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기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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욥기 39장-하나님의 섭리가 나타나는 두가지 영역

  • 느헤미야강
  • 2016-0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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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914(수) 새벽기도회

하나님의 욥기 39장 1-30절


구약성경에서는 하나님의 섭리를 이해하는데에 역사와 자연 두 가지가 핵심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하나님을 경배한다는 것은 자신들의 생존과 운명이 하나님의 손에 달렸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깨달았기 때문에 나오는 태도입니다. 성경은 그것을 역사를 통해 보여줍니다. 출애굽, 광야 40년, 가나안땅 정복, 이걸 구약성경은 반복해서 이야기하고 있는 것은 역사를 단순한 사건이 아니라 그 역사가 우리의 예상을 뛰어넘는 방식으로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행위라는 것을 보게 하는 데 있습니다.

우리 개인의 인생도 지나온 과정을 돌아보면 ‘아, 여기에 내가 예상하지 못한 방식으로 하나님이 섭리하셨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그때 하나님 경배는 자연스럽게 나오게 됩니다. 그래서 역사가 중요합니다. 역사에 하나님이 신비한 방식으로 개입하시는 그 차원을 읽어낼 수 있는 안목이 있어야 합니다.

또 하나 하나님의 섭리를 드러내는 것이 자연입니다. 하나님이 창조하셨고 창조된 세계를 보존하시고 그 속에서 하나님의 섭리와 뜻을 헤아리도록 하셨습니다.

오늘 본문 39장에서는 하나님의 사역 가운데는 인간이 도저히 통제할 수 없는 동물들의 우스꽝스러운 생태와 기괴한 행동과 본능적인 모습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오늘 본문에서 생태계를 주관하시는 하나님 자신의 지혜의 위대성을 나타내며 동물들의 삶에 대한 물음을 통해 욥이 자신이 받고 있는 고난의 원인을 알지 못한 것에 대한 무지를 지적하셨습니다.

본문에는 여러 종류의 짐승들이 등장합니다. 산염소와 암사슴, 들나귀와 빠른 나귀와 들소, 타조와 학, 말과 매와 독수리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동물들을 통하여 욥을 깨우치고자 하십니다. 사람이 그의 지식과 지혜를 자랑하지만 그 한계란 너무도 극명하게 드러납니다.

산염소는 사람이 접근하기 어려운 절벽이나 돌이 많은 황무지에서 살아갑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이 산염소를 본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일 뿐만 아니라 더욱이 그것들의 분만 시기를 안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섭리와 돌보심은 그러한 산염소에게까지 미치며 생육하고 번성하도록 인도하고 계십니다. 그런데 인간은 한낱 산염소의 분만 시기조차 모르면서 하나님의 섭리에 불만을 터뜨리거나 불의하다고 비난함으로 자신의 무지와 어리석음을 드러내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또한 암사슴은 높고 위험한 지역을 다닐 수 있을 정도로 튼튼한 발을 가진 짐승입니다. 하나님이 욥에게 암사슴의 잉태 기간 동안에 그것을 위험에서 돌보고 있다가 적당한 시기에 새끼들을 낳게 할 수 있느냐고 물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들나귀에게조차도 자유를 주셨고, 처소를 주셨으며, 먹이를 주셨습니다(5절). 사실 들나귀는 어느 야생 동물보다도 더 쓸모가 없는 짐승이었습니다. 이 뿐만 아니라 길들이기가 너무나 어려워 불순종의 표본이 되는 짐승이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그런 미천하고 어느 야생 동물보다 쓸모 없는 짐승이 조금도 불편함이 없이 살아가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들소를 가축과 같이 마음대로 결박할 수 있느냐고 욥에게 물으셨습니다(10절).

욥이 자기의 나귀나 황소를 통해 가사나 농사일에 도움을 받을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더 큰 힘이 필요하다고 해서 들소에게 써레질을 시키지는 못합니다. 또한 밭 일을 시켜서 소출을 얻도록 만들 수도 없습니다. 그것은 들소가 자기를 위해 기꺼이 일할 수 있도록 들소를 욥 마음대로 사용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욥에게 이와 같은 질문을 던지신 것은 인간이 전혀 알 수 없고, 할 수도 없는 일을 하나님께서는 그의 능력과 세심한 배려를 통해 이루어가고 계신다는 사실을 입증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하나님의 계획과 하나님의 일들이 자기가 원하는 대로 성취되어야만 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임을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깨닫게 됩니다.

타조가 어리석은 행위를 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지혜를 타조에게 주시지 않았기 때문입니다(17절) 하나님의 허락하심이 아니면 아무것도 스스로 지혜를 지닐 수 없습니다. 또한 욥의 명령으로는 절대로 독수리가 높이 치솟을 수 없고, 절대로 높은 곳에 보금자리를 만들 수 없습니다(27절). 높은 바위위에 독수리가 둥지를 만들고 새끼를 돌보는 습성을 하나님이 허락하신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고자 하는 것은 생태계의 모든 습성을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지정하신 것이라는 것 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의 섭리가 아니면 어느 것 하나 스스로 되어진 것이 없습니다.

욥을 향해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말씀 속에는 욥의 고난조차도 하나님의 섭리라는 사실을 깨닫게 합니다. 하나님의 절대 주권이 욥에게 일어났던 사건 속에도 어김없이 함께 하셨습니다.

오늘 우리에게 경험되어지는 모든 일들은 하나님의 절대 주권 속에 있습니다. 내 지식으로 이해되지 않고, 내 경험으로 판단되지 않고, 내 믿음으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할지라도 우리에게 허락하신 모든 순간 속에는 하나님 아버지의 절대주권이 있습니다. 오늘도 하나님 아버지의 절대 주권에 순종하시는 복된 날이 되셔야 합니다. 우리의 평생에 주님께서 온 우주를 주관하시듯이 우리의 삶을 주관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