빌닷 역시

“하나님 앞에서 사람이 어찌 의롭다 하며 여자에게서 난자가 어찌 깨끗하다 하랴 보라 그의 눈에는 달이라도 빛을 발하지 못하고 별도 빛나지 못하거든 하물며 구더기 같은 사람, 벌레 같은 인생이랴”(25:4~5)라고 말합니다.

이러한 빌닷의 한계를 알고, 욥은 빌닷에게 매섭게 발언합니다.

“지혜 없는 자를 참 잘도 가르치는구나 큰 지식을 참 잘도 자랑하는구나 네가 누구를 향하여 말하느냐 누구의 정신이 네게서 왔느냐”(3~4절)

욥은 자신의 논지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빌닷이 과연 ‘지혜’를 가르칠 만한 자격이 있는 것인지, 또한 ‘지식’을 내세울 만한 근거가 있는 것인지 되묻고 있습니다. 나아가 욥은 그러한 빌닷의 발언이 ‘누구의 정신’에서 왔는지를 날카롭게 파고들면서 빌닷의 입을 막아버렸습니다.

그리고 빌닷의 지식과는 비교할 수 없는 ‘하나님의 주권과 위엄’에 관한 자신의 지식을 전개하기 시작했습니다. 즉 5절 이하에서 욥은 빌닷과는 비교할 수 없는 깊은 이해를 가지고 ‘하나님의 주권과 위엄’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죽은 자의 영들이 물 밑에서 떨며 물에서 사는 것들도 그러하도다 하나님 앞에서는 스올도 벗은 몸으로 드러나며 멸망도 가림이 없음이라 그는 북쪽을 허공에 펴시며 땅을 아무것도 없는 곳에 매다시며”(5~7절)

빌닷이 이해하고 있는 하나님의 주권과 위엄은 ‘높은 곳’과 ‘광명’ 즉 하늘에 국한되어 있습니다. 이에 비해 욥은 그 범위가 ‘물 밑’과 ‘스올’에서부터 ‘허공’ 즉 광활한 우주공간에까지 미친다고 말합니다.

또한 하나님의 주권과 위엄은 ‘구름’이 있는 대기권은 물론 ‘바다’와 ‘하늘’에도 펼쳐져있다고 욥은 고백하고 있습니다.

“보라 이런 것들은 그의 행사의 단편일 뿐이요 우리가 그에게서 들은 것도 속삭이는 소리일 뿐이니 그의 큰 능력의 우렛소리를 누가 능히 헤아리랴”(14절)

욥은 하나님의 주권과 위엄이 가장 낮은 곳과 가장 높은 곳에까지 미치고 있을 뿐 아니라 구름을 비롯한 하늘과 바다까지 하나님께서 다스리고 계시지만 이러한 것들은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일의 ‘단편’에 불과하다고 말합니다. 즉 5~13절에 언급된 하나님의 주권과 위엄은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일의 매우 작은 부분에 지나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욥이 ‘죽은 자의 영들’이 있는 ‘물 밑’과 ‘스올’까지도 하나님께서 통치하시는 영역으로 고백하고 있음을 주목해야 합니다. 욥은 자신이 태어난 날을 저주하면서까지 죽음보다 더한 고난과 고통 속에서 힘겨워했습니다. 그럼에도 욥은 그 죽음의 영역에서조차 하나님의 주권과 위엄이 미치고 있음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욥의 고백은 자신이 겪고 있는 고난 가운데서도 여전히 하나님께서 통치하고 계심에 대한 신뢰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친구들의 끊임없는 비난과 정죄 앞에서도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면서 욥은 자신이 걸어가고 있는 길고 긴 죽음의 터널조차 하나님께서 통치하고 계시는 영역임을 고백했습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께 자신의 처지와 형편을 맡겨드리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다스리고 계십니다. 우리가 평안할 때뿐 아니라 죽음이 드리워져 있는 것 같은 고난과 고통의 터널을 지날 때도 우리와 함께 하시며 우리를 통치하십니다. 이 하나님의 통치 가운데 오늘 하루도 우리의 삶을 온전히 맡겨 드릴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