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기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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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132편 - 사랑하면 비로소 보이는 것
- 느헤미야강
- 2017-0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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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132편은 다윗의 성막 사랑이 솔로몬의 성전 건축으로 이어진 것과 아울러 다윗이 받은 축복의 언약 말씀을 상기시켜 주고 있습니다. 엘리 제사장 때 언약궤는 블레셋에 빼앗기게 됩니다. 그 후 이스라엘로 돌아오게 되었지만 우여곡절 끝에 기럇여아림 아비나답의 집에 이십 년 동안 있게 됩니다.
이것을 근거로 다윗이 하나님의 궤를 얼마나 사랑했는지 3절에서 5절까지 말씀하고 있습니다. “내가 내 장막 집에 들어가지 아니하며 내 침상에 오르지 아니하고 내 눈으로 잠들게 하지 아니하며 내 눈꺼풀로 졸게 하지 아니하기를 여호와의 처소 곧 야곱의 전능자의 성막을 발견하기까지 하리라 하였나이다.” 다윗은 여호와의 처소, 즉 언약궤를 찾을 때까지 긴장을 놓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6절에서 “우리가 그것이 에브라다에 있다 함을 들었더니 나무 밭에서 찾았도다.”라고 했습니다. 여기에서 ‘에브라다’ ‘나무 밭’은 기럇여아림을 말합니다. 즉, 하나님의 궤를 이십 년 동안 보관했던 아비나답의 집이 기럇여아림이었던 것입니다.
이 다윗의 성막 사랑과 하나님의 궤 사랑은 솔로몬으로 이어졌고, 솔로몬은 성전 건축을 최우선 과제로 실행했습니다. 성전 건축을 마친 솔로몬은 8절과 9절에 이렇게 말합니다. “여호와여 일어나사 주의 권능의 궤와 함께 평안한 곳으로 들어가소서 주의 제사장들은 의를 옷 입고 주의 성도들은 즐거이 외칠지어다.”
솔로몬은 성전 건축이 끝나고 봉헌했을 때, 그의 열심을 자랑하지 않고 아버지 다윗에게 하신 하나님의 언약을 상기시킵니다. 그 말씀이 10절에서 마지막 말씀까지 이어집니다. 10절에 “주의 종 다윗을 위하여 주의 기름 부음 받은 자의 얼굴을 외면하지 마옵소서.”라고 했습니다.
여기에서 ‘주의 기름 부음 받은 자’는 솔로몬 자신을 가리킵니다. 즉 솔로몬은 성전 봉헌을 하면서 자신을 위하여 얼굴을 외면하지 말라고 호소하지 않고 아버지 다윗을 위하여 자신의 얼굴을 외면하지 말아 달라고 호소하고 있습니다.
솔로몬은 자신이 하나님을 아무리 사랑한다 한들 아버지 다윗을 따라갈 수 없음을 알았습니다. 특히 영원한 복을 주신다고 먼저 약속받은 사람은 솔로몬이 아니라 다윗이었음을 깨달았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확신은 처음에는 내 자신이 알고 얼마 후에는 내 가족이 알고 더 시간이 지나면 주변 사람이 알게 됩니다. 아마 더 오랜 시간이 지나면 세상 모든 사람이 알게 될 것입니다.
다윗이 하나님을 사랑했다는 것은 자신뿐 아니라 그 가족들과 그 민족들 더 나아가 세상 모든 사람들이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라고 다 똑같은 것은 아닙니다. 그의 삶 속에서 하나님이 어떤 위치를 차지하고 있느냐, 그분을 사랑하는 마음이 단지 말이 아닌 행동으로 얼마나 나타나느냐? 하는 것을 통해 엄청난 차이가 납니다.
사랑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보이지 않는 것이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크게 보이는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임재 하시는 성막인 하나님의 궤를 둘러싸고 있는 휘장이 다윗에게는 너무도 가슴 아프고 크게 느껴졌던 것입니다.
이로 인해 다윗은 하나님으로부터 많은 축복의 약속을 받게 됩니다. 그중 가장 큰 복이 메시아 탄생이었습니다. “네 수한이 차서 네 조상들과 함께 누울 때에 내가 네 몸에서 날 네 씨를 네 뒤에 세워 그의 나라를 견고하게 하리라 그는 내 이름을 위하여 집을 건축할 것이요 나는 그의 나라 왕위를 영원히 견고하게 하리라.”(삼하 7:12-13). 이 말씀은 다윗의 아들 솔로몬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동시에 메시아 탄생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하나님 제일주의로 살아가는 것은 말처럼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사랑하면 가능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그분을 제일주의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더 깊이 깨닫고 살아가는 사람은 말로서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행동으로 표현합니다. 다윗은 말로만 한 것이 아닌 행동으로 표현했던 사람이었습니다. 우리의 삶 역시 다윗이 하나님을 사랑했던 그 모습과 삶을 본받는 성도 되시길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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