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기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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욥기 3장 - 우리의 연약함을 쏟아 놓을때

  • 느헤미야강
  • 2016-0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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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726(화) 새벽기도회

우리의 연약함을 쏟아 놓을때

욥기 3:1~12때


욥기서의 서두를 보면 욥의 됨됨이를 세 가지로 말해주고 있습니다.

욥1;1절을 보면 ‘온전한’(탐) 사람, ‘정직한’(야샤르) 사람이었습니다. 또한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사람, 즉 욥의 경건한 삶이 하나님에 대한 신앙에서 비롯되었음을 증언해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욥의 신앙이 얼마나 견고한 뿌리를 가지고 있는가를 이렇게 증언하고 있습니다. “이 모든 일에 욥이 범죄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향하여 원망하지 아니하니라(욥1:22)

욥이, 하루 만에 자신의 모든 것을 잃어버렸을 때 그는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모든 것을 주실 뿐 아니라 거두기도 하시는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두 번째로 자신의 몸마저 종기로 심한 고통을 받았을때 뿐만아니라 누구보다 가까이서 자신의 고통을 이해하고 아파해야 할 아내마저 자신에게 독설을 쏟아 부었을 때도 욥은 자신의 입술로 죄를 범하지 않았습니다. 2;1절은 “우리가 하나님께 복을 받았은즉 화도 받지 아니하겠느랴” 라는 고백을 했습니다.

이런 신앙과 인격을 가진 욥이 오늘 본문 3장으로 넘어오면 뜻밖의 고백으로 나타납니다. “그 후에 욥이 입을 열어 자기의 생일을 저주하니라.”(욥3;1)

욥이 자신이 태어났던 그 기쁨의 날을 저주하고 있습니다. 나아가 자신이 태어난 날이 차라리 없었더라면 좋았을 것이라고 탄식합니다.

“그 날이 캄캄하였더라면, 하나님이 위에서 돌아보지 않으셨더라면, 빛도 그 날을 비추지 않았더라면”(4절)

욥은 자신이 태어난 날을 저주하면서 자신의 생명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창조마저 부정하는 듯한 말을 합니다. 자신이 태어난 그 날이 있었기 때문에 현재 이 끔찍한 고통을 당하고 있다고 항변하듯 말하고 있습니다.

1장과 2장에서 훌륭한 신앙인격을 보여주었던 욥이 이렇듯

3장에서는 완전히 돌변하여 자신이 당하고 있는 고통을 여과없이 쏟아내고 있습니다.

앞서 소개된 욥과 오늘 본문의 욥은 다른 사람일까요? 같은 사람이라면 우리는 욥이 보여주었던 훌륭한 신앙인격이 위선이었다고 결론을 내려야 할까요?

욥이 탄식을 쏟아내는 내내 하나님께서는 한 마디도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욥이 이중적인 신앙인격을 가졌다고 책망하지도 않으셨습니다.


우리는 흔히 우리의 감정을 잘 억누르는 것이 성숙한 신앙이라고 오해합니다. 그러나 감정 또한 우리를 구성하는 인격의 일부이며 하나님께서 지으신 창조의 한 부분입니다. 감정이 있기에 우리는 슬픈 일을 당하면 슬퍼할 수 있고, 기쁜 일이 있으면 기뻐하며 웃을 수 있습니다. 감정은 우리 내면의 크고 작은 변화를 담아내는 그릇입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감정까지도 그대로 받아주시는 분이라는 사실입니다.

주님께서도 이 땅에 계시는 동안 자신의 감정을 표출하셨습니다. 유대교의 위선적인 행태 앞에서 분노하셨는가 하면, 친구 나사로의 죽음 앞에서는 눈물을 보이셨습니다. 고난과 죽음 앞에서는 피가 땀으로 배어나올 정도로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으셨는가 하면 주님께서 가지고 계시는 기쁨을 제자들 역시 함께 소유할 수 있기를 원하셨습니다.

욥이 자신이 태어난 날을 저주하며 자신에게 생명을 주신 하나님의 창조를 부정하면서까지 자신의 고통을 표출하는 욥의 모습은 오히려 지극히 인간적이며 또한 지극히 신앙적입니다. 자신에게 닥친 고통이 너무나 극심하기에 욥은 할 수 있으면 자신의 존재 자체를 부인해서라도 그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기를 발버둥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욥의 모습 속에서 오히려 위로를 얻게 됩니다. 온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그래서 너무나 완벽한 것처럼 보였던 욥이 고통 속에서 항변할 때 우리 역시 위로와 격려를 느끼게 됩니다.

신앙은 위선이 아닙니다. 고통이 닥칠 때마다 자신의 생일을 부인해대는 것도 문제가 있겠지만 적어도 우리 주님 앞에서는 성숙을 가장한 위선이 아닌 진솔함으로 나아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 주님은 우리가 이 땅에서 사는 동안 겪을 수 있는 모든 고통을 알고 계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실 이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신 이로되 죄는 없으시니라”(히 4:15)

혹 어떤 문제앞에서 고통과 두려움을 가지고 있다면 주님 앞에 고백하시기 바랍니다. 주님께서 다 알고 계십니다. 억울한 일을 당해서 너무나 분통이 터지고 괴로우십니까? 그 억울함을 주님께 아뢰시기 바랍니다. 그 억울함 또한 주님께서 다 알고 계십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좌절, 분노, 슬픔, 억울함, 상실감, 상처 이 모든 감정들을 주님 앞에 쏟아놓으십시오. 우리의 부정적인 감정뿐 아니라 우리의 기쁨과 감격도 주님 앞에 가져가십시오. 믿음은 우리의 연약함을 감추는 것이 아니라 드러내는 것입니다. 우리가 진솔하게 우리의 연약함을 쏟아놓을 때 우리 주님은 거기에서부터 우리의 강함이 되어주시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연약한 모습은 우리에게도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스스로 연약한 모습을 인정하고 하나님만 의지하는 모습을 갖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