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기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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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하17장 - 썩은 동아줄
- 느헤미야강
- 2016-0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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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203(수) 새벽기도회
열왕기하 17장
왕하17장은 북이스라엘 마지막 왕 호세아왕때의 이야기입니다.
1절로 6절까지를 전체적인 큰 틀입니다. 호세아가 이스라엘 왕으로 9년을 다스렸고,
여호와보시기에 악한 왕이었습니다. 3절에, 앗수르가 침공하자 조공으로 달랩니다.
그러는 사이 북이스라엘에는 친 앗수르파와 친 애굽파 사이에 갈등이 있었습니다.
애굽과 화친하는 쪽으로 결론 나자 앗수르에게 조공을 끊었습니다.
그러자 앗수르가 자신들을 배반한 호세아를 감옥에 넣고 사마리아를 3년동안 포위한끝에
사마리아를 점령하였습니다. 이 해가 주전722년이었습니다.
호세아는 애굽과 손 잡으면 되는 줄 알았으나 한마디로 썩은 동아줄을 잡은 것입니다.
줄을 잘못 선 호세아는 자신과 나라를 파멸의 구렁텅이로 몰아넣게 되었습니다.
앗수르의 점령지역에 대한 정책은 혼합정책이었습니다. 정복지역의 백성들을 타 지역으로 보내고,
타지역의 정복백성들을 이스라엘에 거주케 하는 방식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앗수르로 끌고가 거주케 하고,
주변정복지의 사람들이나 바벨론 사람들을 사마리아에 거주케 하였습니다.
그 결과 결혼과 생활, 문화와 가치들이 섞이게 되었고 부정적인 의미로 사마리아인이라는 말이 유래되었습니다. 유대교와 이방종교도 혼합되게 되었습니다.
그 후 유대인들과 사마리아인들간에 상종도 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이 종교혼합주의가 무서운 이유는 하나님을 믿는데 다른 것도 믿는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한 번도 안 믿는다 하지 않았고, 부정하지 않았지만
여전히 세상적인 다른 가치와 방법을 또한 중요하게 여기고 놓지 못하게 하는데 있습니다.
이것이 우리를 망하게 하는 것입니다.
이로써 북이스라엘 왕국은 끝나게 됩니다.
왕이 외교정책을 잘못해서 그리 된 것이 아닙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받은 첫 번째 은혜는 2절입니다.
2절,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으나 다만 그 전 이스라엘 여러 왕들과 같이 하지는 아니하였더라.
악하긴 했어도 앞선 왕들처럼 심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의 통치시대에 멸망이 왔습니다.
다른 지도자들보다 좀 낫다고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
리더십의 진정한 평가는 다른 왕들과 비교하는 상대적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절대적인 기준에 따라 이루어집니다.
앞에 서 있는 사람보다 조금 나은 수준으로,
다른 사람보다 잘한다는 수준으로 우리의 믿음이 정립됨이 아니라
하나님기준에서 잘하는 것 되어야 합니다.
호세아는 자신과 백성들이 확실한 회개와 방향 전환을 했어야 되었습니다.
그것이 안되면 하나님의 심판을 막을 수 없습니다.
열왕기의 저자는 북 이스라엘의 멸망 사건을 기술한 뒤,
이스라엘이 왜 멸망하게 되었는지에 대해 설명을 붙입니다.
첫째는 여로보암이 잘못 닦아 놓은 리더십 패턴을 벗어나지 못한것입니다.
처음 길을 닦는 사람의 역할이 이렇게 중요합니다.
자식은 아비의 잘못부터 자연스럽게 닮아버린다고 합니다.
아버지의 죄악은 자손의 미래를 가두는 보이지 않은 감옥과도 같습니다.
여로보암은 자신이 뿌린 잘못된 씨앗이 후대 왕들에게까지 계속 이어져
나라를 파멸시키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을 것입니다.
두 번째는 우상숭배입니다.
금송아지, 아세라목상, 천체숭배, 자식을 제물로 바치는 인신제사, 복술과 사술입니다.
왜 하나님께서 우상숭배를 그토록 금하셨을까요?
인간은 자기가 예배하는 대상을 닮게 되어 있습니다.
우상을 숭배하면 우상이 지향하는 삶대로 죄를 함부로 짓고 살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우상숭배로 들어가면 어떤 선지자의 말씀도 듣지 않게 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을 버리면 이방인처럼 풍요와 번영의 삶을 살 것으로 기대했을것이나
하나님을 버리면 이방인처럼되는 것이 아니라 포로가 되고 가나안땅에서 내 쫓김당하는 것이었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아무리 우상을 섬겨 큰 복을 받은것처럼 보여도 쳐다보면 안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세 번째는 하나님의 은혜를 잊었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가나안에 이르기까지 실수도 많았지만 그래도 하나님을 기억했으나
가나안에 정착하고 난 후 주위 나라들의 법과 시스템을 답습하기 시작했습니다.
고난중에 하나님께 매달리는 것은 쉬운 일입니다.
그러나 모든 것이 안정되고 풍성해지고 내게 힘이 생기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축복의 단맛에 취해 복의 근원이신 하나님을 잊어간 것입니다.
이제 북이스라엘이 멸망한 뒤에도 남유다는 더 남겨두신 이유는 기회를 더 주시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러나 불행히도 하나님이 두시는 덤의 축복의 기회를 살리지 못하고 결국 바벨론에 멸망하게 되었습니다.
기회를 주어도 살리지 못하면 구제받을 도리는 없습니다.
오늘 하루, 상대적인 비교를 통해 자신의 나음을 주장하는 신앙이 아니라
하나님앞에서 절대적인 기준을 가지고 믿음을 성숙시켜 나가기를 바랍니다.
세상을 섬기면 세상에서 성공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의 포로되고
하나님의 약속에서 버림당할 수 있음을 기억하고 바른 하나님의 사람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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