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기도회

간절한 기도, 은혜가 충만한 말씀, 주님의 말씀으로 늘 새롭게 변화되는 새생명교회입니다

욥기 25장 - 하나님을 아는 지식, 하나님에 관한 지식

  • 느헤미야강
  • 2016-08-24
  • 1,123 회
  • 0 건

20160824(수) 새벽기도회

하나님을 아는 지식, 하나님에 관한 지식

욥기 25장

오늘 본문 25장의 빌닷의 변론을 마지막으로 욥의 세 친구는 더 이상 등장하지 않습니다. 빌닷의 마지막 역시, 모든 죄악이 반드시 죄악의 결과일 수는 없으며 때로는 세상에서 악인이 더 흥하는 사례도 종종 있다는 욥의 말에 빌닷은 더 이상 길게 대꾸할 말을 찾지 못한 것 같습니다. 그래서인지 오늘 본문에서 빌닷은 고난의 문제보다 욥이 하나님 앞에서 항변하는 태도만을 문제 삼습니다.

하나님의 광대하심과 인간의 비천함 사이에는 넘을 수 없는 한계가 있다고 합니다. “그런즉 하나님 앞에서 사람이 어찌 의롭다 하며 여자에게서 난 자가 어찌 깨끗하다 하랴..”(4절)

큰 논쟁없이 오늘 본문의 짧은 변론 속에는 빌닷의 집요함이 나타나고 있는데, 그가 마지막까지 자신의 변함없는 결론인 ‘죄가 있기 때문에 고난을 당한다’는 말을 반복합니다.

중요한 것은 빌닷의 ‘신론’과 그에 따른 ‘인간론’은 크게 문제는 없어 보입니다..

하나님은 주권과 위엄을 가지셨고, 화평을 베푸시며, 그의 비췸을 입지 않은 자가 없다고 그는 말합니다(2-3절). 인간은 하나님이 보실 때 의롭거나 깨끗하지 못하다는 그의 말 역시 틀리지 않습니다(4절).

그러나 이처럼 말하는 것 속에서 우리는 빌닷이 ‘욥의 고난이 죄 때문에 받는 벌이라는 것’이라는 논지를 끝까지 버리지 못하고 있음을 엿보게 됩니다.

욥에 대한 빌닷의 이러한 진심어린(?) 충고에 대한 욥의 대답은

“네가 힘없는 자를 참 잘도 도와주는 구나 기력 없는 팔을 참 잘도 구원하여 주는 구나”(26:2)였습니다.

그리고 결국 욥의 세 친구의 변론에 대한 하나님의 최종 결론은 무엇입니까?

“여호와께서 대만 사람 엘리바스에게 이르시되 내가 너와 네 두 친구에게 노하나니 이는 너희가 나를 가리켜 말한 것이 내 종 욥의 말같이 옳지 못함이니라”(42:7)

욥의 친구들은 하나님의 정의로우심을 방어한다는 핑계로 자기들의 신학적인 지식과 견문으로 욥을 비난하였습니다. 더욱이 그들은 욥을 위로하기는 커녕, 고통 받는 이유만을 끈질기게 붙잡고 늘어짐으로써 욥에게 상처만을 남겨 주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에 관한 자신들의 짧은 신학적 지식을 변호하기 위해 고난 받는 자의 처지를 비난하는 경건한 위선자가 되었던 것이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아니라 ‘하나님에 관한 지식’을 말합니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은 내 삶속에서 살아냈기에 알게 된 것이고, 하나님에 관한 지식은 내 삶과는 상관없는 것입니다.

예수님 당시 바리새인들은 자신의 논리와 명분에 빠져 사람을 살려야 하는 ‘하나님의 법’을 오히려 사람을 속박하고 더 나아가 하나님을 대적하는 법으로 변질시켜 버렸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누구보다 하나님을 잘 안다고 자랑했지만 실상 예수님으로 부터 ‘독사의 자식’이라고 정죄 받아야만 했습니다.

오늘 우리의 모습은 어떠합니까?

욥기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그 많은 변론과 대화 속에서도 정작 자신은 끝까지 변화되지 않고 하나님을 화려하게 설명하지만 실상은 추측만 할 뿐인 단단한 영적 껍질을 쓰고 있는 빌닷의 모습이 우리 속에 있지는 않습니까?

우리의 ‘하나님 추측’이 확실하면 확실 할수록, 더 나아가 그것이 우리의 지식에만 뒷받침 되면 될수록 그것은 또 다른 우상을 우리 속에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오늘 뭔가를 이루고 경험하고 깨달았다고 우리의 그 이룸과, 경험함과, 깨달음을 항상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반추하지 않고, 또 겸손히 하나님과 동행하는 자리에 우리자신을 세우지 않는다면 그것들은 우리의 ‘하나님 추측’의 든든한 기반이 되어 욥의 친구들처럼 우리를 ‘경건한 위선자’들로 전락시킬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