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기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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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회 특별새벽기도회 -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 시23;1, 빌4;11-13,19
- 느헤미야강
- 2016-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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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5일(화):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 시편23;1
2) 16일(수):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 시편23;1, 빌4;11-13,19
3) 17일(목): 의의길로 인도하시는도다 / 시편23;3, 출애굽기 13;17-22
4) 18일(금):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 시편23;4, 요한복음 14;16-21
5) 19일(토): 나의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정녕 나를 따르리니 / 시편23;6
둘째날/20161115(화) 특별새벽기도회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온도 조절기 인생)
시편23;1, 빌립보서 4:11-13,19
시편 23편 1절이 영어로는 이렇게 시작됩니다. “The Lord is my shepherd, I shall not want" ”부족함이 없으리로다“가 영어로는 “내가 원함이 없으리로다” 로 되어 있습니다. ‘내가 원함이 없으리로다’ 라는 고백은 실은 모든 인생이 추구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려줍니다. 우리 인생은 소원으로 가득차 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나는 더 이상 원함이 없습니다.” 라고 말 할 수 있을까요?
바울사도는 빌립보 교회를 향하여 보낸 편지에서 빌4:18에 보면 “내게는 모든 것이 있고 또 풍부한지라”고 고백합니다. 과연 이 고백은 인간 바울의 모든 소원이 성취되고 그의 모든 욕구가 채워졌기에 가능한 고백이었을까요? 정말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고 고백할수 있는 삶-어떻게 가능할수 있을까요?
1. 자족할 줄 알아야 합니다.
빌립보서 4:11에서 바울사도는 자신의 평생을 통해서 배운 소중한 교훈중 하나가 자족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자족한다면 더 원함이 없으므로 만족할 것입니다. 그런 사람이라면 다윗처럼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고 고백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얼마큼 있어야 우리가 자족할 수 있는가입니다. 오늘 본문의 맥락을 살펴보면 자족은 물질적인 것이 아니라, 영적인 상태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상태는 한마디로 하면 환경의 지배를 받는 상태가 아니라, 환경을 지배하는 상태라고 할수 있습니다.
워렌 위어스비(Warren Wiersbe)라는 설교가의 표현을 빌리면 온도기와 같은 사람이 아니라 온도 조절기와 같은 사람입니다. 온도기는 외부 조건에 따라 올라가고 내려갑니다. 반면에 온도 조절기는 덥거나 추운 것을 일정한 형태로 조절할 수 있습니다. 덥든지 춥든지 환경의 영향을 받지 않고 살아가도록 조절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이 그렇게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울이 12절에서 고백하는 내용 아닙니까? 그는 배부를 때도 있었고 배고플 때도 있었으며 풍부할때도 있었고 궁핍할 때도 있었는데 그런 환경에 좌우되지 않고 자족할 수 있었다, 조절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어떠한 상황에서든지 한결같이 믿음의 사람답게 적응하며 승리하는 비결을 배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13절의 말씀처럼 ‘능력주시는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가능한 삶이었다’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13절은 결코 우리가 예수를 믿으면 가난한 사람이 다 부자가 된다는 말씀이 아닙니다. 예수 믿는 사람도 배부를 수 있고 또는 배 고플수 있습니다. 문제는 배부르거나 배고프거나 어떤 환경중에서도 자족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배부르다고 교만하지 말아야 하며, 배고프다고 비굴치 말고 우리가 어떤 환경에 처하든지 거기에 함께 계시는 그리스도와 교제하며 그리스도 때문에 만족해하고 승리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때 비로소 우리는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라고 고백하게 될 것입니다.
2. 나눔의 삶을 살줄 알아야 합니다.(펼친 손, 나누는 삶)
사람이 아무리 많은 물질을 소유한다고 해도 그가 계속 탐욕에서 자유하지 못하고 나눌 것이 없다면 그는 부족함이 많은 인생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비록 적은 물질을 소유해도 나눌것이 있다면 이 사람은 부족함이 없는 인생일것입니다.
