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기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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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74편 - 한 번도 잊으신적이 없으신 하나님

  • 느헤미야강
  • 2017-0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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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기도하면서 겪는 어려움이 있습니다. 정말 절박한 때를 만나, 하나님께서 꼭 응답해 주셔야 하고, 또 들어주실만한 기도를 드렸는데, 응답이 없을 때가 많다는 것입니다. 그 때, 깊은 좌절을 겪고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흔들리기도 합니다. 기도를 계속 해야 하는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그러나 우리가 기도를 포기하는 일은 있을지 몰라도, 기도가 땅에 떨어지는 일은 없음을 알아야 합니다.

 74편은 바로 그와 같은 깊은 좌절에 빠진 자의 탄식과 기도입니다. 내용을 보면 바벨론의 침략으로 인해 남유다가 완전히 멸망한 시기에 쓰인 기도입니다

74:1 하나님이여 주께서 어찌하여 우리를 영원히 버리시나이까

그리고 하나님께 혹시나 자신들을 잊으신 것은 아닌지 의심하고 있습니다

2, 옛적부터 얻으시고 속량하사 주의 기업의 지파로 삼으신 주의 회중을 기억하시며 주께서 계시던 시온 산도 생각하소서 

이어 3~9절은 바벨론 군인들이 하나님의 성전을 완전히 무너뜨리고 성소를 더럽히며 성전 한가운데서 승전가를 부르는 모습을 하나님께 조목조목 아룁니다. 10절에는 언제까지 대적들이 주의 이름을 능욕하도록 내버려 두시냐고, 18절도 우매한 백성이 주의 이름을 능욕하였다고 탄원합니다.

22절도 23절도 대적들을 잊지 말고 택한 백성들도 잊지말라고 기도합니다.

 하나님은 이 시편 기자의 기도에 지금 당장은 응답하지 않으셨습니다그러면, 하나님께서 정말 당신의 택한 자들을 잊으신 것일까요이 시편 기자의 기도는 결국에는 응답을 받았습니다바벨론은 결국 멸망했습니다. 그리고 포로로 끌려갔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다시 돌아왔고 성전을 짓고 성벽을 재건했습니다

그렇지만 시편 기자의 입장에서는 응답받지 못한 기도일 수 있습니다목이 터지라고 울부짖으며 기도하던 자신이 살아 있을 때는 그 일이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 응답은 포로로 끌려간 지 70년 뒤에 이루어졌습니다. 바벨론에서 돌아온 이들은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갔던 이들이 아니었습니다. 바벨론에서 태어난 3세들이었습니다.

 이와같이 죽고 난 다음에야 이루어지는 기도라면 기도할 의욕을 상실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기도는 여전히 매우 중요합니다. 만약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렇게 기도하지 않았다면 그들은 70년이 지나도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오지 못하였을 것입니다그들은 한번 기도하고 만 것이 아닙니다. 죽을 때까지 기도하였고 자식들에게 기도를 물려주었기에,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갔던 이스라엘 백성들의 3세대가 돌아올 수 있었던 것입니다. 

3세대가 지났다면 이미 고국으로 돌아올 마음이 다 사라진 다음입니다.1세대들은 절망하는 세대입니다. 2세대들은 그 땅에서 태어나 차별과 멸시를 견뎌내야 했습니다. 3세대에 오면 그 나라의 주류 사회에 진출하게 됩니다. 그 땅에서 자리 잡았다는 말입니다자신들이 살고 있는 곳은 당시 세계에서 가장 부강하고 문명이 발달한 나라입니다. 그러니 고국으로 돌아가야할 이유가 없는 것입니다. 그들을 기다려주는 고국이 존재하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고국은 황폐해졌고 주위 족속들로부터 무수히 노략질 당하는 위험한 곳이 되었습니다. 그곳으로 돌아가려면 자신들이 바벨론에서 얻은 모든 기득권과 재산을 포기해야 했습니다. 황량한 벌판에서 국가를 재건해 내는 일 역시 현실성이 없는 일이었습니다.

이런 형편인데 돌아갈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그런데 그들을 돌아갔습니다. 이유는 그들이 부모로부터 자신들이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과 하나님의 택한 백성이라는 것과 고국으로 돌아가게 해 달라는 기도를 물려받았기 때문입니다. 이 믿음과 기도가 자녀들에게 또 그 자녀들에게로 23대 이어져 내려갔던 것입니다그들이 바벨론에 잡혀 가서 예루살렘으로 돌아갈 가능성이 완전히 사라졌을 때도 계속 기도했었다는 증거들이 많이 있습니다.

6:10에 보듯이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왔던 1세대였던 다니엘은 총리의 지위까지 이르렀지만 하루 세 번 예루살렘을 향하여 창문을 열고 기도했습니다. 마지막 3차 때 예루살렘으로 귀환했던 느헤미야 역시 느 1-2장을 보면 아닥사스다 왕의 술 맡은 고관이었는데, 위험을 무릅쓰고 예루살렘을 위하여 금식하다가 얼굴이 수척해져, 왕이 이유를 물었을 정도가 되었습니다. 

물론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사람은 소수였습니다. 그러나 모든 기득권을 다 버리고 이스라엘 땅으로 돌아온 이들이 있었다는 것이 놀라운 일이었고 그래서 역사에서 완전히 사라질 것 같은 유대인들이 다시 나라를 재건하게 된 것입니다. 이것은 절망적인 상황인데도 기도를 계속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절망적인 상황인데, 터져 나오는 기도, 아무런 응답이 없는 것 같은데 계속되는 기도를 답답하게만 생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결국 하나님께서 그 기도를 통하여 하나님의 약속을 이루시는 것입니다절망의 때, 아무리 기도해도 답답하기만 할 때, 우리가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바른 믿음의 고백을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기억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7412~17절을 읽어보면 한마디로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을 고백하는 내용입니다. 시편 74편의 시인이 절망적인 상황속에서도 기도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선하심과 약속과 은혜를 기억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삶속에서 기도 했음에도 불구하고 마치 잊으신 것 같을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한 번도 우리를 잊으신 적이 없으십니다. 십자가가 그 증거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잊지 않으셨기에 감당하신 십자가입니다. 더 더욱 놀라운 증거 우리 안에 거하심이 결정적인 증거입니다.

 때때로 되고 있는 일들로 인하여 절망할 때가 있습니다. 사람 때문에 낙심할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아직 포기하기에는 이릅니다. 여전히 기대할 것이 남아 있습니다. 그것은 여전히 함께 하시는 주님이 계시다는 것입니다아무리 형편이 어렵고 주위에 의지할 사람이 없어도 주님을 바라보는 눈이 뜨이면 얼마든지 이겨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