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기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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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하 18장_ 무심코에 담긴 하나님의 뜻

  • 느헤미야강
  • 2016-0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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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507(토) 새벽기도회

‘무심코’에 담긴 하나님의 뜻

역대하 18장


오늘 본문의 초점은 여호사밧입니다. 아합, 400명의 선지자들, 시드기야, 미가야 등 여러 인물들이 등장하고 있지만 성경의 초점은 여호사밧에게 머물고 있습니다. 여호사밧의 모습은 하나님의 자녀로 살지만 끊임없이 넘어지는 오늘 우리의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본문의 내용은 이러합니다. 북 이스라엘의 아합왕과 정략적 사돈관계를 맺게 된 여호사밧은 아합왕의 권유로 아람이 점령하고 있던 ‘길르앗 라못’을 침공하자는 권유를 받게 됩니다. 여호사밧은 이 아합의 제의에 적극 찬성합니다. 그가 이와 같이 찬성한 이유는 결혼으로 맺어진 동맹을 견고히 하고 싶었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유다에 큰 유익이 된다고 생각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여호사밧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기에 전쟁에 앞서 하나님이 뜻을 묻자고 제안합니다. 아합은 온 나라 안의 선지자들을 불러 모읍니다. 왕이 하나님의 뜻을 묻기 위하여 선지자들을 불러 모으는데, 그 수가 자그마치 400명이나 되니 얼마나장황한 광경이었겠습니까? 그들은 이구동성으로 ‘길르앗 라못’을 하나님께서 주셨다는 예언의 말씀을 쏟아놓습니다. 그러나 여호사밧은 이들 외에 다른 선지자가 또 있는지 찾게 되고 미가야 선지자가 등장합니다. 미가야는 전쟁의 패배와 아합왕의 죽음을 예언합니다. 실제 전투가 벌어지기 전에 400대 1의 또 다른 영적 대결이 벌어진 것입니다. 거짓선지자 중 하나인 시드기야는 철로 뿔을 만들어 시청각 교육을 벌이면서까지 하나님의 말씀을 왜곡합니다. 이 뿔로 아람사람을 찔러 승리하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구동성의 아우성치는 400명의 예언 앞에서 미가야는 조금도 위축됨 없이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합니다. 시류를 따라 왕의 입맛에 맞게 적당히 말하라는 유혹도 뿌리치며 그는 단언합니다. 13절, “여호와께서 살아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내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 곧 그것을 내가 말하리라”.

그러나 안타까운 사실은 그 집회에 참석한 그 누구에게도 미가야의 선포는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는 사실입니다. 아합과 그 신하들은 악하기 때문이라 당연하다 치더라도, 하나님의 사람 여호사밧에게 마져도 미가야의 선포는 그의 선택에 영향을 미치지 못합니다. 마침내 길르앗 라못 전투에 참여한 여호사밧은 죽음의 문턱 직전에서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가까스로 살아나고, 아합은 예언대로 최후를 맞이합니다. 거짓 선지자 400명의 권세와 세력 앞에서 그 자리에 있던 그 누구도 자신의 선택을 바꿀게 할 만한 진리의 말씀을 발견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여호사밧에게 조차도 말입니다. 왜 그랬을까요?

여호사밧은 유다의 안정의 기반을 아합과의 정략적 결혼에 두었습니다. 또한 그에게는 자신의 휘하에 있는 118만의 용맹한 군사라는 든든한 울타리가 있었습니다. 그 환경이 주는 자신감과 경험을 바탕으로 그는 400명의 화려한 말잔치에 마음을 빼앗겼던 것이었습니다. 그 순간 여호사밧을 주장하고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 실상 그의 마음 속에 자리하고 있었던 경험의 소리, 환경의 소리 였습니다. 크게 용맹스러운 군대, 자신을 향하여 조공을 바치는 이웃나라, 견고한 요새와 국고성들... 그것이 400명의 거짓된 소리와 만났을 때 진리이신 하나님의 말씀은 버려지고 말았습니다.

이 여호사밧 사건을 통해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 우리 내면의 소리에 귀를 기울일 때 그것은 곧 실패의 자리가 된다는 것을 보게 됩니다. 처음에는 성공에 가려 그 실패가 잘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조금씩 조금씩 축적되어 쌓이면 한 나라의 운명을 좌우하고, 한 개인의 생명을 좌우 할 결과로 어느 날 다가오는 것입니다.

전쟁터에서 아합은 미가야의 예언이 마음에 걸렸는지 여호사밧에게 왕복을 입히고 자신은 변장을 하고 전투에 참여합니다. 그러나 결코 하나님의 세밀하신 섭리를 피해 갈 수 없었습니다.

33절, ‘한 사람이 무심코 활을 당겨 이스라엘 왕의 갑옷 솔기를 쏜지라..’

인간은 무심코 하지만 하나님은 그것을 정확하게 갑옷의 솔기를 맞히게 하십니다. 갑옷은 화살이 뚫지 못하게 쇠판으로 중요부위를 덮은 것을 말합니다. 그런데 그 쇠 조각 사이를 정확하게 맞힌다는 것은 그 경황없고 소란한 전투 중에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것도 무심코 하였다면 말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일을 정확하게 이루어 가시는 분이심을 보여줍니다. 오늘 내가 무심코 하는 일은 하나님의 섭리 속에서 정확하게 그분의 뜻을 이루어 가는 도구로 쓰여진다는 것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합니다.

여호사밧이 아합왕의 옷을 대신 입고 전투에 나가자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모든 적군들이 여호사밧만을 공격하며 달려들었습니다. 이제껏 그를 지탱해 주던 모든 것이 순식간에 사라지는 순간이었습니다. 그 용맹스러운 군사도, 견고한 성읍도, 한껏 자기를 치켜주던 선지자들의 소리도 아무런 힘을 쓰지 못하고 오직 죽음의 공포만을 대면한 시간... 그는 그곳에서 자신의 실패를 깨닫습니다. 이 위기의 순간에 오늘 본문 31절 중반에 보면 그가 ‘소리를 질렀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무슨 소리를 질렀겠습니까?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의 공허함과 무기력함에 대한 영혼을 관통하는 섬광 같은 깨달음, 그리고 그것과 함께 찾아 왔던 외마디 비명과도 같은 절박한 기도였을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마치 기다리셨다는 듯이 그 외마디 기도에 응답하십니다. 하나님의 귀는 여호사밧의 비명과 같은 기도에 집중하고 계셨던 것입니다. 칼과 칼이 맞부딪히고, 말과 사람들의 부르짖는 아비규환 속에서 하나님은 여호사밧의 기도를 결코 흘려보내지 않으셨습니다. 이것이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입니다. 아버지의 마음은 결코 그 아들을 떠나지 않습니다. 때로는 징계의 매를 들지만, 때로는 실패의 일을 겪게 하는 것을 허용하시지만 그러나 그 속에는 자녀를 향한 사랑이 녹아 있습니다. 여기에 우리가 실패 가운데서도 하나님께로 돌아가야 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우리는 분노나 원망함으로 문제의 원인을 밖에서 찾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고 내면의 소리들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 앞에 우리자신을 겸손히 새워야 합니다. 그러나 혹 자신의 연약함과 실패로 넘어졌을 때에도 우리는 기도하며 그 분 앞으로 곧장 나아가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우리가 만나는 어떠한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마침내 복을 주시는 신실하신 분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