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기도회
간절한 기도, 은혜가 충만한 말씀, 주님의 말씀으로 늘 새롭게 변화되는 새생명교회입니다
역대하 25장_신앙은 수학공식이 아니다
- 느헤미야강
- 2016-05-18
- 1,357 회
- 0 건
20160518(수) 새벽기도회
역대하 25장
아마샤는 요아스의 뒤를 이어 남유다의 아홉 번째 왕위에 오릅니다. 25세에 왕위에 올라 29년을 다스립니다.
이 아마샤에 대해서 성경은 한 절로 이렇게 말합니다. 2절 말씀입니다.
“아마샤가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기는 하였으나 온전한 마음으로 행하지 아니하였더라”
2가지로 요약합니다. 하나는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기는 하였으나’ 이고.
두 번째는 ‘온전한 마음으로 행하지 아니하였다’는 말씀입니다.
아마샤가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한 것은 무엇입니까? 3,4절입니다.
“그의 나라가 굳게 서매 그의 부왕을 죽인 신하들을 죽였으나 그들의 자녀들은 죽이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모세의 율법책에 기록된 대로 함이라 곧 여호와께서 명령하여 이르시기를 자녀로 말미암아 아버지를 죽이지 말 것이요 아버지로 말미암아 자녀를 죽이지 말 것이라 오직 각 사람은 자기의 죄로 말미암아 죽을 것이니라 하셨더라”
아마샤의 아버지 요아스는 아람과의 전쟁중에 그 신하들에 의해 죽임을 당합니다. 아마샤는 왕이 된 후 나라와 자신의 권력을 공고히 한 후 아버지를 죽인 신하들을 죽입니다. 그러나 그들의 자녀들은 죽이지 않았습니다. 복수심으로 생각하면 얼마든지 자녀들에게까지 확대할 수 있었으나 말씀안에서 자신의 감정을 제어 했습니다. 아마샤는 모세의 율법책에 기록된대로 행하였습니다. 이 말씀은 신24;6절의 말씀입니다.
두 번째는 5절 이하의 말씀입니다. 6절을 함께 읽습니다.
“또 은 백달란트로 이스라엘 나라에서 큰 용사 십만 명을 고용하였더니”
에돔과 전쟁을 할때에 이스라엘의 용사 10만명을 고용하여 전쟁하려 할때에 하나님의 사람이 그리하지 말라 합니다. 그러자 용병들을 그들의 고향으로 돌려보내고 마침내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전쟁에서 이기게 됩니다.
그러면 온전한 마음으로 행하지 아니한 것은 무엇일까요?
그런데 25장 마지막 부분을 보면, 아마샤 왕은 매우 비참한 최후를 맞이합니다. 27절과 28절 말씀을 보면, ‘아마샤 왕은 백성들의 모반에 의해 쫓겨났고, 끝내 자객에 의해 살해되었습니다’. 남 유다 왕 중에서 백성들의 모반에 의해 쫓겨난 왕은 아마샤 왕이 유일합니다. 아마샤 왕은 하나님으로부터 버림을 받고, 또 백성으로부터도 버림을 받은 왕으로 전락했습니다.
복수심 앞에서도 하나님의 율법을 존중했던 아마샤 왕이, 어떤 일 때문에 이렇게 되었을까요?
오늘 본문에는 두 번의 전쟁이 나오고, 선지자가 두 번 등장합니다. 첫 번째 전쟁은 남 유다와 에돔의 전쟁입니다. 아마샤 왕은 용병에 의존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라고 하나님의 사람의 말씀에 순종하여 전쟁에서 대승을 거두었습니다. 그러나 에돔과의 전쟁에서 대승을 거둔 이후,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발생했습니다. 자신이 정복한 에돔의 우상을 가져와서, 에돔의 우상 앞에 아마샤 왕이 경배하며 분향했다는 것입니다. 패배한 신, 무기력한 신을 아마샤 왕이 우상으로 섬겼다는 것은 더욱 이해가 안됩니다. 그리고 돌이키라는 선지자의 메시지를 일축해보리게 됩니다. 이 일이 있은 후, 아마샤 왕은 패망의 길로 들어섰습니다. 전쟁의 결과는 23, 24절 말씀을 보면 아마샤는 큰 패배를 당했고 나중에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습니다.
