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기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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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121편 - 인맥(人脈) & 신맥(神脈)
- 느헤미야강
- 2017-0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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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는, 도움을 주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도움을 받는 사람이 있습니다. 도움을 주는 사람은, 줄 수 있는 마음과 환경이 있기 때문이고, 도움을 받는 사람은, 받아야만 하는 절박한 상황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세상에는 도움만 주는 사람도 없고, 도움만 받는 사람도 없습니다. 언제는 도움을 주기도 하지만 도움을 받을 때가 있습니다. 사람들이 인맥을 중요하게 여기는 이유는 도움을 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도움을 받기 위해서입니다. 사회적으로 쟁쟁한 사람들이 자기 주변에 있을 때, 그들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교회 안에서도 발생합니다. 자신의 인맥을 넓혀 줄 수 있는 교회를 사람들은 찾아다닙니다. 모든 경우에는 아니지만 대부분 사회적으로 높은 위치에 있는 사람들치고 개척교회나 작은 교회를 섬기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대형교회를 섬기려 하는데에는 익명성도 한 몫을 하고, 잘 조직화된 시스템을 선호하는 이유도 있지만 사회적인 인맥을 쌓으려고 하는 것이 중요한 이유중의 하나입니다.
그러나 인맥이 아무리 중요해도 그것이 안전한 보장이 될 수는 없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인맥을 중요하게 여길 수는 있어도 인맥에 매여서는 안 됩니다. 그리스도인은 오히려 인맥(人脈)보다 하나님과의 관계인 신맥(神脈)을 더 중요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인맥에 묶여 실패하고 무너지는 사람은 있어도 신맥에 묶여 실패하거나 무너지는 사람은 없기 때문입니다.
만일 그리스도인이 인맥에 집착하여 도움을 받으려 한다면, 그로 인해 신맥은 끊어져 버립니다. 그 사람은 인맥도 신맥도 끊어진 불행한 사람이 됩니다. 반면 오직 신맥만 바라보고 의지한다면, 그 사람은 신맥뿐 아니라 인맥도 하나님께서 연결시켜 주시는 것입니다. 인맥도 잡고 신맥도 잡는 것은 없습니다.
시편 121편 시인은 인생의 가장 강력한 도움을 어떻게 받을 수 있는가에 대해 말씀하고 있습니다. 1절과 2절에서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까 나의 도움은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라고 말씀했습니다. 지금 시인은 도움이 필요한 절실한 상황입니다. 만일 도움이 필요한 상황이 아니었다면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까?’라고 말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시인이 ‘산을 향했다’는 표현이 무슨 뜻입니까? 이 말은 사람의 도움이 아니라을 받지 못했기에 산으로 향했다는 말이 될 수도 있고, 사람의 도움을 받으려고 하지 않았기에 산으로 향했다는 의미도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의 도움을 받으려 하는 사람이나 사람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고 하는 사람 모두 눈을 산으로 향하지 않습니다. 사람의 도움을 기대하는 사람의 눈은 산이 아니라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시편 121편 2절에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 하나님께 도움을 구했다는 것은,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 하나님은 우리와 깊은 관계를 갖고 있다는 것입니다. 만일 천지를 지으신 하나님과 우리와 아무런 상관이 없다면 무슨 도움을 받을 수 있겠습니까?
또한 ‘하나님께서 천지를 지으셨다는 것’은 엄청난 능력을 가지신 분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나 그분과 우리가 아무런 상관이 없다면 천지를 지은 것이 나와 무슨 상관이 있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천지를 지으신 능력의 하나님인가 인정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그분이 나와 관계를 맺고 있으며 나를 도우시느냐 하는 것입니다. 도우실 수는 있는 능력은 가지고 있지만 도우시지 않는다면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세상에는 도울 수 있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러나 그들 모두가 나에게 도움을 주는 것은 아닙니다. 도울 수 있는 능력이 있느냐도 중요하지만 도움을 줄 것이냐 아니냐는 더 중요합니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께서는 도울 수 있는 능력도 갖고 계시고 도움을 줄 것이라는 생각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정작 우리가 도움을 필요로 할 때, 우리는 이것을 분리해서 생각할 때가 많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도우실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계신다는 사실은 알고 있으면서도 그분이 나를 도우실 것이라는 사실에 대해서는 확신을 가지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시인은 3절부터 8절까지 이 두 가지 사실은 분리되지 않고 연결되어 있다고 계속해서 말씀합니다. ‘하나님은 졸지도 주무시지도 아니하시는 분이시다’라는 사실보다 더 강조한 것이 무엇입니까? ‘그분은 너를 실족하지 않게 하시는 분이시다’ ‘그분은 너를 지키시는 분이시다’ ‘그분은 너를 지켜 모든 환난을 면하게 하시며 또 네 영혼을 지키시는 분이시다’고 말씀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시인과 같은 확신을 갖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인맥은 가부를 금방 알 수 있는데 반해, 신맥은 당장 가부를 알 수 없다는데 어려움이 있습니다. 오래 걸리는 신맥보다 금방 알 수 있는 인맥을 선호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에게 빨리 도움을 줄 수 있느냐 없느냐 보다 더 중요한 것은 확실한 도움을 줄 수 있느냐 없느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생각하고 요구하는 시간에 도움을 주시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가장 확실한 도움을 이르지도 늦지도 않는 가장 적절한 시간에 주신다는 사실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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