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기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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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상 19장-사랑의 호의, 최고의 축복

  • 느헤미야강
  • 2016-0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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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339(화) 새벽기도회
 
호의를 원수로 갚지 말 것은
주님을 향한 사랑의호의는 최고의 축복입니다.
 
역대상19장1-19
 
다윗은 군사, 행정조직을 완비하고 활발한 무역활동을 통해 부를 축적합니다.
이어 주변나라들과도 원만한 관계를 유지합니다. 특히 암몬과도 좋은 관계를 유지합니다.
다윗이 사울을 피해 다니던 중 암몬왕 나하스의 도움을 받은 것이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러던 중 '암몬'의 왕 '나하스'가 죽고 그 아들 하눈이 왕에 오르자 다윗은 전에 '나하스'에게 은혜를 얻은 적 있으므로 그의 죽음을 애도하는 뜻으로 조문 사절을 보내 은혜와 예의를 표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다윗의 사신들에게 정탐꾼이라고 모략하고 심한 수치와 모욕을 주어 돌려보냅니다.
사신들의 수염을 깎고 옷을 볼기 중간까지 드러내도록 잘라버렸습니다.
 
고대 근동의 남자에게 있어서 수염은 권위와 축복의 상징이며 따라서 긴 수염은 명예로운 것으로 여겼습니다.
그런 수염이 강제로 깍인다는 것은 수치와 굴욕을 의미하며, 일국의 사절로서 당한 일로는 죽음보다도 치욕스러운 일이었던 것입니다. 또한 조문 사절의 옷을 볼기 중간까지 드러나도록 잘라버렸으니 이런 모욕이 또 어디 있겠습니까?
하눈이 다윗의 선한 호의를 이와 같이 악하게 받아들이고 그 사신들을 괴롭힌 것은 사실상 다윗을 향한 모욕이며,
그에게 도전한다는 선전 포고와 같습니다.
 
암몬에게 수욕을 당한 사신들이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돌아오고 있을 때 다윗 자신은 급히 그들에게 사자를 보냅니다. 그리고 사신들을 위로하고 그들의 잘리운 수염이 자라기까지 여리고 성에 머물 것을 명했습니다.
이들이 당한 아픔과 수욕이 이스라엘 전체의 아픔과 치욕이요, 곧 다윗 자신의 고통임을 안 것입니다.
형제의 아픔을 위로하고 수치된 일을 덮어 주는 모습이야말로 이스라엘의 사신에게는 몰론 다윗 자신에게도 가장 지혜로운 처사였습니다. 이같이 선한 사람은 형제를 세워 덕을 세우는 일에 힘쓰는 자입니다.
그리고 대적들인 암몬과 아람의 연합군과 싸워 승리합니다.
호의를 호의로 받지 못함으로 결국 암몬과 아람의 입장에서는 끔찍한 일을 당하게 됩니다.
 
세상은 언제든지 어제의 호의적인 관계였으나 오늘은 적대시하는 관계가 될 수 있습니다.
선한의도, 마음을 무턱대고 믿는 것도 위험하나 신뢰, 믿음없는 사회가 얼마나 끔찍할 수 있는가를 생각합니다.
그러나 더 조심스러운 것은, 믿음의 공동체안에서도 그런 일은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습니다.
우리 믿음의 공동체안에서 신뢰할 수 있는 분위기와 믿음을 만들어가야 합니다.
 
세상은 언제든지 호의를 적대시하고 모멸을 줄 수 있으나
하나님을 향한 호의는 언제나 최고의 축복을 허락하십니다.
 
지난주 토요일 마태복음 27;57-66말씀을 묵상하면서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사랑이 담긴 호의가
얼마나 축복으로 채워주시는지를 보았습니다.
예수님께 십자가에서 죽으실때에 아리마대 요셉은 자신의 죽음을 위해 준비해 두었던 무덤에
 예수님의 시신을 안치했습니다.
 
눅23;50-51절을 보면 ‘공회의원, 선하고 의로운 사람,
예수를 죽이려는 결의와 행사에 참여하지 아니한 자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리는 자라.’
마태복음 27장은 예수님의 제자로도 소개합니다.
모든 제자들이 주님을 배신하고 도주해 버리는 그 죽음과 절망과 공포의 극한 상황속에서
어떻게 두려움 없이 자신을 노출시키면서 예수님의 장례식에 앞장 설 수 있었을까요?
 
예수님을 육적인 욕구로만 따라다녔을 뿐 영적으로 만나지 못한 제자들은
가장 결정적인 순간에 주님을 버리는 배신자들이 되었습니다.
반면에 절망의 언덕에서 절망보다 더 크고 찬란한 빛을 보여준 사람.
주님을 위한 사랑의 호의를 보여준 아리마대.
주님은 그들의 사랑을 도구로 삼아 부활하셨습니다.
 
아리마대 요셉은 자기 자신을 위해 마련해 두었으나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 때문에 포기했던 새 무덤이었습니다.
그러나 더 이상 시체를 장사 지내는 무덤이 아니었습니다.
눈부신 부활의 현장이었습다.
세마포는 더 이상 죽은 시체를 감싸않았던 천이 아니었습니다.
부활의 증거품은 빈 무덤, 입으신 그대로 남겨진 세마포였습니다.
 
아리마대 요셉이 드린 무덤이 부활의 최고의 증거품이 되었습니다.
주님의 몸에 향을 품고 함께 싸 드렸던 세마포가 증거물이 되었다.
이 보다 더 큰 기쁨과 감격이 있을까요?
 
세상은 우리의 호의에 대해서 얼마든지 적대적일 수 있으나 하나님을 향한
사랑의 호의는 아리마대 요셉처럼 최고의 영광의 증거가 되게 하십니다.
우리 역시 역시 이 시대의 아리마대 요셉이 된다면 우리에게도 같은 은혜가 임할 줄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