무엇 때문에, 어떤 일 때문에, 아마샤 왕의 마음이 변한 것일까요?
10절 말씀을 보면, 십만 명의 용병들이 에돔과의 전쟁에 참여하지 못하고, 다시 고향으로 돌아가면서 유다 사람에게 심히 노했다고 말합니다. 고대 전쟁은 전쟁에서 이기면, 약탈을 통해 재산을 형성할 수 있었습니다. 적국의 사람들을 노예로 삼고, 약탈한 재물을 통해, 참전한 용병들은 재산을 형성했습니다. 그런데 그런 기회를 상실하게 되자 분노하게 된 것입니다.
십만 용병의 분노의 결과는 13절 말씀에 자세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아마샤가 자기와 함께 전장에 나가지 못하게 하고 돌려보낸 군사들이 사마리아에서부터 벧호론까지 유다 성읍들을 약탈하고 사람 삼천 명을 죽이고 물건을 많이 노략하였더라”
십만 용병은 자신들의 분노를 남 유다 성읍들에게 쏟아 부었습니다. 그래서 남 유다 사람 삼천 명을 죽이고, 많은 재산을 노략질해갔습니다. 아마샤 왕은 에돔과의 전쟁에서 대승을 했습니다. 그러나 아마샤 왕이 전혀 생각하지 못한 사건이 일어난 것입니다. 아마샤 왕은 에돔과 전쟁할 때, 선지자의 말씀에 순종했습니다. 아마샤 왕은 십만 명의 용병을 고용한 백 달란트의 거금도 포기하고 믿음의 길을 갔습니다. 그런데 전혀 예상하지 못한 사건이 터진 것입니다.
아마샤 왕은 아마 이렇게 생각했을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십만 명의 용병을 포기하고 믿음의 길을 걸어갔다면, 적어도 내가 포기한 십만 명의 용병은 하나님이 책임져주셔야 하는 것은 아닙니까! 어떻게 내가 포기한 십만 명의 용병이 내 뒤통수를 치는 일이 일어날 수 있습니까! 적어도 이런 일은 막아주셔야 하지 않습니까!’
이것이 아마샤의 마음이었습니다.
성경은 왜 그런 일이 일어났는지에 대해서는 침묵하고 있습니다. 아마샤는 에돔과의 전쟁에서 승리한 것 보다 십만 명의 용병이 저지른 그 사건이 온통 마음을 사로잡았을 것입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느냐며, 하나님을 원망했을 것입니다. 아마샤 왕은 십만 명의 용병 사건과 뒤통수를 치는 것 같은 하나님으로 인해 마음이 돌아섰습니다.
문제는 우리들에게도 이런 일이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했을 때, 항상 승리하거나, 항상 길이 열리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더 어려워지는 경우도 종종 있습니다. 수학공식처럼, 정확하게 그대로 이루어지는 삶의 규칙과 삶의 인도가 있다고 성경은 말하지 않습니다.
그 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답답하지만 믿음의 인내로 견뎌내는 수밖에 없을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그 인내의 시간이 지나면, 하나님의 때에 우리의 마음을 풀어주신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결코 하나님이 아닙니다. 그래서 하나님처럼 우리에게 일어나는 일을 다 알지 못합니다. 때로는 이해되지 않는 신비를 인정하는 겸손함이 필요합니다.
알 수 없는 일, 답답함, 분통터지는 일 앞에서 그 겸손함을 배우지 못할 때, 우리는 아마샤 왕처럼 믿음의 길에서 탈선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일이 잘 되어질때에도 찾기를 원하지만 내 뜻대로 안 될 때에도 여전히 찾기를 원하십니다.
- 이전글 역대하26장 -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16.05.20
- 다음글 역대하 24장_여호야다가 세상에 사는 모든 날 동안 16.05.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