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기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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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상 20장 - 현실,대적,문제가 커도
- 느헤미야강
- 2016-0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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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330(수) 새벽기도회
현실도 보되 하나님을 보면 소망이 됩니다.
역대상 20장
역대기는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갔다가 돌아온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소망을 주기 위해 쓰여진 성경입니다.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으로 이방민족에게 끌려가 노예생활을 한 이스라엘 민족에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역사속에서 어떻게 하셨는지를 이야기해 줌으로써 소망을 가질 것이 없는 이스라엘 민족에게 소망을 주고자 쓰여진 성경입니다.
오늘 말씀은 두 단락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첫 번째 단락은 20장1절부터3절까지입니다.
이 부분은 다윗이 랍바성을 점령한 사건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 단락은 4절부터8절까지로 블레셋 사람을 무찌른 이야기입니다.
첫 번째 이야기인 다윗이 랍바성을 점령한 사건을 보면 역대기가 쓰여진 의도가 보여집니다.
암몬 자손의 땅에 있는 랍바성을 점령한 사건은 사무엘하 11장에 동일하게 나옵니다.
그런데 사무엘하 11장에 나오는 랍바성을 점령한 사건 이야기와
역대상 20장에 나오는 랍바성을 점령한 사건 이야기를 서술한 것에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사무엘하 11장에는 다윗이 우리야의 아내 밧세바를 범한 사건이 나오는데 역대상에는 그 이야기가 없습니다.
다윗은 랍바성을 점령할 때 충성스러운 우리야를 요압을 통해 죽게 만듭니다.
이 사건은 다윗의 일생 가운데 가장 수치스럽고 부끄러운 부분 중의 하나입니다.
다윗 이야기에 빠지지 않고 나오는 이야기가 바로 우리야의 아내 밧세바를 범하고 우리야를 죽게 만든 사건입니다.
그런데 역대기에는 이 이야기를 하고 있지 않습니다.
역대기 저자는 다윗의 허물이 될 만한 사건은 이야기하지 않음으로써 다윗은 잘못이 없는 성군이었음을 말하고 싶은 것이 아닙니다. 그랬다면 역대상 21장에서 다윗이 인구 조사를 함으로써 하나님께 범죄한 이야기도 기록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다윗이 범한 두 가지 죄악의 성격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다윗이 밧세바를 범한 사건은 개인적이고 도덕적인 죄악입니다. 반면에 인구조사는 이스라엘의 인구를 파악함으로
전쟁에서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에 대한 믿음보다는 사람의 힘에 더 의존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역대기에서는 다윗의 신앙적이고 영적인 죄악을 집중해서 지적하고자 합니다.
그렇다고 밧세바를 범죄한 도덕적인 범죄가 결코 인구 조사를 한 사건보다 죄가 가볍다는 것이 아닙니다.
역대상에서 그 내용을 서술하고 있지 않은 이유는 다윗을 통해 역사하신 하나님의 승리에 그 초점을 맞추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역사와 그분에 대한 신앙이 어떠해야 함을 역대기는 소망으로 풀어냅니다.
역대기는 다윗 개인의 도덕성과 다윗 개인의 능력에 이스라엘의 흥망성쇠가 달린 것이 아니라
유구한 인류역사 가운데 하나님의 백성의 신앙에 대해 섭리해 오신 하나님의 승리에 그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그래서 역대상이 처음 시작될 때 아담의 족보부터 시작되는 것입니다.
태초의 인간이 아담부터 하나님은 우리에게 역사하시고 간섭하고 계셨다.
그 역사와 섭리가 끊어진 순간이 있더냐. 이것을 족보를 통해서 말해줍니다.
그리고 다윗의 이야기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을 위한 나라를 세우시고 승리케 하시는데 감히 막을 자가 있더냐. 이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바벨론 포로에서 귀환하여 소망을 가질 것 없는 그들에게 하나님께서는 다윗을 통해 암몬 자손을 무찌르고
랍바 성을 점령하셨다. 하나님의 승리는 감히 그 누구도, 그 어떤 인간의 연약함도 막을 수 없다.
