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기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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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116편 - 그때도 나는 믿었도다

  • 느헤미야강
  • 2017-0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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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말씀이 가장 가슴 와 닿을 때가 있습니다. 삶이 힘들고 어려울 때입니다. 만일 아무런 어려움도 없는 편안한 상황이라면 시편 말씀이 그다지 깊이 와 닿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시편은 어려운 상황 속에 있었던 사람들이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했기 때문입니다.

병원에 입원한 환자들은 의사나 간호사, 가족들보다는 지금 같은 병실을 쓰고 있는 내 앞 침대 위에 누워 있는 환자를 통해 힘을 얻습니다. 나도 질병 때문에, 아니면 사고 때문에 힘듭니다. 내 앞 침대 위에 누워 있는 환자 역시 힘들어합니다. 서로가 힘든 상황에 있기에 마음이 통하는 것입니다.

종종 이런 말을 듣습니다. “당신은 내 처지가 되지 않아 알지 못합니다.” 분명 이것은 사실입니다. 우리는 모든 사람의 처지를 이해할 수도, 똑같은 입장이 될 수도 없습니다. 그러나 억지로 같은 처지가 될 수 없지만 어쩔 수 없이 같은 상황이 되었다면, 또한 비슷한 상황을 경험했다면 나도 당신 같은 경험을 해 보았습니다.”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인간으로 오신 것이 왜 중요합니까? 물론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함이지만 우리와 같은 입장에서 이해하시고 모든 것을 경험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신 아닙니까? 신이 어떻게 인간의 처지를 알 수 있습니까?” 이런 핑계대지 못하도록 하신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우리의 모든 것을 경험하셨기에 우리는 그분 앞에 결코 핑계하지 못합니다.

하나님, 제가 얼마나 바쁘게 살았다는 것을 모르십니까? 너무 바빠 기도할 시간이 없었습니다.” 그때 예수께서는 그래? 나는 너보다 더 바쁘게 살았다. 동이 트기 무섭게 사람들은 나를 찾아와 귀신 쫓아 달라고, 아픈 곳 낫게 해 달라고, 죽어 가고 있는 가족 살려 달라고 왔고, 너무 바빠 음식 먹을 겨를도 없었다. 그래도 새벽에 일어나 나는 기도했고, 밤에 기도하는 데 힘썼다.”

또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합니다. “주님, 세상의 영광과 부귀를 가질 수 있는 기회가 생겨 가졌는데, 그것이 무슨 문제가 됩니까? 비록 그 때문에 죄 조금 지은 것이 뭐가 그리 큰 죄가 됩니까?” “그래? 내가 사탄에게 시험받을 때, 사탄이 나에게 세상의 영광을 준다고 했지만, 나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거절했다.”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면 그 누가 핑계 댈 수 있겠습니까?

예수께서는 인간이 되셔서 우리가 겪은 모든 것을 친히 경험하셨습니다. 그 모든 것을 이해하시고 경험하셨지만 죄와 시험에 빠지지 않으셨습니다. 사람들은 같은 입장과 처지에 있었다는 것을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만일 시편 116편의 말씀을 읽으면서 우리의 마음이 뜨거워진다면, 시인의 마음이 나의 마음이고, 시인이 경험한 그 고통이 나의 고통이었음을 깨닫는 사람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우리는 이 시편을 읽어도 별 감동이 되지 않을 것입니다.

1절과 2절에서 시인은 이런 말씀을 했습니다. 여호와께서 내 음성과 내 간구를 들으시므로 내가 그를 사랑하는도다. 그의 귀를 내게 기울이셨으므로 내가 평생에 기도하리로다.” 지금 시인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간구를 들으셨고 귀를 기울이셨기에 사랑하고 기도한다는 단순한 말이 아닙니다.

우리 역시 하나님께 간구할 수 있고, 응답받았을 때,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시인은 단순히 기도의 응답을 받았기 때문에 이렇게 말한 것이 아닙니다. 그가 하나님을 사랑할 수밖에 없고, 평생에 기도하겠다고 결단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있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인지에 대해 3절에서 언급합니다.

사망의 줄이 나를 두르고 스올의 고통이 내게 이르므로 내가 환난과 슬픔을 만났을 때에

지금 시인이 처한 상황은 살아가면서 이런저런 어려움에 처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런 어려움은 비록 우리를 힘들게 하겠지만 최악이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지금 시인이 처한 상황은 최악이었습니다. 질병에 걸렸는지, 사고를 당했는지, 아니면 사건에 휘말렸는지 알 수 없지만 분명한 것은 당한 어려움이 자신의 생명과 연관되어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시인에게 어떤 은혜를 주셨습니까? 고통에서 구원해 주셨다고 말씀합니다. 6절에서 여호와께서는 순진한 자를 지키시나니 내가 어려울 때에 나를 구원하셨도다.” 8절에서 주께서 내 영혼을 사망에서, 내 눈을 눈물에서, 내 발을 넘어짐에서 건지셨나이다.” 시인은 이런 엄청난 은혜를 받았기에 그는 하나님을 사랑할 수밖에 없고, 평생에 기도하겠다고 했던 것입니다.

시인이 고통당해 기도할 때에 어떤 마음가짐을 갖고 있었는지 10절과 11절에서 말씀합니다. 10절에 내가 크게 고통을 당하였다고 말할 때에도 나는 믿었도다.” 이 말씀을 이렇게 풀이할 수 있습니다.

“‘내 인생이 왜 이리 고달프냐하고 생각될 때에도 나는 믿음을 잃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분명 시인은 자신이 처한 상황이 얼마나 힘들었는지 비관적인 생각을 가졌습니다. 그러나 믿음을 잃지 않았습니다.

욥은 자신이 처한 상황을 이길 수 없을 것 같아 자신을 비관하고 환경을 비관했습니다. 그러나 비관했다 해서 그가 믿음까지 잃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반대로 광야 생활했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비관만 한 것이 아닌 믿음까지 버렸습니다. 바로 이 차이입니다.

어떠한 열악한 상황이 찾아와도 믿음을 가지고 나아간다면, 하나님의 도우심을 분명히 받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내 처지를 경험해 보지 않으셔서 잘 모르실 겁니다.”라고 말해서는 안 됩니다. 주님께서는 모든 것을 경험하셨고, 또한 우리를 누구보다도 잘 아신다는 사실을 늘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