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기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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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언 6장 - 빈궁이 강도같이, 곤핍이 군사같이
- 느헤미야강
- 2017-0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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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언 6장은 지혜자가 경계해야 할 일들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보증과 담보에 대한 경계(1-5절), 게으름(6-11절), 불량하고 악한 자에 대한 경고(12-15절),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죄(16-19절), 음행에 대한 경계(20-35절)에 대한 말씀입니다. 저는 오늘 게으름에 대한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우리는 누구나 우리의 삶이 기쁘고 즐겁기를 원합니다. 그런데 기쁘고 즐거운 일에도 유익한 것이 있고 유익이 없는 것이 있습니다. 그래서 무엇을 기뻐하고 즐거워하는지를 가지고도 그 사람의 됨됨이를 알 수가 있습니다. 그럼 어떤 기쁨과 즐거움이 유익한 것이고 어떤 기쁨과 즐거움이 무익한 것이겠습니까? 유익한 기쁨과 즐거움으로는 먼저 음악을 가까이하는 것. 건강한 취미생활을 하는 것, 다른 사람의 장점을 보고 칭찬하는 것 자체가 유익한 기쁨과 즐거움이 됩니다. 또 좋은 친구를 많이 사귀고 함께 하는 것도 유익한 기쁨과 즐거움일 수 있습니다.
반대로 아무런 유익도 없는 기쁨과 즐거움은 우선 나만 좋으면 된다며 무엇이든지 자기 멋대로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순간적으로는 쾌감이 있을 수 있지만 결국에는 자기 자신에게도 해롭고 남들에게도 해를 끼치는 것입니다. 무엇보다 아무런 유익이 없이 기쁘고 즐거운 것이 바로 게으름입니다.
“게으른 자여 네가 어느 때까지 누워 있겠느냐 네가 어느 때에 잠이 깨어 일어나겠느냐 좀 더 자자, 좀 더 졸자, 손을 모으고 좀 더 누워 있자 하면 네 빈궁이 강도같이 오며 네 곤핍이 군사같이 이르리라”(잠언 6:9-11).
게으름의 끝에서 가난과 곤핍이 이르게 된다고 말씀합니다.
게으름의 사전적 정의는 ‘일을 미루거나 일하기를 싫어하는 태도’라고 했습니다. 지금 할 일을 무작정 다음으로 미루는 것이나 내가 해야 할 일을 다른 사람에게 미루는 것도 게으름입니다. 이것은 단순히 일만 의미하지 않습니다. 앎이나 지식에 적용하면 분명히 알 수 있는 일을 알려고 하지 않아서 모르게 되는 것도 게으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 믿음의 눈으로 보면 게으름은 불신앙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게으름은 하나님이 주신 소중한 은사를 버리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실 게으름은 습관과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습관이 생기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립니다. 하지만 아무리 오랜 시간이 걸려도 그 습관의 결과는 결국 다 드러나게 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게으름도 마찬가지입니다. 게으름도 그냥 버려두면 오랜 시간에 걸쳐서 나도 모르는 사이에 습관이 되고 맙니다. 그래서 11절을 보면 게으름의 결과를 빈궁과 곤핍이 강도같이 오고 군사같이 이를 것이라고 했습니다. 강도같이 오고 군사같이 이른다는 말은, 아무도 모르게 갑작스럽게 닥친다는 것입니다. 게으름이 습관이 되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릴지 모르지만 그 결과는 순식간에 닥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오늘말씀에서는 게으르지 않기 위해서 본받아야 할 곤충으로 개미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개미는 이렇게 수천 년 전부터 부지런한 곤충으로 여겨졌습니다. 개미가 부지런하다고 해서 아무런 고생도 하지 않았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결코 그렇지 않을 것입니다. 아무리 부지런해도 개미 역시 실패도 하고 모은 것을 잃어버리기도 할 것입니다. 하지만 그런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개미는 게으르지 않고 부지런한 데 변함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정말 중요한 것은 게으름이 습관이 되어서 잠만 자다가 망하기보다는 설사 실패를 하더라도 부지런하게 계속해서 여러 가지 시도를 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삶의 게으름보다 더 중요하고 조심해야 할 것이 신앙, 영적 게으름입니다.
