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기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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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 33장 - 저는 자도 그 재물을 취할 것이라
- 느헤미야강
- 2017-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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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 33장은 두 종류의 사람들이 등장합니다.
14절의 시온의 죄인들과 15절의 시온의 의인들입니다.
시온의 죄인들은 북이스라엘을 멸망시키고 남유다까지 침공하려는 앗수르에 대항하여 하나님만 의지하라, 애굽을 의지하지 말라, 네 지혜를 의지하지 말라하셨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 묻지 않고 애굽을 의지하려 하였던 왕과 배성들을 시온의 죄인들이라 하셨습니다.
반면에 시온의 의인들은 사람, 힘을 의지하려는 이들에 반해 하나님의 공의, 정직, 바른 물질관, 악한꾀를 듣지도 보지도 않으려는 남은자들을 말합니다.
똑같은 상황에서 서로 다른 믿음의 반응을 보인 이들을 향해 죄인들과 의인들로 구별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시온의 죄인들에 대해서는 두려워하며 경건하지 않는 자들이 떨며 심판받는 것을 무서워합니다. 하나님의 때에 다시 회복시키는 시간이 되어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고 세상을 의지하려던 저들이 두려워하고 떨게 된다는 것입니다. 정말 의지해야 할 것을 의지하지 않으면 정말 중요할 때 떨게 됩니다.
반면에 시온의 의인들은 높은 곳에 거하고, 견고한 바위가 요새되고 양식과 물이 끊어지지 않고 공급된다고 합니다.
오늘 본문말씀은 심각성과 도전을 함께 줍니다.
시온은 오늘날 교회안에 있는 사람들을 의미합니다.
오랫동안 교회에 다니고 예배하는 사람들이지만
그 안에 죄인들과 의인들로 나뉘어진다고 합니다.
겉으로는 하나님을 믿는 것 같으나 속은 내가 하고 싶고, 되고 싶은 것,
세상의 성공과 가치, 세상의 힘을 더 의지합니다.
겉으로 보이는 것에 평안함을 가지고 있는 것 같으나
개인적 종말, 영과 육이 분리되어 하나님앞에 서게 될 때에,
주님의 다시오실때에 두려워 떨 수 밖에 없는 인생들이 있음을 보여줍니다.
반면에 하나님만 신실하게 믿고 의지하는 사람들에게 주시는 약속이 있음도 보여줍니다. 모든 사람이 넓은 길로 가려하고, 쉽고 편안하고 세상사람들의 가치관과 별로 다르지 않는 길 가는 이들에 대해 언제나 노우라고 말 할 수 있는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 책임지십니다.
그러면서 오늘 본문 말씀이 주는 큰 위로의 말씀이 있습니다. 23절입니다.
네 돛대 줄이 풀렸으니 돛대의 밑을 튼튼히 하지 못하였고 돛을 달지 못하였으니라
돛대 줄이 풀리고 달지 못하는 것은 앗수르를 향한 심판입니다. 그런데 도전과 위로의 말씀이 되는 것은, 저는 자도 그 재물을 취할 것이며 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임하는 때가 되면 많은 재물을 탈취하게 되리라 합니다.
탈취물이 얼마나 많길래 그렇게 말씀하실까요?
멀쩡한 다리를 가진 사람들이 먼저 훑고 바닥날 그 자리에 <저는 자>까지도 가질 수 있는, 탈취물이 남게 되는 걸까요?
절룩절룩, 남들보다 느린 속도로, 전리품을 향해 뒤뚱거리며 뛰어가는
<저는 자>들의 몸짓을 상상해 봅니다. 그들은 왜 절게 되었을까?
전쟁 중에 다쳤을까요? 어릴 때 사고를 당했을까요?
하나님의 때가 이르는 동안 <유다의 남은 자>들은
편안한 삶만 살게 되진 않았을 것입니다.
연단을 거친 사람들, 믿음의 선한 싸움을 잘 이겨낸 사람들,
타작마당의 곡식처럼 이리저리 수레바퀴로 굴리워 지면서
거룩의 과제를 공부해 온 사람들도 있었을 것입니다.
어떤 형태로 육체의 다리를 절게되든,
마음의 다리를 절게되든 하나님의 선한 일에 쓰임받아 절게된 인생들마다
하나님의 때가 이르면. 탈취물을 얻을 특권이 있음을 보여 줍니다.
