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기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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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상 7장 - 납달리 지파 과부아들 히람

  • 느헤미야강
  • 2015-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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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207(토) 새벽기도회
 
열왕기상 7장
 
(이번 새벽기도회 말씀은 6,7장을 간략하게 묵상한 은혜를 나누다 보니 내용이 조금 깁니다.)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가는 어떤 위치에 있을때 가장 먼저 하고 싶은 일,
가장 먼저 서두르는 일을 보면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그런의미에서 솔로몬은 왕 된 후 제일 먼저 한 일이 예배하는 것이었고,
성전을 건축하는 것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나온지 480년, 솔로몬이 통치한 지 4년째 시작되었습니다.
그것은 왕권이 안정되고 건축을 위한 완벽한 여건이 되기까지 그만한 시간이 걸렸다는 것입니다.
 
 
1. 모든 철 연장소리가 들리지 아니하였더라
 
성전건축과정이 6~7장에 계속됩니다. 말씀을 읽고 묵상하면서 주신 은혜가 있습니다.
왕상6;7절입니다.
 “이 성전은 건축할 때에 돌을 그 뜨는 곳에서 다듬고 가져다가 건축하였으므로
건축하는 동안에 성전 속에서는 방망이나 도끼나 모든 철 연장 소리가 들리지 아니하였으며”
성전건축현장에서는 소리가 나지 않았습니다. 이미 다듬어진 돌을 사용했기 때문입니다.
성전은 하나님과 사람의 화해의 장소이므로 시끄러운 소리를 내는 것이 금지되었습니다.
평화의 하나님을 모시는 곳은 침묵과 경건으로 거룩해야 했습니다.
성전은 인간의 소리를 시끄럽게 내는 곳이 아닙니다. 주님의 임재앞에 잠잠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교회안에서 인간의 생각과 소리를 너무 많이 내지 않아야 합니다.
사56;7절은 “내 집은 만민의 기도하는 집이라” 했습니다.
뜨겁고 진실하게 기도하지 않으면서,
하나님을 예배하지 않으면서 회의와 잡담을 너무 많이 하는 것도 좋은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제대로 체험한 사람들이 모였다면,
정말 정성으로 준비한 사람들이 일한다면 교회의 일은 소리없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조용하면서도 물 흐르듯이 매끄럽게 행해져야 합니다.
이것이 솔로모의 성전공사에서 소리가 아지 않았다는 사실이 주는 의미입니다.
 
 
2. 하나님의 타임아웃
 
왕상6;11-13절입니다. 11절은 “여호와의 말씀이 솔로몬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이 말씀은 성전 외부를 끝내고 내부 공사에 들어가기 직전에 하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이 구절이 의미있게 다가왔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일을 할때 너무 좋으면 흥분하고 좋아서 자칫 지나치기 쉽습니다.
하나님은 사라지고 일만, 결과만 보일때가 있습니다.
오늘 구절은 하나님의 일을 하는 과정에서도 순간순간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서
동기와 마음가짐을 바로 잡아야 함을 보여줍니다.
이 성전은 순종과 함께 할때에만 의미 있음을 말씀하십니다.
 
내 법도를 따르라, 율례를 행하라, 계명을 지켜 그대로 행하라입니다.
이 순종이 전제될때 다윗에게 약속한 것을 이루어 주실 것이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가운데 임재하시고 버리지 않으실 것이다.
 