바울은 빌립보 교인들이 이런 삶을 사는 것을 보고 기뻐하며 축복하고 싶어한 것입니다. 그것이 빌립보서를 쓰게 된 이유이기도 했습니다. 빌립보 교회는 아직 연륜이 어린 교회였고 어린 성도들이었습니다. 바울이 아시아를 향해 가다가 성령의 지시로 방향을 유럽으로 돌이켜 전도한 유럽의 첫 번째 개척교회였습니다. 그러나 바울을 통해 복음을 받아드리고 구원을 경험한 그들은 바울사도의 복음선교사역에 동참하고 싶어 물질적으로 지원을 하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19절에서 하나님께서 이런 나눔의 삶을 사는 빌립보 성도들을 풍성하게 할 것이라고 선언합니다. “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안에서 영광가운데 그 풍성한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
무디(Moody) 목사님은 이 구절을 그리스도인들의 은행이라고 불렀습니다. 우리의 공급의 원천은 나의 하나님이시고, 그분은 예수님을 통해 우리의 필요를 대출해 주십니다. 이 은행은 영광스러운 은행이며 이 은행의 자원은 결코 바닥나지 않을만큼 풍성합니다. 이 은행은 고객들의 필요를 반드시 공급하는 철저한 신용으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그는 반드시 우리의 쓸 것을 채우십니다. 풍성하게 채우십니다. 그러나 이 은행 고객이 되려면 두가지 조건이 있어야 합니다. 첫째, 그는 그리스도 예수안에 있어야 하고(거듭난 사람), 둘째는, 빌립보 교인들처럼 나눔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그들의 삶을 부족함이 없도록 책임져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성경전체를 통한 일관성있는 강조이기도 합니다. 잠언19:17을 보십시오. “가난한자를 불쌍히 여기는 것은 여호와께 꾸이는 것이니 그 선행을 갚아 주시리라” 고 했습니다.
펼친 손은 하나님에 대한 겸손한 신뢰와 함께 넉넉한 베풂을 상징합니다. 신명기 15장 7-8절은 “가난한 형제”를 만날 때마다 마음을 완악하게 하지 말고 “반드시 네 손을 그에게 펴서 그에게 필요한 대로 쓸 것을 넉넉히 꾸어 주라”고 가르칩니다. 펼친 손은 드림뿐 아니라 받아들임도 의미합니다. 주먹 쥔 손으로는 선물을 받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두 손을 활짝 펴서 우리에게 내밀고 계십니다. 언제든 우리가 필요로 하는 것과 그 이상을 주실 준비가 되어있으십니다.
인류 역사상 가장 감동적으로 손을 펼쳐 보여 주신 분은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죄 없으신 하나님의 어린양이 우리를 위해 갈보리 십자가에서 두 손 벌려 못 박히시고 두 팔 벌려 그곳에 매달리셨습니다. 예수님은 그렇게 못 박힌 손을 우리에게 내미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손을 펼쳐 주시니 당신의 십자가에 온 인류를 품게 된 것입니다. 우리가 진정 하나님 나라를 위해 드리고 나누는 인생을 살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일상을 책임지시겠다는 약속이 아닙니까? 이런 사람만이 할 수 있는 고백이 있습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는 것입니다.
3. 하나님을 구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부족함이 없으리로다”의 삶을 살려면 반드시 전제되어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입니다. 여호와가 나의 목자라는 고백을 떠나서는 그 다음 고백은 결코 가능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대부분의 종교에서는 우리의 욕망을 포기함으로 더 이상 아무것도 원하지 않고 사는 것이 가능하다고 주장합니다. 원하지 않으면 부족함도 없고, 욕구가 없으면 고통받을 것도 없으며, 사랑하지 않으면 상처받을 것도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기독교는 무욕을 가르치지 않습니다. 오히려 기독교는 높은 욕망, 거룩한 욕망, 의로운 욕망을 위해 살라고 가르칩니다. ‘너희는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라’는 것이 그것을 의미하지 않습니까? 우리가 거룩한 욕망을 가지면 추한 욕망이 극복될 것입니다. 의로운 욕망을 가지면 불의한 욕망이 극복되지 않겠습니까? 선한 욕망을 가지면 악한 욕망을 극복하게 되지 않겠습니까?
그러면 양이 가져야 할 가장 큰 욕망은 무엇일까요? 양에게는 안전, 보호, 배부름, 깨끗함의 욕구가 있습니다. 그러나 양은 이 모든 것보다 더 중요한 한 가지 욕구에 집중해야 합니다. 그것은 목자만을 구하고 목자를 사랑하고 목자를 따르고자 하는 욕구인 것입니다. 목자하나면 다른 욕구는 해결되지 않겠습니까? 그러므로 목자이신 하나님만 구하면 됩니다. 하나님에 목말라 하십시오. 하나님에 배고파하십시오. 하나님이 나의 모든 것이 되면 무엇을 걱정할 필요가 있겠습니까? 만일 우리에게도 이 믿음의 고백이 가능하다면 우리는 다윗처럼 고백하게 될 것입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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