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기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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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75편 악한자보다 더 크신 주님 바라보기
- 느헤미야강
- 2017-0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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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마음이 지치고 메말라 힘들어 합니다. 메마르고 힘들어하는 것 중의 하나가 바라보는 것 때문입니다. 세상과 악한 사람만 보면 누구나 마음이 상할 수밖에 없습니다. 악한 자가 부자가 되고, 악한 자가 높은 지위를 차지하고 악한 자가 교만하게 말하고 행동하는 것을 보는 것은 참으로 고통스럽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과 하나님의 나라를 바라보면 마음이 완전히 달라집니다.
시편 75편을 쓴 기자는 하나님께 감사하면서 이 시를 시작하고 있습니다.
시 75:1 하나님이여 우리가 주께 감사하고 감사함은 주의 이름이 가까움이라 사람들이 주의 기이한 일들을 전파하나이다
이 시편 기자에게 무슨 감사한 일이 있을까요? 2~5절에서 보여주는 악한자들을 바라보면서 마음이 상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바라보고 하나님의 심판에 대하여 알게 되니 오히려 감사가 나온다는 것입니다.
세상은 참 악합니다. 갈수록 더 악해지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세상못지 않게 심각한 것은 예수 믿는 사람들 역시 악하다는 말씀 때문입니다.
마 7:22-23을 보면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였던 이’들에게 주님은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사람들은 분명히 주님의 이름으로 큰 이적을 행하였는데, 주님은 그들을 도무지 모른다고 하셨습니다. 이유는 불법을 행하는 것이었습니다.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예수님의 이름으로 큰 능력을 행하면서 동시에 불법을 행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진정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주님은 “"내가 널 도무지 알지 못하니 내게서 떠나가라" 하셨습니다.
저 자신이 그런 사람일까 두렵습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세상의 악함때문이기도 하지만, 우리 자신 역시 얼마든지 악할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하고 매 순간마다 주님을 주목하고 살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육신에 끌려 갈 수밖에 없습니다. 육신에 끌려가면 악한 자를 미워하고 악한 자 때문에 괴로워하고 시기하다가 결국 신도 악한 자처럼 살게 되는 것입니다.
제가 말씀을 묵상하다가 로마서 1장 말씀을 보고는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롬 1:32 그들이 이 같은 일을 행하는 자는 사형에 해당한다고 하나님께서 정하심을 알고도 자기들만 행할 뿐 아니라 또한 그런 일을 행하는 자들을 옳다 하느니라.
여기서 “사형에 해당한다고 하나님께서 정하심을 알고도” 라는 구절이 무서운 것입니다. 모르는 것이 아닙니다. 알면서도 죄를 짓는 상태, “자기들만 행할 뿐 아니라 또한 그런 일을 행하는 자들을 옳다 하느니라.”
그러면서 사도 바울이 언급한 심판받을 죄는 첫째로 롬1;26절로 27절에 기록된 당시에 만연하던 동성애였습니다. 동성애는 분명히 하나님께서 사형에 해당한다고 정하신 죄입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동성애에 대하여 언급한 다음에 “또한” 이라고 하면서 21가지 죄를 언급하였는데, 이 죄들 역시 동성애와 똑같이 사형에 해당하는 죄라고 정하신 것입니다.
롬 1:28-31 에 나와 있는 죄를 살펴보면 “수군수군하는 것” “비방하는 것” “자랑하는 것” 도 들어 있습니다. “시기” “배약, 곧 약속을 어기는 것” “우매 곧 알지 못해서 잘못을 저지르는 것” “무정한 자”도 여지없이 사형에 해당되는 죄입니다.
이런 죄에 대하여 동성애에 대하여 가지는 그런 심각한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까? 만약 동성애는 심각한 죄이고, 수군수군하고 비방하고 자랑하고 시기하고 약속을 어기고 알지 못해서 잘못을 저지르고 무정하게 행동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하면 참으로 두려운 것입니다. 내가 예수 믿었으니 구원얻었다고 생각하기에 회개할 가능성이 없기 때문입니다. 차라리 살인을 저지른 자가 회개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큰 죄인 줄 알기 때문입니다. 세상이 악할수록 판단이 흐려지게 됩니다. 그러므로 더욱 하나님을 주목해야 합니다.
우리의 문제는 세상이 너무나 악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 안에 세상 보다, 악한 자 보다 더 큰 주님을 주목하거나 함께 하심을 믿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세상이 악하다고 감사도 찬양도 그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은근슬쩍 세상을 따라 사는 것입니다. 이것이 세상이 악한 것 보다 더 큰 문제입니다.
악한 세상이 두려워질 때, 악한 자가 여러분의 마음을 낙심케 할 때, 보이지 않지만, 보이는 악한 자 보다 더 크신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감사하고 찬양해 보십시오.
어떤 처지에서도 우리에겐 감사할 이유, 찬양할 이유가 충분합니다.
그러면 변화됩니다.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전혀 새로운 눈이 열립니다.
담대히 하나님 뜻대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이 축복이 저와 여러분에게 가득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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