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기도회

간절한 기도, 은혜가 충만한 말씀, 주님의 말씀으로 늘 새롭게 변화되는 새생명교회입니다

에스더 9장 _ 덤보다 하나님을 구하면

  • 느헤미야강
  • 2016-0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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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720(수) 새벽기도회 / 찬송가 90장


에스더 9;1-19


하만은 자신에게 절하지 않는 모르드개를 괘씸하게 여기면서 모르드개 뿐만 아니라, 그 민족 전체를 멸절시켜 버리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유다 백성들의 기도를 들으시고 그들과 함께 하셔서 오히려 유다인이 그 모든 대적을 쳐서 도륙하고 진멸하게(9:5)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하만과 유다인들의 대적들이 무려 75,000명이나 죽임을 당하게 되고, 시골의 유다인 곧 성이 없는 고을고을에 사는 자들이 아달월 십사일을 명절로 삼았습니다.(9:19) 그 날을 기념하여 큰 잔치를 베푸는 그런 반전의 드라마의 클라이맥스에 해당하는 부분이 오늘 본문 말씀의 내용입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주목해 볼 부분이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3번이나 반복해서 나오는 문장이 있습니다. 

10절과 15절, 16절에 나오는 "그 재산에는 손을 대지 아니하였더라."라고 하는 부분입니다.

8장 11절 말씀을 보면, 아하수에로왕은 조서를 통해서 유다인들이 그들의 대적들을 죽일 뿐만 아니라, 그들의 재산까지도 탈취해도 좋다고 허락을 했습니다. 하지만, 유다 백성들은 그들이 진멸한 대적들의 재산에는 결코 손을 대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그들은 왜 왕이 허락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재산에 손을 대지 않았을까요? 

그 이유는 재산을 탈취하고 부유케 되는 것이 그들의 목적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아하수에로왕의 조서를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을 치려 하는 자들을 진멸하고, 스스로 생명을 보호하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은 대적들에 대한 복수가 목적이 아니라, 자신들을 치려고 하는 대적들에 대한 정당방어가 목적이였습니다.

또한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려 함이 목적입니다. 

에스더서의 중심 줄거리는 모르드개와 하만의 갈등처럼 보이나 이것은 이스라엘과 아말렉 족속과의 지속적인 갈등과 관계가 깊습니다. 모르드개는 베냐민 자손으로 사울의 아비인 기스의 후손이고 하만은 아말렉 족속의 왕인 아각의 자손입니다. 이는 이미 출애굽부터 시작된 이스라엘과 아말렉간의 갈등의 연장이요, 사울이 하나님께 버림받게 된 사무엘상 15장 사건의 해결이 되는 셈입니다. 아말렉은 구속받은 이스라엘의 가나안 길을 가로막고 대항한 첫 번째 민족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은 너는 천하에서 아말렉에 대한 기억을 지워버리라, 너는 잊지 말지니라. (신25:19)는 하나님의 명령을 지켜야 할 사명이 있었던 것입니다.

전쟁을 하게 되면, 전쟁 후에 얻게 되는 전리품은 승자가 충분히 차지할 수 있는 권리가 있고, 사람들은 좋은 물건을 보면 탐심이 생겨서 그 물건을 갖고 싶어 하게 마련입니다. 이것은 분명히 쉽지 않은 일이었을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여리고성을 정복할 때에 하나님은 성읍 중에 있는 모든 것을 불태우고 은금과 동철 기구는 여호와의 집 곳간에 두라고 말씀을 하셨는데, 아간이 그 명령을 어겼습니다. 아름다운 외투와 은과 금덩이를 보고 탐심이 생겨서 자신의 장막 안에 감추는 그 범죄로 인해서 자신뿐만 아니라, 그 일족이 죽임을 당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분명히 아말렉의 모든 사람들과 가축들까지도 전부 죽이라고 명령을 하셨지만, 사울왕은 탐심으로 아각왕을 살려주고, 양과 소의 가장 좋은 것은 남겨두었고, 그 불순종으로 인해서 사울왕이 하나님께로부터 버림받게 되었습니다.

모르드개 당시 유다인들은 아말렉인들에게서 재물을 탈취하기에 급급했던 사울의 잘못(삼상 15:9-19)을 반복하지 않았다는 것을 강조하려고 한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이곳에서는 볼 수 없는 풍경이지만 한국에서는 볼 수 있는 장면이입니다.

한 분이 아파트 단지안에 들어온 과일트럭에서 딸기 두팩 만원어치를 사면서 오렌지 두개 덤으로 달라고 떼를 씁니다. 손해본다고 싫다는 아저씨가 딴 손님 상대하는 사이에 “덤으로 가져갈께요” 하고는 얼른 양손에 집어들고 부리나케 집으로 뛰어왔습니다. 딸기는 트럭에 놓아두고 왔습니다.

오늘 본문을 통한 도전이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이 덤에만 집중합니다. 아간과 사울에게만 손가락질 할 것이 아니라, 우리의 모습 가운데에도 본 목적을 놓치고 덤에 집착하는 안타까운 모습이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목적을 가지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하나님께 집중하면서 살아야합니다. 이것이 우리가 살아가는 본래의 목적입니다. 그런데 그 목적을 놓칠 때가 많습니다.

예를 들면 이런 것들입니다.

예배의 목적은 무엇입니까?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구원해 주신 하나님의 은혜가 감사해서 하나님께 감사의 제사를 드리고,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드리는 것입니다. 예배를 통해서 얻게 되는 은혜와 기쁨은 덤입니다. 그러니까, 이 기쁨과 은혜는 보너스 선물과 같은 것이고, 부록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하나님께 내 모든 정성을 다해서 예배드리는 것보다 덤, 부록을 더 기대합니다.

기도의 목적은 무엇입니까? 

기도는 하나님과의 교제가 본 목적입니다. 살아계신 하나님과 기도를 통해서 깊이 교제하고, 하나님의 뜻을 알아가고, 하나님께 더 가까이 나아가 하나님과 친밀해 지는 것이 기도의 본 목적이 될 것입니다.

그런데, 기도를 통해서 얻게 되는 덤은 무엇입니까? 기도응답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기도는 기도로 하나님과 깊이 교제하는 것보다는, 내 자신의 소원을 아뢰고, 내 자신의 기도가 이뤄지는 그 부록에 더 집착을 합니다.

이 시간에 우리가 분명히 해야 할 것은 우리는 덤에 집착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목적에 충실한 사람들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람의 제일 되는 목적은 하나님을 영원히 즐거워하고 그분을 영화롭게 하는 것입니다.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다 아신다.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 하시리라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이것이 목적입니다.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는 덤입니다. 우리가 추구할 인생의 목적은 하나님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덤으로 주시는 이 모든 것에 마음을 빼앗길 때가 더 많은 것을 봅니다. 하나님을 따라가면서 얻어지는 덤, 그 부록들이 주는 달콤함에 빠져서 어느새 인생의 목적을 잃어버리고, 덤만 붙들고 살아가는 모습은 스스로 부족한 믿음, 편협한 믿음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이 새벽에 내가 정말 인생의 목적을 추구하며 살고 있는지, 아니면 덤만을 기대하고 있는지 우리를 한 번 점검해 보기를 원합니다. 덤에 집착하여 덤 때문에 우리의 소명을 놓치고, 본래의 목적을 잃어버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집중해서 살아가는 보다 멋진 그리스도인의 삶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