말씀묵상하면서 주신 은혜는,
아무리 화려하고 웅장한 건물을 지어도, 말씀에 순종하지 않으면
그 노력과 건물이 아무 소용없다는 뜻입니다.
실제로 이 성전이 훗날에 불순종의 결과로 비참하게 무너지게 되었습니다.
교회역사도 마찬가지입니다.
진정한 성전은 우리 마음속에 있습니다.
우리의 매일 매일의 삶이 하나님의 말씀과 법도, 계명을 지키고 행할때에만
우리 역사 온전하게 지어져 가는 것임을 말씀합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만이 진정한 성전되시고, 우리를 지어가시는 분이십니다.
예수님만이 성전을 떠받드는 기둥이시며, 성전의 기초가 되시는 머릿돌 이십니다.
오늘도 겸손하게 진실로 주님을 찾는 여러분되어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성전을 이루고 지어져가는 삶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3. 아직은 괜찮은 솔로몬
 
왕상6;38절은 7년동안 성전을 건축하였고, 7;1절은 13년동안 왕궁을 건축하였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영어 번역본 NIV나 KJV를 보면 다 7절앞에 부정적인 개념의 ‘그러나’로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성전보다 왕궁을 짓는데 걸리는 시간이 두 배가량 걸렸습니다.
성경을 가만히 보면 높이만 같고 왕궁이 성전보다 2배정도의 규모입니다.
2절을 보면 레바논산 최고급 백향목을 사용했습니다.
8절은 부인인 바로의 딸을 위해 똑같은 궁을 지었습니다.
물론 성전과 왕궁의 규모를 비교하기에는 무리가 있습니다.
왕궁은 단순히 왕이 사는 공간만이 아니라 본문에서처럼 재판을 하는 공간도 필요하고,
국정을 운영하는데 많은 인력들이 있어야 하기에 성전에 비해 규모가 훨씬 더 클 것입니다.
또한 왕비로 맞아들인 바로의 딸을 위해 따로 궁궐을 지은 이유에 대해 역대하 8:11은 다음과 같이 증거합니다.
“솔로몬이 바로의 딸을 데리고 다윗 성에서부터 그를 위하여 건축한 왕궁에 이르러 이르되
내 아내가 이스라엘 왕 다윗의 왕궁에 살지 못하리니
이는 여호와의 궤가 이른 곳은 다 거룩함이니라 하였더라”(역대하 8:11)
즉 솔로몬이 왕비로 맞아들인 바로의 딸에게 왕궁을 지어준 것은
결코 왕으로서 자신을 과시하기 위해서거나 또는 이방인인 바로의 딸로 인해 하나님을 져버린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결코 더럽히지 않으려는 그의 하나님을 향한 경외함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것입니다.
남편으로서 이방 여인인 부인에게 자신과 같은 규모의 궁을 지어주었다는 것은
그가 바로의 딸을 얼마나 사랑하고 배려하고 있는가를 잘 나타내주기에 긍정적인 면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이방 여인을 향한 그의 모습에 앞으로 어떤 모습으로 변해갈까? 불안감을 감출수가 없습니다.
 
계속해서 이어지는 다음 문장들은 솔로몬을 향한 일말의 불안감을 어느 정도는 해소시켜 줍니다.
문맥상으로는 성전의 내부공사 완료 후에 7장 13절 이하 성전 외부에 야긴과 보아스 두 기둥을 설치하고,
성전제사에 사용될 기구들을 만들고,
성전봉헌식을 한 후에 7장1절-12절까지의 솔로몬의 왕궁을 건축하는 순으로 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열왕기서 기자는 이 순서를 따르지 않고 성전이 완공된 후에 솔로몬의 왕궁을 건설하고
이후에 성전제사에 필요한 기구들을 만드는 과정의 순으로 기술을 했습니다.
 
 
4. 납달리 지파 과부의 아들 히람!
 
7;13,14절, “솔로몬 왕이 사람을 보내어 히람을 두로에서 데려오니.
그는 납달리 지파 과부의 아들이요 그의 아버지는 두로 사람이니 놋쇠 대장장이라
이 히람은 모든 놋 일에 지혜와 총명과 재능을 구비한 자이더니 솔로몬 왕에게 와서 그 모든 공사를 하니라”
납달리 지파 여인이 이방인인 두로 남자와 결혼했습니다.
두로 남자는 놋쇠 대장장이로 그들 사이에는 히람이라는 아들이 있었는데,
 히람은 아버지가 죽기 전에 놋 일에 대한 모든 기술을 전수받았습니다.
솔로몬은 두로에 있던 놋쇠 대장장이로서는 최고의 경지에 오른 히람을 데려와서
성전에 필요한 기둥과 성전제사에 사용될 기구들을 만들게 합니다.
 