앞에서 게으름이 하나님에 대한 불신앙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달란트 비유가 바로 그에 대한 적절한 말씀일 것입니다. 이 달란트 비유가운데 한 달란트를 받은 사람을 생각해 보십시오. 그는 자기가 받은 한 달란트를 그냥 땅에 묻어 두었다가 한 달란트 그대로 주인에게 드렸다가 ‘악하고 게으른 종’이라고 책망을 받았습니다. 이 사람이 주인에게 한 달란트를 드리면서 하는 말이 무엇입니까? 마태복음서 25:24-25을 보십시오. “한 달란트 받았던 자는 와서 이르되 주인이여 당신은 굳은 사람이라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을 내가 알았으므로 두려워하여 나가서 당신의 달란트를 땅에 감추어 두었나이다 보소서 당신의 것을 가지셨나이다”(마태복음서 25:24-25).
한마디로 주인이 누구인지, 주인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게 되자 달란트를 묻어 버렸습니다. 그리고 주인은 이 사람에 대해서 악하고 게으른 종이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에서 우리는 주인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 하는 것을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주인이 원한 것은 결과가 아니라 게으르지 않고 부지런히 충성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종이 할 일은 끝까지 충성을 다하는 것입니다. 이 종은 한마디로 주인을 잘 못 알았습니다. 그리고는 마땅히 해야할 일은 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이 게으름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할 수 있는데 하지 않는 일이 많다면 게으른 것입니다. 해야 할 일이 있는데 하지 않고 미루는 것도 게으름입니다. 문제는 하나님은 게으른 자에게는 더 이상 기회를 주시지 않습니다. 오히려 한 달란트 받은 종이 그 한 달란트까지 빼앗긴 것처럼 게으름을 바꾸지 않으면 주어진 기회도 빼앗길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얼마나 많은 것을 가졌는지, 또 그 가진 것으로 얼마나 많은 것을 남겼는지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기 쉽습니다. 그래서 기왕이면 다섯 달란트를 가지려고만 합니다. 하지만 다섯 달란트를 가지고도 그냥 묻어두기만 한다면 악하고 게으르다는 책망만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한 달란트를 가지고도 게으르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의 믿음과 삶이 게으름을 벗어나서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데 더욱 부지런한 모습이 되기를 바랍니다.
이사야서는 하나님의 뜻에 합당치 않은 일이면 설사 부지런하다고 해도 게으르고 나태한 것과 똑같다는 것입니다. 이와 관련된 말씀이 이사야서 55:2-3입니다.
“너희가 어찌하여 양식이 아닌 것을 위하여 은을 달아 주며 배부르게 하지 못할 것을 위하여 수고하느냐 내게 듣고 들을지어다 그리하면 너희가 좋은 것을 먹을 것이며 너희 자신들이 기름진 것으로 즐거움을 얻으리라 너희는 귀를 기울이고 내게 나아와 들으라 그리하면 너희의 영혼이 살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영원한 언약을 맺으리니 곧 다윗에게 허락한 확실한 은혜이니라”(이사야서 55:2-3).
시127편도 아무리 수고해도 하나님이 지키시지 않으면 모든 것이 헛것이라 했습니다. 삶의 게으름도 헛되게 하나 영적 게으름도 있다는 것입니다.
말씀을 보면 분명히 수고를 하기는 하는데 배부르게 하지 못할 수고일 뿐인 경우가 있는 것입니다. 이런 수고는 아무리 수고해도 나태하고 게으른 것과 별로 차이가 없습니다. 그래서 수고를 하는 것과 더불어 하나님께 귀를 기울이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일도 함께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래야 우리의 영혼이 살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수고를 하되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수고를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삶에도 게으름이 있고 어느날 빈궁이 강도 같이, 곤핍이 군사같이 임합니다. 영적 게으름도 마찬가지입니다. 삶에도, 영적인 것에도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리고 합당한 수고를 함으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지혜자의 삶을 사시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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