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기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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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새-베드로의 삶(3)_ 믿음의 시행착오 - 마14;22-33

  • 느헤미야강
  • 2017-0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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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413() 고난주간 특별새벽기도회 / 베드로의 삶  

믿음의 시행착오

마태복음 14:22~33 

 

성경을 보면 믿음에 관해 언급할 때 믿음이 크다, 적다 이런 식으로 표현합니다. 15:28절에는 가나안여인을 향해서 “...여자야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 하시니 그 시로부터 그의 딸이 나으니라

본문 31()에는 믿음이 적은 자여 왜 의심하였느냐 하시고

성경은 우리의 믿음이 점점 더 커져야 된다고 강조합니다. 이것이 곧 믿음의 성장입니다. 그러면 믿음이 크다, 자란다는 것이 어떤 의미를 담고 있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성경을 보면, 두 종류의 믿음이 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인정(=시인)하는 믿음신뢰하는 믿음입니다. 

(1) 인정(=시인)하는 믿음(assent) - 예수님이 어떤 분인지 성경에 기록된 대로 믿고 시인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요 구원자라는 사실을 마음 속에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이 믿음으로 구원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1:12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2) 신뢰하는 믿음(trust) - 예수님과 말씀을 의지하고 따라가는 것입니다. 즉 예수님의 사랑과 능력을 의뢰하는 것입니다. 이런 믿음이 우리 삶 가운데 구체적인 축복과 승리를 가져다 줍니다. 그래서 신뢰의 믿음은 구체적인 삶의 현장 가운데 아주 중요합니다. 이 믿음은 종종 순종이나 기도로 표현됩니다.

2:5 “예수께서 저희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자가 예수님의 소문을 듣고 침상 채 내 사람에게 메워져 갔습니다. 예수님이 계신 집의 출입문이 사람들로 꽉 막혀 있자 사다리를 놓고 올라가 지붕을 뜯어내고 침상을 달아내려 기어코 예수님을 만나게 됩니다. 그럼으로써 믿음을 증명해 보였습니다. 그 믿음이 곧 신뢰하는 믿음입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믿음도 결국 신뢰의 믿음입니다. 믿음이 커진다고 할 때는 주로 신뢰의 믿음이 성장하는 겁니다. 예수님을 더 깊이 체험하고 알면 알수록 신뢰가 더욱 커지고, 결국 믿음도 커집니다. 또 이 믿음이 커질수록 우리는 예수님께 더 가까이 하게 되고, 우리의 삶은 주님의 축복으로 풍성해집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풍성한 축복과 승리를 경험하려면 이 믿음을 크게 성장시키는 일에 관심을 갖고 힘쓰셔야 합니다.

 

베드로는 믿음의 시행착오를 거듭하면서 점점 그 믿음이 커졌습니다. 우리도 믿음의 시행착오를 겪게 됩니다. 시행착오를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감사한 것은 주님께서 우리를 용납해 주시고 믿음이 성장할 때까지 기다려 주신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넘어져도 용기를 낼 수 있고, 연약하지만 큰 믿음의 소유자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면 베드로는 어떤 믿음의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믿음이 커져갔을까요?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 박히신 후 부활승천하신 후 세상에서 승리하는 삶, 더 나아가 성도들의 영적 지도자가 되도록 하기 위해 세가지 훈련을 시키셨습니다. 베드로는 이 세 가지 중에 어떤 것은 잘 통과하고, 어떤 것은 실패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때마다 붙들어 주시고 결국은 큰 믿음의 사람으로 만들어 가십니다. 

본문을 보면, 오병이어 사건이후 베드로와 제자들을 갈릴리 바다로 가게 하셨습니다. 물론 예수님을 왕으로 추대하려는 것을 피하시려는 것도 있으나 밤에 돌풍이 부어 갈릴리 바다를 건너는 것이 위험하다는 것을 아시면서도 건너게 하신데에는 분명한 목적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6:47~48 “저물매 배는 바다 가운데 있고 예수는 홀로 뭍에 계시다가 바람이 거스리므로 제자들의 괴로이 노 젓는 것을 보시고 ...”

그러면 과연 예수님께서 어떤 훈련을 시키시려고 하셨을까요?

 

[1] 동행 훈련 

예수님은 지금 육신적으로 제자들과 멀리 떨어져 있습니다. 24. 제자들이 배를 타고 육지에서 수 리나 떨어져 있다고 했습니다. 더욱이 밤 4경이 됐습니다. 새벽3~6시 사이입니다. 가장 어두울 때인데 갑자기 몰아닥친 광풍으로 그들은 잔뜩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현실은 두려움의 상황이나 두려워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육신을 입고 계시지만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멀리 떨어져 계신 것 같지만 사실은 기도하시면서도 그들을 계속 주시하시면서 보호하고 계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밤 사경에 정확히 제자들에게 물위로 걸어오실 수 있으셨던 것입니다.

주님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서 함께 동행해 주신다는 것을 믿어야 했습니다. 이와 비슷한 사건이 전에 있었습니다.

