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기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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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108편-두려움은 문제때문이 아닙니다.
- 느헤미야강
- 2017-0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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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어떤 문제 때문에 두려움이 생긴다고 생각하지만 정작 문제 자체가 두려움을 만들지 않습니다. 문제와 두려움은 반드시 연결된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문제 앞에 두려워하는 것은 그 문제가 두렵기 때문이 아니라 두렵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만일 문제 자체가 두렵다면 모든 사람이 두려워해야 합니다. 하지만 어떤 문제가 반드시 사람을 두렵게 하는 것은 아닙니다. 똑같은 문제라 해도 어떤 사람은 두려움을 느끼고 또 어떤 사람은 두려움을 느끼지 않습니다. 두려움을 느끼는 사람은 그 문제에 두려워했기 때문이고, 두려움을 느끼지 않는 사람은 그 문제에 두려워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연암 박지원 선생은 강물 소리도 다르게 들릴 때가 있는데, 어떻게 듣느냐에 따라 달라진다고 했습니다.
“솔숲에 바람이 불 때 나는 듯한 소리는 계곡 물 소리를 청아하게 들은 경우이며, 산이 갈라지고 언덕이 무너지는 듯한 소리는 흥분해서 들은 경우이다. 개구리 떼가 다투어 우는 듯한 소리는 우쭐해서 들은 경우이며, 순식간에 천둥 번개가 치는 듯한 소리는 깜짝 놀라서 들은 경우이다. 찻물이 때론 약하게 때론 세게 끓는 듯한 소리는 운치 있게 들은 경우라고 했습니다. 똑같은 물소리인데도 다르게 들리는 이유는 마음속 주관적으로 귀가 소리를 지어낸 것일 뿐이다.”라고 했습니다.
어떻게 듣느냐에 따라 듣는 소리가 달라진다는 것은 문제를 마주하는 나의 상태가 어떠한가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입니다.
기쁨과 두려움을 비교했을 때, 우리는 단연 두려움보다 기쁨을 원합니다. 일부러 두려워지려고 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런데도 기쁨보다 두려움이 더 강력합니다. 기쁨은 잠시 있다가 사라지는데 반해 두려움은 우리를 잠시도 놓아주지 않습니다. 우리에게 기뻐할 큰 이유가 생겼어도 일주일을 넘기는 경우는 드뭅니다. 그러나 두려움은 작은 것도 일주일을 넘기고 큰 것은 해결되기 전까지 사라지지 않습니다.
이처럼 기쁨이 아무리 크다 해도 두려움은 이 모든 것을 삼켜 버립니다. 기쁨보다 두려움이 큰 이유는 기쁨보다 두려움을 더 많이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기뻐할 이유가 있다 해도 그것을 끊임없이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두려움은 끊임없이 생각합니다. 생각하고 또 생각합니다. 그래서 작은 두려움이 큰 두려움이 되고, 나를 힘들게 만들고, 병이 생기게 합니다.
시편 108편은 다윗의 찬송 시입니다. 이 찬송 시는 특별한 시라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 시편은 새로운 것이 아니라 원래 있던 시를 편집했기 때문입니다. 시편108편 1절부터 5절까지는 시편 57편 7절부터 10절까지와 같습니다. 그리고 시편 108편 6절부터 13절까지는 시편 60편 5절부터 12절을 그대로 옮겨 놓았습니다. 학자들의 대부분 의견으로는 시편 108편이 57편과 60편의 내용을 가져왔다고 보고 있습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시편 주석가들은 시편 108편을 주석하지 않고, 57편과 60편을 참고하라고 하면서 건너뜁니다.
그런데 시편 108편 1절로부터 5절은 다윗이 사울을 피하여 굴에 숨어 지낼 때 지은 시詩인 시편 57편입니다. 반면 6절부터 13절까지의 구절은 다윗이 왕이 되었을 때 요압 장군이 에돔의 군사 12,000명을 죽여 승전 소식을 전해 들었을 때 지은 시詩인 시편 60편입니다.
그래서 먼저는 두려움 속에 떨어야 할 시기요, 후자는 기쁨으로 가득 찬 시기임을 알 수 있습니다. 전혀 다른 시기, 전혀 다른 상황을 묶은 시편이 108편입니다.
사울 왕에게 쫓겨 동굴 속에 숨어 지내야만 하는 상황 속에서 다윗이 한 마음가짐이 1절과 2절에 나옵니다.
“하나님이여 내 마음을 정하였사오니 내가 노래하며 나의 마음을 다하여 찬양하리로다. 비파야, 수금아, 깰지어다 내가 새벽을 깨우리로다.”
다윗이 문제앞에서 두려워하지 않고 노래하며 찬양할 수 있었던 것은,
그 마음에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을 정해두었기 때문입니다.
찰스 스펄전이 그의 시편 108편 강해에서 다윗이 마음을 정한 것을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수많은 전쟁이 내 마음을 불안하게 하고, 많은 염려가 나를 이리저리 흔들지라도 나는 오직 한 마음이며 그 마음을 버릴 수 없습니다. 나는 마음을 정했고 단 한 가지 결단을 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변덕스러운 나의 본성을 정복하셨기에 이제 나는 분명하고 확고한 마음 상태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변덕스러운 인간이 아니라 분명하고 확고하게 하나님께 마음을 정한 사람은 문제앞에서 찬양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다윗은 엄청난 문제 앞에 직면했을 때에 두려워하기보다 새벽에 일어나 기도하기로 마음을 정했다는 것입니다. 다윗에게 닥친 큰 문제는 그에게 두려움이 되지 않았습니다. 그가 두려움을 물리칠 수 있었던 것은 기도하기로 마음을 정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기도한다고 해서 두려움이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기도해도 여전히 두려움 속에 갇혀 있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다윗이 마음을 정하고 기도했다는 것은 더 이상 문제를 생각지 않겠다는 것이고, 그 문제에 자신의 마음을 빼앗기지 않겠다는 각오가 엿보입니다. 기도는 나의 문제에 빼앗기는 시간이 아니라 하나님의 생각으로 빼앗기는 시간입니다. 하나님을 의지하고 생각할 때, 그 시간은 결코 우리를 불안하게 하거나 두렵게 하지 못할 것입니다.
또한 6절부터 마지막 절까지는 승전 소식을 들은 후 지은 시입니다. 승전 소식은 왕에게 가장 큰 기쁨입니다. 그러나 다윗이 기뻐했던 가장 큰 이유는 단지 장수 요압이 전쟁에서 승리했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들과 자녀들은 그분이 반드시 지켜 주신다는 확신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다윗은 10절에 “누가 나를 이끌어 견고한 성읍으로 인도해 들이며 누가 나를 에돔으로 인도할꼬.”라고 하면서, 12절에 “우리를 도와 대적을 치게 하소서 사람의 구원은 헛됨이니이다.”라고 했던 것입니다.
사람의 구원이 아닌 하나님의 구원은 그분의 백성들과 자녀들에게만 해당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떤 문제 앞에서든 항상 두려워하지 않을 이유는 기도할 때뿐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분의 자녀들을 지켜 주신다는 확신을 가질 때입니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두려움에 빠지지 않는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분명 두려움에 빠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두려움에 빠졌을 때, 내가 과연 문제 때문에 두려워하는지 두려워하기 때문에 두려워하는지 자신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지켜 주신다는 확신을 갖고 있는지 자신을 돌아보아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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