유대인들은 모계혈통주의 전통을 지니고 있습니다.
즉 아버지가 이방인이라 할지라도 어머니가 유대인이면 그 자식은 유대인이지만,
아버지가 유대인이고 어머니가 이방인이면 그 자식은 유대인으로 취급하지 않습니다.
이런 면에서 히람은 디아스포라 유대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놋 다루는데 있어서 당대 최고의 기술자 히람은 야긴과 보아스 기둥도 세웠고,
바다와 수레와 물두멍, 성전에 필요한 모든 기구들을 놋으로 정교하게 만들었습니다.
놋으로 만든 그 양이 얼마나 되었는지를 이렇게 증거하고 있습니다.
만약 두로의 히람이라는 사람이 없었다면 성전의 놋 장식은 누가 했을까를 생각해보면,
하나님의 놀라우신 섭리하심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당시 유대 여인이 이방인 두로 사람과 결혼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사연이 있었겠습니까?
만나서는 안 될 두 사람의 만남이었지만,
하나님께서는 이 사건을 당신의 사역에 꼭 필요한 한 사람을 양성하도록 역사해주셨습니다.
히람이라는 인물에 대해
“히람은 모든 놋 일에 지혜와 총명과 재능을 구비한 자이더니
솔로몬 왕에게 와서 그 모든 공사를 하니라”(14)
 
즉 본문에 의하면 히람은 두로에 있었지만 그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을 살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만약 그가 두로라는 이방국가에 살면서 그곳 이방신을 섬기고 있었다면
하나님의 성전에 들어가는 온갖 장식품과 기구를 만드는 일에 참여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삶의 터전을 떠난다는 것은 일반인으로서는 참으로 어려운 결단입니다.
두로에 살던 그에게는 자신의 고향인 두로를 떠나 외지인 이스라엘로 올 수 있었던 것은
그에게 신앙심이 있었다는 것이고,
이는 히람의 어머니의 교육에 의해서였을 것이라고 유추할 수 있습니다.
 
한 집안에서 여인이 어떤 역경에서도 자신의 중심을 지키고 있다면,
그 집안에는 반드시 하나님의 섭리하심이 이처럼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5. 야긴과 보아스
 
“이 두 기둥을 성전의 주랑 앞에 세우되 오른쪽 기둥을 세우고 그 이름을 야긴이라 하고
왼쪽의 기둥을 세우고 그 이름을 보아스라 하였으며”(27)
야긴은 '그가 세우셨다'라는 뜻이고, 보아스는 '그 안에 능력이 있다'라는 뜻입니다.
성전 건축을 마치고, 왕궁을 건설하는 동안 솔로몬은 결코 자만하거나 교만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자신이 이스라엘의 왕이 된 것이 그리고 현재의 이스라엘이 존재하는 것이
하나님께서 세워주셨기에 가능했다는 사실과 하나님의 능력에 의해서였음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 고백이 야긴과 보아스입니다.
 
이것을 뒤집으면 매 일의 삶을 야긴과 보아스의 하나님을 경외할때에는
하나님의 지혜로 살았지만 이 두 기둥의 고백이 마음에서 멀어지게 될 때에 타락하게 됐습니다.
 
혹 우리의 마음속에 있는 야긴과 보아스의 두 기둥이 흔들리고 있다면, 그 원인이 무엇일까요?
원인은 멀리 있지 않습니다. 원인은 바로 나 자신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다시 한 번 이 두 기둥을 우리 가슴에 굳게 세워보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어떠한 상황에 있다할 지라도 야긴과 보아스의 기둥을 굳게 의지한다면
우리는 좌절하거나 교만하지 않고, 하나님과 동행하는 정금과 같이 순수한 삶을 살아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