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기도회
간절한 기도, 은혜가 충만한 말씀, 주님의 말씀으로 늘 새롭게 변화되는 새생명교회입니다
욥기 22장 _ 기준이 내가 아니라 하나님이어야!
- 느헤미야강
- 2016-08-19
- 707 회
- 0 건
20160819(금) 새벽기도회, 401장
욥기 22:1-30
사람은 누구나 자신만의 정의가 있습니다. 그 정의에 따라 타인을 정죄하기도 하며, 자신을 그 안에 가두기도 합니다. 정의는 ‘어떤 말이나 사물의 뜻을 명백히 밝혀 규정한다’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이 정의의 주체가 사람일 때 문제가 생겨납니다. 무엇인가를 판명하려는 개념의 기준을 자기 자신으로 삼기 때문입니다. 자신을 기준으로 삼는 정의는 자신을 의로운 자리에 앉히고, 다른 사람을 판단하게 됩니다.
로마서 2장 1절에서는 판단하는 사람에게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남을 판단하는 사람아, 누구를 막론하고 네가 핑계하지 못할 것은 남을 판단하는 것으로 네가 너를 정죄함이니 판단하는 네가 같은 일을 행함이니라”
사람은 자기 자신에 관하여는 매우 관대합니다. 그러나 타인의 잘못에 대하여는 인색합니다. 때로은 관대함 보다는 잔인할때도 있습니다.
22장은 욥의 세 친구 중 엘리바스의 마지막 이야기입니다.
엘리바스의 첫 번째 발언은 욥을 점잖은 어조로 타이르며 그를 회개하도록 권면하나, 욥이 이를 받아들이지 않자 15장의 두 번째 발언에서는 매우 강한 어조로 욥을 저주합니다. 15장 34, 35절입니다.
“경건하지 못한 무리는 자식을 낳지 못할 것이며 뇌물을 받는 자의 장막은 불탈 것이라 그들은 재난을 잉태하고 죄악을 낳으며 그들의 뱃속에 속임을 준비하느니라”
엘리바스의 첫 번째와 두 번째 발언에 이어, 세 번째 발언 역시 하나님의 심판은 바로 욥의 죄악에서 비롯한 결과라는 근본적인 논점은 변함이 없습니다.
22장 4, 5절입니다.
“하나님이 너를 책망하시며 너를 심문하심이 너의 경건함 때문이냐 네 악이 크지 아니하냐 네 죄악이 끝이 없느니라”
엘리바스는 처음에는 욥을 위로하고자 시작한 대화였으나 시간이 흐를수록 자신의 생각과 정의를 기준으로 욥을 판단하고 평가합니다.
엘리바스는 자신의 의로 타인의 불행과 고난을 큰 죄악의 결과로 단정 지으며, 욥이 짓지도 않은 악행까지 덧붙여 말합니다. 22장 6절에서 9절입니다.
“까닭 없이 형제를 볼모로 잡으며 헐벗은 자의 의복을 벗기며 목마른 자에게 물을 마시게 하지 아니하며 주린 자에게 음식을 주지 아니하였구나 권세 있는 자는 토지를 얻고 존귀한 자는 거기에서 사는구나 너는 과부를 빈손으로 돌려보내며 고아의 팔을 꺾는구나”
결국 엘리바스는 무고한 자를 크나큰 악행 자로 만듭니다. 욥은 처음부터 하나님께서 인정한 동방의 의인이며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였습니다.
엘리바스가 주장한 대로 욥은 이유 없이 형제를 볼모로 잡으며, 헐벗은 자의 옷을 벗기지 않았습니다. 목마른 자, 주린 자에게 인색하게 대하지도 않았습니다. 욥의 부유함은 부당하게 자신의 권세를 이용하여 취하지도 않았으며, 고아와 과부를 괴롭히지도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엘리바스는 고난을 죄로, 자신을 상대적으로 의로운자로 이야기하고자 하나님을 인용합니다. 이처럼 기준이 자신이 되어버리면 언제든지 언제든지 하나님과 말씀이 왜곡될 수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 역시 죄로 인한 고난을 말한다면 아무도 자유로운 자 없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의롭게 된 것일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엘리바스가 말한바처럼 그렇게 대하지 않으십니다. 엘리바스의 정의는 저 멀리 있는 하나님, 우리의 행동에 따라 단순히 심판자의 하나님으로 비칠 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와 늘 동행 하시며, 우리의 기쁨이 그의 기쁨이 되고, 우리의 슬픔과 고통이 그의 슬픔과 고통이 됩니다.
오늘 본문에 나타나는 엘리바스의 모습 속에서 우리의 모습은 없는지를 살펴봅니다.
엘리바스는 자신의 정의로 타인을 바라보며 정죄하고 심판할 뿐 아니라 저주하기에 이릅니다. 자신의 친구이든, 괴로워하는 자이든, 오직 자신의 정의의 칼을 사정없이 내려칠 뿐입니다. 이처럼 자신의 정의 앞에 자신을 철저히 가둘 뿐 아니라, 그 기준에서 타인을 괴롭히는 삶을 살아갑니다.
우리는 어떠합니까? 혹시 겉으로 보이는 외모와 타이틀, 그 사람의 상황과 사회적 신분으로 왜곡된 시선으로 남을 정죄하거나 판단하지는 않았는지요.
위로할 이를 가슴 아프게 하고, 힘들고 지쳐 있는 이들에게 짐을 더하지는 않았는지요. 주님은 지쳐있는 욥에게 이렇게 위로하셨을 것입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오늘, 우리에게 욥과 같이 다가오는 이가 있습니까?
인생의 실패로 괴로워하며 슬피 우는 이들을 위로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주님의 긍휼한 마음으로 따듯하게 대하시기 바랍니다.
혹시 우리 가운데, 욥과 같은 고난과 슬픔에 젖어 있는 이가 있습니까?
아무도 내 마음을 이해하지 않으며, 모든 이가 손가락질할 때,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조롱당하심을 기억합시다. 세상이 이해 못 하고 조롱하여도 신실하신 주님 약속만 붙드시며 살아갑시다. 욥의 고통과 고난의 현장 가운데, 주님은 늘 항상 함께 하셨고, 그 주님께서는 우리와 동행하신다는 약속을 붙잡는 오늘이 되길 소망합니다.
- 이전글 욥기 23장 _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16.08.20
- 다음글 욥기 21장 - 주님 밖에 사모할 자 없다 16.08.1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