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기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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욥기 37장 - '~라'로 끝나는 네가지 예배의 핵심

  • 느헤미야강
  • 2016-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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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910(토) 새벽기도회


'~라'로 끝나는 네가지 예배의 핵심요소;

기억하라, 높이라, 잊지 마라, 찬송하라

욥기 37장


욥기는 37장 엘리후의 네 번째 연설을 통해 사람과의 논란의 문제는 끝이 납니다. 이어 하나님의 말씀이 38장부터 42장 끝까지 나오게 됩니다.

엘리후의 이야기는 욥기 전체에서 볼 때 조금 특별한 의미가 있습니다.

형식적인 면에서 보면 첫 번째는 욥의 세 친구들과 욥의 논쟁, 두 번째는 반론없이 엘리후의 일방적인 이야기, 세 번째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넘어갑니다.

내용을 보면 엘리후의 이야기는 욥의 친구들 이야기로부터 하나님의 말씀으로 가기 위한 하나의 단계로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 내용도 엘리후의 이야기가 훨씬 더 하나님의 말씀에 가까움을 볼 수 있습니다.

오늘 37장의 이해를 돕기 위해 36장 24절을 보면,

‘하나님께서 하신 일들을 기억하라, 높이라, 잊지 마라, 찬송하라.’

네 가지로 설명하고 있는데 하나님을 향한 귀한 표현들입니다.

이것은 지금 우리 신앙에서 중요합니다. 예배는 바로 이와 같은 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배 행위는 기억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창조,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사건, 성만찬도 기억하고, 믿음으로 임재하는 성령님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무엇보다 예수님이 하신 일, 내 삶속에서 행하신 일을 기억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가 죽을 때 그런 기억이 복되게 합니다.

기독교 신앙은 기억으로 쭉 내려왔습니다. 그리고 구약에 보면 이런 일들이 반복해서 나오고 있습니다. 자녀들에게 이것을 읽혀서 기억하게 하라는 표현들이 많이 나와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는 젊은 사람들, 청소년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다 이해하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철저하게 가르쳐서 기억하게 하는 훈련들도 필요합니다.


‘기억하라, 높이라, 잊지 마라, 찬송하라.’

이런 말을 하는 이유가 36;26절에 나와 있습니다.

‘하나님은 높으시니 우리가 그를 알 수 없고 그의 햇수를 헤아릴 수 없느니라’’

높으니까 헤아릴 수 없다는 말입니다. 즉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인식을 뛰어넘는 분이라는 고백입니다. 우리의 기대와 상상을 뛰어넘으시고 지식으로 한계를 둘 수 없는 분을 기억하는 것이야말로 하나님께 영광이 되고, 그것이 삶에서 고백되어질때 또한 예배가 됩니다.

‘하나님은 높으시고 알 수 없는 분이고 햇수를 헤아릴 수 없다.’는 것을 그 다음 26;27절부터 나오는 자연현상으로 설명합니다.


이어 37장은 36장 24절에서 33절을 조금 더 진행시킨 이야기입니다.

37장 1절을 보겠습니다.

‘이로 말미암아(앞에서 한 이야기를 의미합니다) 내 마음이 떨며 그 자리에서 흔들렸도다.’

떨며 라는 말은 두려움 경외감 때문에 나타나는 반응입니다. 또한 높으신 하나님을 경험하게 되면 자신의 근원이 흔들리게 됩니다. 절대적인 존재 앞에 서게 되면 자신의 토대가 흔들립니다. 그런 경험은 아주 중요합니다.

이 하나님을 경험하게 되면 그동안 내가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하나도 중요하지 않다는 생각을 하게 되고 그럴때에 우리는 두렵고 흔들리게 됩니다. 하나님 경험이라는 것은 바로 그와 같습니다.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고 세상이 우리들에게 강요했던 것들이 아무것도 아니었다는 것을 확인하고 경험되는 차원입니다. 그래서 그동안 내 삶의 축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아무것도 아님을 깨닫고 삶의 축과 방향을 옮기게 됩니다.

이러한 것은 모세가 경험했고 이사야, 엘리야, 예레미야와 같은 모든 선지자들이 그런 경험을 했습니다. 신약성경에도 예수님이 나를 따르라고 했을 때 제자들이 모든 걸 버려두고 따랐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을 절대자로 경험하게 되면 다른 것들은 다 작아지니까 그런 걸 버릴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적어도 제자들처럼 모든 것을 버려두고 달려갈 수는 없다해도 하나님을 믿는 사람의 기본적인 자세는 그와 같습니다. 하나님이 점점 커져서 내 영혼을 가득 채우게 되면, 다른 것들은 축소돼서 중요하게 여겨지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런 경험 자체를 많은 사람들이 안 하려고 합니다. 왜냐하면 자기가 좋아하던 것, 즐거운 것들이 자기를 감싸고 있는데 그게 별거 아니라는 것을 인정하게 되면 그동안 살아왔던 자기 존재가 불안해지니까 그런 경험들을 두려워하고 가끔 그런 경험이 오게 돼도 다시 포기하게 됩니다.

그러나 그곳에서 한 걸음 더 나가야 됩니다. 그러면 어디에 집착했던 것으로부터 근원적인 자유가 가능합니다. 그때 하나님으로부터 임하는 평화가 임합니다. 이 새벽에 드리는 도전이 있습니다. 이러한 영적인 태도가 우리들에게 얼마나 자주 있었나하는 것입니다. 삶의 매 순간마다 하나님말씀 때문에 내 마음이 떨리고 삶의 터전이 흔들릴 수 있는 체험이 저와 여러분들에게 임하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