그러므로 너희의 연약함과 실패로 낙망하지 말고 하나님의 승리를 주목하고 소망하라.
이 이야기를 위해서 역대기 저자는 과감하게 밧세바 이야기를 생략하고 다윗이 랍바를 함락시키고 승리의 영광을 취한 것만을 서술합니다.
두 번째 이야기인 블레셋 사람들을 무찌른 이야기는 앞의 첫 번째 이야기를 더욱 선명하게 해 줍니다.
4절부터 8절까지의 내용을 자세히 살펴보십시다. 뭔가 성경이 일관되게 전달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4절을 보면 십배를 죽이고 항복을 받은 이야기입니다.
5절을 보면 골리앗의 아우를 죽인 이야기입니다.
6절을 보면 가드에서 전쟁해 승리한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이들을 어떻게, 어떤 전략으로, 어떤 능력으로 죽였다는 이야기가 없습니다.
그들이 얼마나 강력했는지는 빼 놓지 않고 하고 있습니다.
4절은 키 큰 자의 아들을 죽였다고 합니다.
5절은 골리앗의 아우를 죽였는데 창자루가 배틀채 같았다고 합니다.
6절을 보면 손가락 발가락이 여섯 개씩이나 되는 괴물이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결론이 어떻게 되었다고 합니까?
8절을 보면 키 큰 자의 소생이라도 다윗의 손과 그 신하의 손에 다 죽었다고 이야기합니다.
우리의 힘이 이렇게 강력했고 우리의 전술이 이렇게 뛰어났기에 우리는 승리했다.
이렇게 말해야 될 것 같지 않습니까? 그런 이야기는 없고
전부 우리의 적들이 얼마나 강력했는가만 이야기합니다.
그 결론이 우리가 그들을 다 무찔렀다. 이것입니다.
그러니까 너희들을 치고 넘어뜨리려고 하는 대적이 아무리 강력하더라도 겁먹지 말고
두려워 말고 물러서지 말아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현실속에서 우리를 괴롭히는 고통들은 결코 약하지 않습니다.
우리에게 다가 온 죄악의 무게와 질병의 고통과 인간관계로 인한 고통은 결코 약하지 않습니다.
그것을 두 눈 딱 감고 ‘아멘. 믿습니다.’ 한다고 그 고통이 사라지는 것이 아닙니다.
없는 셈 치고 아멘한다고 그것이 결코 사라지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적들은 결코 만만하지 않습니다. 믿음으로 기도한다고 강력한 적들이 갑자기 작아지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으로 기도하며 나아간다고 골리앗과 같은 사람이 갑자기 삭개오처럼 작아지지 않습니다.
그것을 성경은 약속하고 있지 않습니다.
성경이 약속하고 있는 것은 하나님의 백성을 공격하고, 하나님의 백성을 넘어뜨리려고 하는
그 어떤 악하고 강력한 것에도 하나님은 실패하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를 넘어뜨리고 쓰러지게 만드는 고통과 장애보다 우리의 능력과 힘이 더 강력해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백성을 세우시고자 하면 그 누구도 막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매일 매일 다가오는 삶의 질곡으로 인한 고통은 참으로 큽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마주해야만 했던 거인들과 같습니다.
그 고통에 대해, 그 공격에 대해 우리는 두 눈을 감아버릴 수 없습니다. 숨어 버릴 수도 없습니다.
우리는 두 눈을 부릅뜨고 그 고통을 그 적들을 직시해야만 합니다.
강력하고 거대해서 우리를 움츠러들게 만들고 눈물나게 만드는 그 적들을 보아야만 합니다.
그리고 또 우리는 보아야만 합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백성을 세우시고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백성을 높이시려는 하나님의 승리를 보아야만 합니다.
그것에 우리의 소망이 있습니다. 우리 각자가 당한 삶의 현장에서, 우리 각자가 당하고 있는 남모를 고통에서 하나님은 우리를 세우시고 우리를 도우십니다. 그 하나님의 승리가 다윗과 이스라엘 백성들이 경험했던 것이요,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온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나님께서 주시고자 하는 소망이었으며, 2016년 3월30일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하나님께서 주시고자 하는 소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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