이 유다의 모습이 바로, 천성을 향하는 가는
나의 삶이기도 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저는 오늘 본문을 묵상하며, 하나님의 때를 기다린 모든 자에게 <전리품>을 주고 싶어 하시는 하나님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제 자신을 비추어 보았습니다. 나는 하나님의 사명 때문에, 복음 때문에 그 길가다가 절뚝거리게 된 삶인가? 아니면 전혀 절뚝거리는 근처도 가지 못하지 않는가?
가끔씩은 책임이 부여된 교회일이 없는 친구가 막 부러워지면서,
제 삶의 방식이 참 미련해 보이기도 합니다.
왜 설교에 목숨걸고 그것 하나만 잘 하고
이 사람 저 사람 마음 맞추어주며 쉽고 편안하게 가면 될 것을
굳이 이것 저것 하려하고 힘들게 달려가려고 할까?
영적 예루살렘이라는 하나님의 교회에 머물러 있는 제 자신을 보면서,
그런 나를 향해 달려 오는 엄청난 <목회와 삶의 무게>는
앗수르의 큰 배가 되어서 늘 위협해옵니다.
아이들이 한 번씩 아프고 나면 신기하리만치 체력이 뚝 떨어지는 것을 느낍니다. 반면에 아이들은 어느사이엔가 훌쩍 커져 있는 것도 봅니다.
마찬가지로 성도님들이 한 분 한 분이 이런 저런 이유들 때문에 힘들어 하고 아픔을 느끼는 것을 보면 더없이 어깨가 쳐지는 제 모습을 봅니다. 아무래도 목사가 잘못해서 벌어진 일들같아서입니다.
아이들이 아프고 난 뒤에 한 층 더 자라나 있서, 더 다양한 에너지를 엄마에게 요구하는 모습을 봅니다. 성도님 한 분 한 분마다 넘어지고 쓰러지며 아픔가운데 일어나는 순간 말할 수 없이 훌쩍 커 있는 상상도 해 봅니다. 그러면서도 기다리다 기다리다 마음 무너지는 것은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내 육신의 연약함을 이기지 못하고, 이것 저것 그만두고 내려 놓을까?
이런 저런 모습으로 징징거리며 중얼거리고 궁시렁대며 기운없는 소리 내며
일하고 있는 것 같아 마음 무거워 하면서
그런 모습을 하고 있는 제가 제 자신을 보면서
너, 영 내 마음에 안 든다.
그런 소리를 외칠즈음 본문이 그렇게 은혜를 주십니다.
내가 나를 보는, 내 소리를 들으시는, 하나님은 오죽 지치시겠는가?
그런 생각이 묵상되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자도 그 재물을 취할 것이며...
이 말씀이 그렇게 위로가 되고 힘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20절 말씀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우리 절기의 시온 성을 보라 네 눈에 안정된 처소인 예루살렘을 보리니
그것은 옮겨지지 아니할 장막이라 그 말뚝이 영영히 뽑히지 아니할 것이요
그 줄이 하나도 끊어지지 아니할 것이며
오늘 말씀은 모든 자에게 탈취물을 거두게 하시는 하나님은 늘 부족함 많고 쉽게 무너지며 좌절도 하는 우리들을 보면서 이런 우리를, 혹시 <저는 자>로 여겨 주시며 기다리고 계시는 건 아닌지...그렇게 생각하니 은혜가 되었습니다.
저는 자에게까지 재물을 나누어주신다는 말씀이 결코 가볍지 않은 이유가 있습니다.
바르게 똑바로 걷지 못하고 절뚝거리는, 연약한 나를 위해서도
전리품을 남겨 놓으시겠다고,
부족한 모습 그대로 주의 길을 걸으라고
맨 나중에 와도 괜챦으니 오던 길 멈추진 말라고,
이번 전쟁에서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면
못난 나를 위해서도 남겨질 탈취물이 있으니, 꼭 챙겨 갔으면 좋겠다고 하시는 말씀으로 읽으니 은혜이다 싶습니다.
오늘도 부족함 많아도, 주님의 길 가다다 부딪끼고 넘어져 절룩거려도
탈취물을 취하게 하시겠다는 사랑의 하나님을 붙들고
믿음의 길 잘 감당하시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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