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기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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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헤미야 2장_근심케하는자가 아니라 흥왕케 하는자
- 느헤미야강
- 2016-0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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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621(화) 새벽기도회
근심케 하는 자가 아니라 흥왕케 하는 자
느헤미야2장
1절, 수심이 없었더니
2절, 어찌하여 얼굴에 근심이 있느냐
느헤미야가 조국의 고통과 현실앞에서 금식하며 기도하는 가운데
왕 앞에 섰는데 그의 얼굴에 수심이 있음을 왕이 보았습니다.
신하의 얼굴이 수심이 있다는 것은 왕을 배신하거나 역모를 취하고 있음이
드러난 모습으로 오해받을 수 있기에 신하는 왕 앞에서 수심을 드러내서는 안되었습니다.
특히 왕이 마시는 술을 먼저 확인하고 점검하는 느헤미야로서는 더욱 그렇습니다.
느헤미야 입장으로서는 심각한 위기일 수 있었습니다.
누구나 삶속에서 근심과 걱정, 수심이 있게 마련입니다.
그것이 자신을 위기로 몰아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느헤미야가 지배국가에서 파송한 총독으로 예루살렘에 파견되는 사건의 발단은 또한
느헤미야의 이 수심 때문이었습니다.
어떤 수심때문이었습니까?
조국, 예루살렘 때문에 생긴 수심이었습니다.
조국의 고통과 현실의 문제가 없었다면 그럴일도 없었습니다.
한편으로는 페르시야의 고관이면서 자신의 영화보다 하나님 백성으로서의 삶을
더 중요시 여겼기 때문에 일어난 일입니다.
4개월동안 오직 예루살렘만 생각했고 생각한 결과 나온 근심이었습니다.
다른 사람의 아픔을 모르는 척, 안들은척, 귀을 막고 눈을 막아 버렸다면
그런 일은 안 일어났을 것입니다. 평안하게 자신의 삶에 만족했을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역사, 기회도 없었을 것입니다.
은혜도 부메랑과 같습니다.
누군가의 삶에 관심을 가지고 함께 아파하고
기도하는 것은 결코 시간낭비가 아님을 알게 하십니다.
오늘도 성도안에서, 믿음의 공동체안에서 보여지고 들려지는 것들에게 세심한 관심을 갖고
거룩한 근심의 사람들 되시기를 부탁합니다.
하나님의 역사를 맛보게 되는 귀중한 경험을 하게 될 것입니다.
이어 4절 왕이 물었습니다.
“네가 무엇을 원하느냐?”
그때 느헤미야는 ‘곧 하늘의 하나님께 묵도(기도) 했습니다.
이 또한 예루살렘 성벽 재건의 시작점이 되었습니다.
결정적으로 중요한 순간에 생각나는 대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기도하고 말하는 것이 얼마나 귀한 일임을 보여줍니다.
느헤미야는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지금 눈 앞에 왕이 소원을 물었으니 왕앞에 잘 보여야 하나
느헤미야는 정확히 알았습니다. 역사의 주관자는 눈 앞에 있는 왕이 아니라 하나님이셔야만 한다는 것을
정확히 알았기 때문에 짧은 순간에 기도할 수 있었습니다.
말 한마디의 중요성이 있었기에 기도가 필요했고, 지혜가 필요했습니다.
기도가 몸에 베어 있어야 하고, 하나님께서 물으실 때 꿈, 계획이 구체적으로 준비되어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기도하는 일에서 우리가 하나 더 알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빙산은 수면위 10%정도로 떠 있는 것을 말합니다.
꽃이 아름다운 것은 뿌리에 연결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느헤미야는 하늘의 하나님께 묵도, 기도했습니다.
뉘 안전이라고 소리내어 기도했을 것이며, 뉘 안전이라고 오랜 시간 기도했을까요?
아주 짧은 찰나의 기도를 했을 것입니다. 이것을 화살기도라고 합니다.
짧은 시간에 드리는 기도라는 의미입니다.
화살기도도 역시 빙산의 일각입니다.
느헤미야의 화살기도에는 그 밑에 깊은 기도가 뒷받침되어 있습니다.
금식기도, 새벽기도, 골방기도, 산기도, 철야기도, 침묵기도, 다양한 형태의 기도가
하나님과 깊이 연결되어 있을때에라야 화살기도가 의미 있습니다.
누구나 화살기도를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누구나 화살기도에 응답받는 것은 아닙니다.
먼저 하나님과 깊은 교제의 삶의 자리가 있을때 그 화살기도는 더욱 의미 있어 집니다.
느헤미야의 기도가 그랬던것입니다.
막연히 그 자리를 모면하거나, 어떤 문제를 해결하려한다거나 하나님을 시험하는 차원에서의
화살기도는 의미없습니다.
오늘 이 모든 일에 기도가 있었습니다.
기도는 가장 현실성이 없어보이지만, 기도만큼 현실적인 일은 없습니다.
기도는 가장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지만, 기도만큼 눈에 보이는 것은 없습니다.
그리고 10절, 호론 사람 산발랏과 좋이었던 암몬 사람 도비야가 이스라엘 자손을 흥왕하게 하려는 사람이 왔다 함을 듣고 심히 근심하더라
10절에 두 종류의 사람들이 나타납니다.
흥왕하게 하는 사람과 되어지는 일들에 대해 근심하고 무너뜨리려는 사람들입니다.
신앙에는 회색지대는 없습니다.
흥왕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면 이것도 저것도 아닌것 같아도 무너뜨리려는 사람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자신이 서 있는 곳을 흥왕하게 하는 사람이지
무너뜨리고 관망하고 거리를 두는 사람이 아닌 줄 믿습니다.
흥왕함을 두려워하고 근심하는 사람이 아니라
흥왕케 하는 사람으로 사는게 하나님의 사람이다.
하나님의 사람, 공동체를 근심하게 하는 사람이 아니라
세상을 근심하게 하는 사람으로 살아가시는 사람입니다.
여러분 때문에 가정이 흥왕하고, 기업이 흥왕하고,
여러분 때문에 새생명교회가 흥왕하고 하나님없는 사람들에게 근심함으로
구원받는 자들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는 일에 쓰임받게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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