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기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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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상 15장_쇼가 아니라 예배가 되려면

  • 느헤미야강
  • 2016-0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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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309 새벽기도회
 
쇼가 아니라 예배가 되려면
역대상 15;1-15
 
역대상 13장에서 다윗은 하나님의 임재와 말씀을 상징하는 법궤를 예루살렘으로 모셔오기 위해 지극한 정성을 들입니다. 그러나 참담한 실패로 끝맺고 말았습니다. 다윗이 법궤를 모셔오고자 했을 때 다윗은 아비나답의 아들들인 웃사와 아효와 함께 중대한 오류를 범하고 말았습니다. 웃사와 아효에게는 대를 이어 하나님의 궤를 지키고 있었다는 자부심이, 다윗에게는 하나님의 궤를 모셔 와야 한다는 열심이 있었지만 그 누구도 하나님의 궤를 올바로 옮기는 법을 몰랐고 그 결과는 참담한 비극으로 끝나고 말았습니다.
이 비극은 말씀에 대해 무지한 채 종교적 열심과 자부심만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가를 깨우쳐주고 있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을 깊이 사랑하는 사람이었고, 하나님을 사랑하기에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 순종했지만 웃사의 죽음으로 인해 그는 자신의 무지함을 자각했습니다.
 
“전에는 너희가 메지 아니하였으므로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를 찢으셨으니 이는 우리가 규례대로 그에게 구하지 아니하였음이라 하니”(13절)
 
다윗은 하나님의 궤는 수레에 싣고 아무나 운반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구별하신 레위인들이 어깨에 메고 옮겨야 함을 알아냈습니다. 이러한 지식을 바탕으로 그는 하나님의 궤를 모셔오기 위한 준비를 철저히 했습니다.
 
“또 하나님의 궤를 둘 곳을 마련하고 그것을 위하여 장막을 치고”(1절b)
 
먼저 다윗은 하나님의 궤를 둘 수 있는 장막을 준비했습니다. 그리고 아론의 자손들,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을 불러 모았습니다. 5~7절에는 레위의 세 아들들 그핫, 므라리, 게르솜 자손을 언급하는데 둘째 그핫(고핫)을 먼저 소개합니다. 8~10절에 언급된 명단 역시 그핫 자손들로 이들은 바로 언약궤를 포함한 성막의 모든 기구들을 운반하는 책임을 맡은 자들이었습니다. 법궤를 모셔오기 위해 말씀에 근거한 적임자들을 세웠습니다.
뿐만 아니라 다윗은 이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에게 특별한 부탁을 합니다.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레위 사람의 지도자이니 너희와 너희 형제는 몸을 성결하게 하고 내가 마련한 곳으로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의 궤를 메어 올리라”(12절)
 
다윗은 언약궤가 거할 수 있는 처소를 마련하고, 언약궤를 돌보고 운반하는 사람들을 세운 뒤 그들을 성결하게 준비시켰습니다. 이로써 우리는 다윗이 하나님의 궤를 모셔오기 위해 얼마나 열심히 하나님의 말씀을 배웠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이러한 다윗의 모습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을 섬긴다는 것은 뜨거운 열정만으로 되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섬긴다는 것은 철저히 하나님에 대해 공부하고 배운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올바로 섬기기 위해 우리는 열심히 하나님을 알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을 모두 알았다고 생각하는 순간 우리 안에는 영적 교만이 싹트기 쉽습니다. 다윗이 처음 하나님의 궤를 모셔오려고 했을 때, 그는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 당시에도 다윗만큼 하나님을 깊이 사랑하고 하나님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사람은 없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웃사의 사건을 통해 다윗의 영적 교만을 깨트리고자 하셨습니다. 자신의 무지함을 깨달은 다윗은 철저히 하나님의 말씀을 연구하고 세밀한 것 하나라도 놓치지 않기 위해 애를 썼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몸부림을 통해 하나님을 더욱 깊이 사랑하고 섬길 수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되 올바로 섬기기 위해 하나님을 깊이 알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되 날마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 자라 가야 합니다.
하나님을 아는 것만큼 하나님과 더 깊은 교제를 나눌 수 있고,
하나님을 아는 것만큼 우리의 기도 또한 더욱 깊어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아는 것만큼 우리의 내면 깊은 곳에는 요동치지 않는 생수의 강이 흐르게 됩니다.
 
이어서 다윗은 하나님의 궤를 모셔오는 일을 위해 특별한 사람들을 세웁니다. 16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다윗이 레위 사람의 어른들에게 명령하여 그의 형제들을 노래하는 자들로 세우고 비파와 수금과 제금 등의 악기를 울려서 즐거운 소리를 크게 내라 하매”
레위인들이 법궤를 어깨에 메어갈 때 레위인들로 하여금 ‘즐거운 소리’를 내도록 했습니다. 잔치와 축제가 되게 했습니다.
 
이 말씀을 13장과 비교하여 주목할 부분이 있습니다. 대상13;5절에도 온 이스라엘을 불러 모았고, 8절에는 다윗과 온 백성들이 춤추고 축제가 되게 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13장에서 보여주었던 축제는 그대로 재연되고 있습니다. 13장과 15장의 축제가 동일한 것처럼 보이지만 그러나 전혀 다른 본질을 지니고 있습니다.
13장의 축제가 다윗 자신의 열심을 드러내기 위한 ‘쇼’에 불과했다면,
15장의 축제는 하나님의 용서하심과 은혜에 대해 진심으로 기뻐하고 감사하는 ‘예배’인 것입니다. 13장에도 노래하는 사람들이 있었으며 악기를 연주하는 사람들, 그리고 힘을 다해 춤을 추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15장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15장의 축제가 구경거리가 아닌 예배가 될 수 있었던 것은 그 축제의 중심에 하나님이 계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진정으로 예배한다는 것은, 하나님을 정치적으로 그 어떤 수단으로 이용하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오직 우리 경배와 찬양의 대상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궤가 오벳에돔의 집에서 3개월을 머무르는 동안, 그리고 하나님께서 그 3개월 동안 오벳에돔의 집에 복 주시는 것을 보면서 다윗은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어리석음과 무지함을 철저히 회개했고 비로소 하나님 앞에서 참된 예배자로 회복될 수 있었습니다.
 
때로 우리의 신앙을 ‘과시용’ 내지 ‘전시용’으로 내세우고 있지는 않는지요?
우리의 신앙이 전시용이 되기 시작할 때 이미 하나님은 예배의 대상이 아니라,
우리의 허영을 위한 수단이 되어버릴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 어떤 경우에라도 우리 예배의 대상이 되셔야 하며,
이것이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지켜져야 하는 도리이자 예의입니다.
올바른 신앙은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는 데서 시작합니다.
이 올바른 관계 안에서만 우리의 예배는 비로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는 참된 예배이자 축제가 될 수 있습니다.
오늘 하루의 삶 속에서 하나님을 온전히 높여드리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