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기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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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하20장 - 15년 생명연장의 빛과 그림자

  • 느헤미야강
  • 2016-0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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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왕기하 20장


우리는 항상 과거에 대한 아쉬운 기억이 있습니다.

그래서 한 번만 기회가 더 주어진다면 더 잘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히스기야왕이 그랬습니다.

히스기야는 자신이 병들어 죽게 되었을때 하나님께 통곡함으로 기도한 결과 

하나님께서 15년의 생명을 연장시켜주셨습니다.

덤으로 받은 그 15년은 히스기야에게 과연 가치가 있는 삶이었을까요?

만일 하나님께서 내게 조금 더 시간을 주시면 그 시간을 그만큼 후회 없이 잘 사용할 수 있을까요?


1. 

왕하20;1 “그 때에 히스기아야 병들어 죽게 되매”

그 때에!

본문상으로는 앗수르의 침략앞에서 승리한 뒤로 보이나 대부분 학자들은 앗수르가 예루살렘을 포위하기 전이라고 봅니다.

북이스라엘을 멸망시킨 앗수르가 유다의 성읍들을 짓 밟으며 압박해 오는 시점에서 자신이 병들고 목숨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은 충격이었을것입니다.

기가 찬 일 이었을 것입니다. 

이러한 성경적인 배경이 맞다면 히스기야의 기도는 단순히 목숨을 연장시켜 달라는 기도가 아니었을 것입니다. 누구보다도 앗수르의 침공앞에서 위기에 처한 나라와 민족을 두고 죽어야 한다는 사실이 너무도 마음 아팠을 것입니다.

그때 히스기야가 할 수 있었던 최고의 기도는 목적이 분명한 기도였습니다.

“여호와여 구하오니 내가 진실과 전심으로 주앞에 행하며 주께서 보시기에 선하게 행한 것을 기억하옵소서 하고 히스기야가 심히 통곡하더라”(왕하20;3)

하나님, 나라와 민족을 위해 하나님 보시기에 부끄럼없는 삶 진실한 삶을 살려고 했던 것 기억해주시고 아직 내가 민족을 위해 해야할 일이 있다면 생명을 연장시켜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 기도가 하나님의 마음을 감동시켰고 15년 생명을 연장 받은 것입니다.

히스기야의 기도가 마음에 강력한 도전이 되는 것은, 하나님 보시기에 부끄럼 없는 삶과 진실한 삶은 위기앞에서 이렇게 기도할 수 있구나 입니다.

앗수르의 침략앞에서 유다 왕조를 지켜 내야 한다는 분명한 목적이 히스기야를 살려주신 것이구나.

기도에도 거룩한 목적이 있어야 되는 거구나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2.

히스기야는 죽을 병에 걸렸다 살아났습니다.

나라와 민족의 절대위기속에서 한 번 기회를 주시면 정말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과 백성 만들겠습니다. 그런 마음 가졌을테니 얼마나 열심이었을까요?

대하32;27-30절은 탁월한 경제정책을 펼쳐 온갖 보화와 산물들을 둘 거대한 창고를 세워 가득 채울 전도로 국가 재정을 든든히 했다고 기록했습니다. 다윗 성으로 거대한 지하 수로를 연결해 수자원 공급 등 거대한 국가 프로젝트도 잘 해 냈습니다.

그때에 유다 왕 히스기야가 중병에 걸렸다가 기적적으로 고침을 받았다는 소식은 바벨론까지도 전해졌던겉 같습니다. 고대사회에서는 병으로 회복된 왕이나 군주에게 이웃 나라 왕들이 축하 하신을 보내는 것은 외교적 관례였습니다. 바벨론으로서는 반 앗수르 정책을 가진 유다와 히스기야시대에 커져가는 경제력은 이용할만한 가치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겉으로는 축하 방문이나 속셈은 다른데 있었습니다.


그것을 몰랐을리 없는 히스기야!

바벨론 사신들이 히스기야 왕을 방문하고는 병에서 회복된 것도 축하 받아 마땅한데 어떻게 이렇게 부국강병을 이루었습니까?

한 껏 부추기는 말에 넘어갔을까요? 아니면 이참에 무기를 보여주어 함부로 엿보지 못하게 하려는 인간적 계산때문이었을까요?

그는 왕궁의 모든 보물 창고와 무기고를 활짝 열어서 사신들에게 다 보여주었습니다. 그리고 난후에 이사야 선지자로부터 돌이킬 수 없는 책망을 받습니다.


이에 대해 역대기자는 잘 설명하고 있습니다.

대하32;24-25절은 ‘병든후에 회복한 그가 받은 은헤에 보답지 아니하므로’ 한마디로 받은 은혜에 합당하게 반응하지 않았다는 말입니다.

사람이 어려울 때는 하나님밖에 없는 것처럼 기도하지만, 막상 위기를 돌파하고 나면 자신이 잘나사 된 줄로 착각하기 쉽습니다.

하나님은 바벨론 사신들을 통해서 이 히스기야의 마음을 시험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바벨론 방백들이 히스기야에게 사자를 보내어 그 땅에서 나타나 이적을 물을 때에 하나님이 히스기야를 떠나시고 그 심중에 있는 것을 다 알고자 하사 시험하셨더라”(대하32;31)

사신들이 어떻게 그런 중병에서 살아났느냐를 물었을때,

이때 하나님께서 의도적으로 히스기야에게서 잠시 물러서셨습니다.


히스기야는 이렇게 대답했어야 했습니다.

우리가 이렇게 부국강병을 이룬 것은 다 하나님께서 가르치시고 이끄신대로 한 덕분입니다. 우리의 힘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어떻게 살려주셨는지를 낱낱이 간증했어야 했습니다.

유다를 지키는 힘은 하나님이심을 사신들 앞에 당당히 말했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대답대신 왕궁의 보물과 창고와 무기를 열어 주며 세를 과시했습니다. 사절단 앞에서 하나님보다 세상적인 것들을 더 믿는 다는 것을 보여준 셈입니다.


말씀묵상중에 두렵고 떨리는 것은

제가 히스기야보다 더 믿음 있는 사람일까? 라는 질문입니다.

자신없습니다. 그러면 제 자신을 그보다 더 할 수 밖에 없는 존재임을 깨닫습니다.


15년을 민족의 위기앞에서 구원과 더하여 받은 생명연장의 기쁨.

그리고 다음 그가 한 일은 므낫세를 낳은 일이었습니다.

남유다 통틀어 가장 악한 왕으로 소개된 왕 말입니다.

어떻게 이런 일들이 일어날 수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