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기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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욥기4장 _ 고난을 대하는 그리스도인의 자세
- 느헤미야강
- 2016-0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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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727(수) 새벽기도회
고난을 대하는 그리스도인의 자세
욥기 4장
하루 아침에 재산과 자식을 잃어버리고 자신마저 병이 든 욥. 아내마저도 원망과 저주를 쏟아 놓는 기막힌 불행이 찾아옵니다. 교회안에서, 이웃, 성도중에 이런 일 보면 제일 먼저 드는 생각이 고난의 이유가 무엇일까? 왜 저런 고난을 당할까? 호기심과 관심, 지나치면 쉽게 판단하고 말하게 됩니다. 그래서 고통보다 주변 사람의 시선과 말, 행동이 더 고통스러운때가 많습니다. 그러므로 이 문제는 고난을 맞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꼭 한번 생각해야 할 중요한 문제입니다.
고통가운데 있는 욥을 위로하고자 세 명의 친구들이 찾아옵니다. 그 내용이 4장부터 31장까지 나타나는 내용입니다. 욥의 세 친구는 한사람씩 욥의 고난에 대한 자신들의 생각을 펼칩니다. 세 친구들의 공통적인 욥의 고난에 관한 주장은 인과응보론입니다. 죄를 지었기 때문에 고난을 당한다는 것입니다.
우리 성경에도 심은 대로 거둔다는 추수의 법칙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일반적인 의미에서 사실이기는 하지만 언제나 사실은 아닙니다. 예컨데 우리의 구원의 문제를 보면, 우리가 언제 구원받을 만한 일을했기 때문에 구원을 받은것이 아닙니다.
에베소서 2장 8절 말씀이 가르치는 대로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인과의 주장은 일반적이긴 하나 절대적인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아는대로 욥의 경우는 달랐습니다.
바울이 갈라디아서 6:8절에서 이 심고 거두는 법칙을 말한것은 성도들의 선행을 격려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선행을 행할때에 당장 그 결과가 나타나지 않아도 낙심하지 말라는 말입니다. 때가되면 좋은 결과를 거두게 된다는 의미였습니다.
욥의 친구 가운데 제일먼저 엘리바스가 하는 주장이 오늘 본문입니다.
첫째로, 경험적 이론의 전개입니다.
4장 8절에 "내가 보건데 악을 밭갈고 독을 뿌리는 자는 그대로 거두나니"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엘리바스의 주장의 근거는 "내가 보건데"입니다. 이 말은 "내가 경험한 바로는"이라는 말입니다. 15장을 보면 친구들중에 가장 연장자였던것 같습니다. 그는 자신의 인생경험에 비추어 욥의 고난을 해석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옛선배들의 경험과 지나간 역사의 경험이 오늘을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 많은 교훈을 주는 것은 사실입니다. 우리 보다 인생의 경험을 많이 체득한 사람들에게 머리숙여 인생의 교훈을 배우는 것은 중요합니다. 그러나 인간의 경험이 항상 진리는 아니다는 것을 오늘 이 욥기서가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항상 우리의 경험을 말할때에 이 경험이 성경의 진리에 합당한가를 점검해야 합니다. 인간의 어떠한 경험도 하나님의 말씀을 앞지르지는 못합니다. 아무리 숙달된 인간의 경험적 지혜라고 해도, 그리고 역사를 통해 계승된 경험일지라도 하나님의 말씀보다 더 높은 권위와 가치를 가지지는 못합니다.
둘째로, 영적인 계시의 전개입니다.
자신의 영적 체험을 앞장세워 판단하고 있습니다. 4장 12~15절을 보십시오.
"무슨 말씀이 내게 가만히 임하고 그 가는 소리가 내 귀에 들렸었나니 곧 사람이 깊이 잠들 때쯤 하여서니라 내가 그 밤의 이상으로 하여 생각이 번거로울 때에 두려운과 떨림이 내게 이르러서 모든 골절이 흔들렸었느니라 그때에 내 영이 내 앞으로 지나매 내 몸의 털이 쭈뼛하였느니라"
이 말은 엘이바스가 영적 체험을 하였다는 말입니다. 16절 17절을 보면,
"그 영이 서는데 그 형상을 분변치는 못하여도 오직 한 형상이 내 눈앞에 있었느니라 그 때 내가 종용한 중에 목소리를 들으니 이르기를 인생이 어찌 하나님보다 의롭겠느냐 사람이 어찌 그 창조하신 이보다 성결하겠느냐"
이 말은 욥이 잘 못했다는 것을 영적 체험으로 깨달았다는 말입니다.
우리는 종종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을 만나게 됩니다. 이러한 주장들로 사람을 불안에 떨게 하고 잘못된 자리로 인도하는 사례들은 지금도 많이 보게 됩니다.
영적인 체험은 지금도 풍성하게 일어나야 합니다. 그러나 그 목적이 한 사람을 정죄하고 낙심과 절망의 구렁텅이로 몰어넣는 것을 목적으로 주어지지 않음을 명심해야 합니다. 욥42장 7절에 하나님의 책망을 기억하십시오.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는 것이라면 이것은 분명 사탄의 장난일 수 있습니다.
엘리바스는 허물어져 가는 친구의 고통의 현장에서도 자신의 주장을 앞세우는 사람입니다. 고통가운데 절망의 자리에서 허우적거리는 친구를 보면서도 자신의 논리를 정당화 시키려 하고 승리자가 되어 보려는 이 사람의 모습이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모습이지는 않기를 바랍니다.
앞으로도 세 친구들의 주장을 계속 살펴보겠지만 엘리바스의 판단과 주장을 통해 깨닫는 것이 있습니다.
첫째는, 위로를 하는 자리가 잘못하면 고통을 주는 자리로 바뀔 수 있다는 것입니다.
둘째는, 우리는 고통당하는 사람들 앞에서 함부로 그의 고통의 이유를 추측하거나 설명하려고 하지 말아야 합니다.
셋째는, 고통당하는 사람에게는 책망이 위로가 될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넷째는, 이 세친구들의 말이 그들 나름대로는 다 정당한 말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옳은 말이라고 해서 다 선하고 유익한 말은 아닙니다.
오늘 욥기서에서 고난앞에 우리가 설때에 주의해야 할 중요한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고난당하는 성도들에게 말이나 경험, 신앙적 체험을 전하는 것 이전에 우는자들과 함께 우는 마음의 자세들이
먼저 임을 알기 원합니다. 참 위로자, 격려자는 하나님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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