8:23~27. 그때는 예수님이 배를 타고 주무시고 계셨는데 광풍이 불었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은 예수님을 흔들어 깨우면 간구했습니다. 주여! 구원하소서. 우리가 죽겠나이다.” 주님이 함께 동행하심에도 불구하고 바람과 파도에 무너지고 두려워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주님의 기대는 내가 동행하고 있음을 잊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큰 믿음의 소유자는 주님이 항상 곁에 계심을 믿고 기도합니다. 그리고 마음에 평안을 누립니다. 주님의 임재를 확신하기 때문입니다.

41;10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28:20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이런 생생한 믿음으로 항상 승리하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2] 순종 훈련 

예수님이 어둠 가운데 바다 위를 걸어서 다가오셨습니다. 그러자 다들 유령인 줄 알고 놀랐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이 그들을 안정시킵니다. 27. 안심하라 내니 두려워 말라!” 그 말씀을 듣고 가장 적극적인 베드로가 나섭니다. 28. “주여 만일 주님이시거든 나를 명하사 물 위로 오라 하소서 베드로의 요청에 예수님께서 그대로 해 주셨습니다. 29. “오라!” 그 말씀을 듣고 베드로는 순종합니다. 나중에 물에 빠져서 스타일을 구겼지만 여기까지만 보면 베드로는 물 위를 걸었습니다.

순종은 믿음의 표현입니다. 믿음이 없으면 순종하기 어렵습니다. 순종한 결과 놀라운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베드로도 물 위로 걸어갔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에 자주 순종하다 보면 믿음이 커집니다. 기독교 신앙은 체험 신앙입니다. 순종하는 가운데 역사하시는 주님의 능력을 체험하면 자꾸 순종할 담력이 생깁니다. 그래서 자꾸 믿음이 커지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맨 처음에는 갈대아 우르 떠나서 가나안 땅에 왔습니다. 그러면서 점점 믿음이 커지고 순종하다가 나중에는 이삭을 모리아 산 제단에 번제로 바치라는 명령에 순종하기까지 합니다. 그때 여호와이레의 하나님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순종하는 삶을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점점 믿음이 커지는 것을 경험하게 될 겁니다. 아울러 살아계신 하나님께서 그 사랑과 그 능력으로 역사해 주시는 큰 축복과 승리를 체험하게 될 줄로 믿습니다.

 

[3] 시선고정 훈련 

베드로는 바다 물 위로 잘 갔습니다. 그러다가 30, 바람과 파도를 보고 두려운 마음이 들었고 결국 물에 빠져들게 되었습니다. 그때 예수님께 부르짖자 손을 내밀어 붙들어 주셨습니다.. 그리고 책망하셨습니다.

31. “믿음이 적은 자여! 왜 의심하였느냐?”

우리도 베드로처럼 실수할 수 있습니다. 주님을 잘 따라가다가 세상을 바라보는 순간 넘어질 수 있습니다. 우리가 영적인 시선을 놓치면 여지없습니다. 베드로가 물위를 걸어갈때에도 바람과 파도는 있었습니다. 베드로가 물속에 빠져들어 갈때에도 여전히 예수님이 계셨습니다. 물위를 걸어갈때나 빠져들어갈때도 예수님은 계셨고, 바람과 파도도 있었습니다. 문제는 바람과 파도를 보느냐, 예수님을 보느냐가 물위를 걷기도 하고 빠져들어가기도 하더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인생의 바다에서 힘들어하는 것은 예수님이 없어서가 아니라 시선을 예수님께 고정시키지 않아서입니다. 예수님이 우리의 시야에서 사라지는 순간 세상은 너무 크게만 보입니다. 그래서 넘어지는 것입니다. 

왕상19:3~4절에 보면 엘리야가 갈멜산에서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 850명을 쳐부순 후 이세벨의 협박에 광야로 도망쳐 죽기를 간구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영적승리 뒤의 위기와 회복시키시는 하나님의 위로의 말씀이지만, 한편으로는 하나님을 바라보던 영적 시선을 놓쳐버렸기 때문에 일어난 일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아니라 이벨을 봤습니다. 이세벨보다 더 크신 하나님을 바라보는 시선을 놓쳤기 때문입니다. 

큰 믿음은 세상에서 어려운 일 당해도, 유혹이 찾아와도 영적인 시선을 하나님께 고정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사랑과 능력이 함께 하심으로 우리는 당당하게 승리할 수 있습니다.

40:31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의 날개 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치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치 아니하리로다

12:2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이런 일련의 체험을 통해 베드로와 제자들은 예수님을 더 깊이 알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을 크게 책망치 않으시고 그들을 용납하시고 광풍에서 구원해주셨습니다. 광풍이 고요하게 가라앉자 그들은 예수님이 정말 하나님의 아들이요 우주만물의 창조주로서 모든 것을 주관하시는 분이심을 확신하게 됐습니다. 그들은 비록 예수님의 훈련 과정을 100% 소화하지 못했지만 시행착오를 통해서라도 믿음이 점점 커져갔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믿음을 키우시기를 원하십니다. 우리가 베드로의 시행착오를 보면서 할 수 있는 대로,

우리는 주님의 임재를 믿고 주님과 동행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기를 바랍니다.

세상에 한눈 팔지 말고 오직 주님만 바라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저와 여러분은 믿음의 시행착오를 최대한 줄이면서 큰 믿음으로 성장해 나아가기를 소망합니다. 시몬에서 한 발자국 더 나아가는 베드로 됨을 경험하시고, 험한 세상에서 신뢰하는 믿음으로 승리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