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기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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욥기 38장 - 영적 눈높이 업그레이드
- 느헤미야강
- 2016-0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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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913(화) 새벽기도회
욥기 38장
우리가 처한 극한 상황에서 우리는 때로 하나님께 묻곤 합니다.
"하나님은 왜 우리에게 이런 고통을 주십니까?",
"하나님은 도대체 어떤 분이시기에 왜 나에게 이런 고통을 허락하십니까? "
상상을 초월하는 어려움과 고통, 아픔을 당한 욥이 또한 하나님께 물었던 질문이었을 것입니다.
욥은 처절한 고통의 현장에서 자신을 위로하기 보다는 오히려 정죄하는 세 친구의 주장에 맞서 자신의 결백을 강하게 호소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계속되는 세 친구들의 고소하는 주장에 맞서 31:35절에서 하나님께 소송장을 냅니다.
"누구든지 나의 변명을 들어다오 나의 서명이 여기 있으니 전능자가 내게 대답하시기를 바라노라".
친구들의 고소에 하나님이 답변해 주시기를 요청한 것입니다.
이러한 욥의 질문에 대하여 하나님이 욥에게 직접 찾아오셔서 말씀하시는 구절이 오늘 본문 38장 1절 이하입니다.
욥에게 찾아오신 하나님은 폭풍우 가운데에서 말씀하셨습니다.
욥은 그에게 나타나신 하나님이 자신이 당하고 있는 고통의 이유에 대해 설명해 주시거나 자신을 변호해 주실 것으로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욥에게 답해주시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질문을 하십니다. 그 내용이 38장부터 41장까지입니다.
천천히 살펴보겠지만 38장~41장에 나타난 하나님 말씀의 전체 윤곽을 잡으면 그 특징이 다음과 같이 세 가지입니다.
첫째는 하나님 칭호가 여호와로 처음 나옵니다.
욥기의 앞부분에서는 하나님 호칭이 두 가지로 나옵니다. ‘엘’ 혹은 ‘엘샤다이(전능자)’가 나오다가 38장 1절에서 처음으로 ‘여호와’라고 나옵니다. 40장 1절, 3절, 6절, 42장 1절에 계속 나옵니다. 엘은 하나님이고 엘샤다이는 전능하신 하나님이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38장부터는 하나님을 전능자라는 표현보다 여호와라는 호칭을 사용하는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잘 인도해 내시고 구체적으로 자기를 드러내시고 나타내시고, 그리고 그들을 약속의 땅으로 이끌리라는 약속을 주시는 분, 특별하고 긴밀한 관계를 나타낼 때에 쓰는 하나님에 대한 호칭입니다.
멀리 계시는 분이 아니라 약속하신대로 임마누엘 하셔서 함께 하시고 인도하시는 분이 욥의 하나님이고 우리의 하나님입니다. 그리고 창조세계를 통해서 자신을 말씀하시고 질문하심으로 또 다른 차원에서의 하나님을 경험하게 합니다.
두 번째 특징은 질문 형식의 문장이 반복됩니다.
‘너는 대장부처럼 허리를 묶고 내가 네게 묻는 것을 대답 할지니라(3절)’
40장 2절에서도 다시 한 번 그런 말씀이 나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욥에게 답해주시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반문을 하십니다.
욥이 결코 대답할 수 없는 여러 질문을 통해서 하나님은 자신이 누구인지를 드러내 주고 있습니다.
"내가 땅의 기초를 놓을 때에 네가 어디 있었느냐 네가 깨달아 알았거든 말할지니라"(4절).
고통의 현장에서 '왜 자신에게 이런 어려움이 있어야만 하는지? 묻고 있는 욥에게 하나님은 나타나셔서 인간이 살아가는 땅과 하늘, 바다와 우주가운데 일어나는 모든 중요한 일들이 하나님께서 관여하시는 일임을 실례로 가르쳐 주십니다. 본문을 통해 하나님은 자신이 누구신지를 드러내 말씀하십니다.
1. 하나님은 땅과 바다, 태양을 주관하시는 분이십니다 (4-18절)
2. 하나님은 천체를 운행하시는 분이십니다 (19-21절)
3. 하나님은 기후를 주관하시는 분이십니다 (22-38절)
4. 하나님은 동물을 돌보시는 분이십니다 (39-41절)
여기까지 욥기를 묵상하면서 제 마음에 주신 은혜와 도전이 있습니다.
우리 역시 신앙생활하면서 이런저런 어려운 문제가 있을 때 기도해서 응답받는다는 생각을 합니다. 당연히 응답받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늘 그러한 방식으로 아귀가 맞아 떨어지지가 않는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기도를 응답될 때까지 부르짖으라고 말하는 것은 틀렸다고 볼 수는 없지만 반드시 그것만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도 욥에게 대답하라면서 질문을 쏟아내십니다. 한마디도 이것이다고 말씀하시지 않습니다. ‘동풍이 어떻게 됐는지 아느냐.’ 이런 식으로 욥이 원하는 그 문제와 다르게 엉뚱한 것들을 하나님이 욥에게 질문을 하고 그렇게 간접적으로 욥을 깨닫게 하십니다.
42장에 가면 욥이 결국은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듣고 회개를 합니다.
그런데 딱 부러지게 확신을 얻을만한 구절은 없습니다.
그냥 계속해서 자연의 어떤 놀라운 것들을 이야기 하면서 욥으로 하여금 하나님의 절대성을 깨닫게 합니다. 그렇게 문제가 해결이 됩니다.
우리는 늘 살아가는 이 수준에서 눈높이가 맞춰지지 않습니다. 자녀들 결혼, 취업 등등부터 시작해서 가족관계, 친지관계, 크고 작은 온갖 일상들에 파묻혀서 삽니다. 그걸 우리가 한 순간에 초월해서 살 수 있는 건 아니지만 그 문제를 하나하나 해결해야지만 살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삶의 문제안에 머물러 있되 전혀 다른 영적인 눈높이를 확보하는 게 핵심입니다. 그러면 이해되지 않았던 것, 안타까웠던 것, 마음을 요동치게 했던 것들이 해결 되는 것입니다. 욥은 그런 방식으로 해결을 받게 됩니다.
‘이게 죄냐, 아니냐. 단련이냐, 아니냐.’ 그렇게 욥과 친구들이 논쟁한 차원이 아니라 더 근원적으로 이 세계를 창조한 하나님을 향해서 닫혔던 눈이 확 뜨여지게 됩니다. 이것이 기독교 신앙의 핵심입니다.
하나님과의 일치라고 한다면 사실은 다른 문제들은 다 해결되는 겁니다.
하나님을 욥에게 하셨던것처럼 우리에게도 신앙의 근원적인 차원, 그 깊이로 들어가기를 원하십니다. 그렇게 질문하고 거기에 대해서 생각하고 답변을 얻고, 그러면서 자신의 영적인 내공이 아주 깊어지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응답은 직접적인 것이 아니라 질문에 대해 깊은 통찰의 세계로 들어가면서 하나님의 깊이를 경험하도록 하십니다. 우리의 영적 눈높이를 업그레이드 하시기를 원하십니다.
그 하나님의 깊음을 발견하고 깨닫는 오늘 한 날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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