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기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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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레미야 38장 - 말씀을 듣고싶어 했지만 망한 사람
- 느헤미야강
- 2018-0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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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절의 인물들은 친애굽파 지도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여전히 애굽에 기 대어 바벨론으로부터 구원을 받기를 바라는 자들이었기에,
바벨론에게 항 복하라는 예레미야의 말은 참을 수 없이 거슬리는 것이었습니다.
예레미야의 말은 또한 군사들과 백성들의 마음을 약하게 만들었습니다(4).
그래 서 그들은 시드기야 왕에게 예레미야를 죽여야 한다고 강권하고
우유부단 한 시드기야는 예레미야를 소극적으로 그들의 손에 맡김으로써
자기 책임 을 면하면서 예레미야를 처치하기로 합니다(5).
예레미야는 결국 시위대 뜰의 감옥에서 그곳의 진흙 구덩이에 던져졌습니 다.
이 때는 이미 예루살렘이 포위되어서 먹을 것이 떨어진 때였고,
이 구 덩이에 던져져서 아무 것도 먹을 것을 공급받지 못하는 예레미야는 사실 상
사형 집행을 당하는 셈이었습니다(6, 9).
이와 상반되게 한 사람의 경건한 신앙인이 소개되는데 그의 이름은 에벳멜렉입니다.
그는 시드기야의 왕궁 내시였고 구스인(이디오피아인)이었습 니다(7).
그는 용감하게 왕에게 나아가 예레미야 선지자에게 그렇게 행한 것은 ‘악한 일’이라고
분명하게 말하고 그를 죽기 전에 건져내야 한다 고 간청합니다.
우유부단하고 책임지기를 두려워하는 시드기야는 다시 에벳멜렉의 청을 받아들여
죽기 전에 예레미야를 구덩이에서 건져내게하고 30명을 붙여주 었습니다(10).
에벳멜렉은 친절하게 줄을 내려 예레미야를 끌어올렸고 (12)
예레미야는 계속 시위대 뜰에 머무르게 됩니다(13).
당시 감옥이 지하 땅속으로 깊이 파인곳에 겨드랑이에 밧줄에 걸고 내리 고 끌어 올리는 것이었습니다.
에벳멜렉은 행여나 예레미야가 다칠까봐 헝겊조각을 겨드랑이에 넣고 안전하게 끌어올리는
따듯함과 배려를 보여 줌으로서 그가 어떤 성품과 배려의 사람인지를 보여줍니다.
시드기야 왕은 다시 성전의 은밀한 곳으로 예레미야를 불러 그를 독대합 니다.
새로운 하나님의 말씀이 있는지 묻자 예레미야는 어떤 말이든지
자 신을 죽이지 않겠다는 약속을 요구하고 시드기야는 맹세를 합니다.
이 때 예레미야가 준 말씀은 여전히 시드기야가 바벨론에 항복을 해야만 산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시드기야는 엉뚱하게도 그렇게 하면
이미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간 유대인들이 자기를 어떻게 할까봐 두렵다고 말합니다.
그 들이 자기를 조롱할 것이라는 것입니다(19).
예레미야는 하나님의 말씀을 청종하여 생명을 구하라고 간청합니다.
그러 나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왕궁의 모든 여자들(왕의 부인들을 포함하여)이
다 바벨론으로 잡혀가서 수치를 당하고 강제로 결혼을 당하거나
죽임을 당할 것이라는 것도 덧붙입니다.
시드기야는 그 하나님의 말씀 앞에 순종을 결단하지 않은 채, 대화는 끝납니다.
이 상황에서도 시드기야의 마음에 걸리는 것은 친애굽파 대신들이
자기가 예레미야를 만나 대화한 것을 알게 될까봐 염려합니다.
결국 이 만남은 알려지겠지만, 그들이 무슨 대화를 나누었는지 물으면
그저 예 레미야가 자기를 요나단의 집 감옥으로 돌려보내지 말아달라고
부탁하는 만남이었다고 대답하게 합니다.
예레미야는 이렇게 해서 예루살렘이 멸망 하는 날까지 왕궁 시위대 뜰에 감금되어 지내게 됩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주신 깨달음과 도전이 있습니다.
시드기야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 말씀을 청종하는 결단을 하지는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위로를 받고 그 말씀에 기대어서 힘을 얻어보려는 생각은
우리를 포함하여 많은 사람들에게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 씀을 듣고 어떤 댓가를 지불하더라도
청종할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는가 는 전혀 다른 문제입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교회에 오는 이유는
성전으로 은밀히 예레미야 선 지자를 불러서 뭔가를 듣기를 원했던
시드기야 같은 마음으로 올 수 있습 니다.
우리들에게는 이런 마음이 없을까요?
시드기야가 선지자를 불러 말씀을 들었기 때문에 구원을 얻었다고 성경은 말하지 않습니다.
그는 선지자를 청해 말씀을 듣기를 원했고 말씀을 들었 지만,
그 들은 말씀에 순종하지 않아서 망했습니다.
성경이 강조하는 것은 시드기야는 믿음의 사람이 아니었다입니다.
우리 역시 말씀을 듣기를 사모하고 자리에 머물러도
말씀이 주는 결단의 자리라 나아가지 않는다면
역시 참 믿음의 사람인가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반면에 오늘 본문에 소개된 내시 에벳멜렉은 어땠습니까?
그는 용감하게 왕에게 나아가 지금 일어나는 일은 악한 일이라고 말할
믿 음의 용기가 있었고 침묵하지 않았습니다.
진리, 바른 것에 대해서는 행동 을 취할 준비가 되어있었고 그것을 왕에게 요구했습니다.
내시가 그것도 아프리카 흑인인 그가 감히 뉘 안전이라고
왕앞에서 그 일 은 잘못이라고 말할 수 있었을까요?
그는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하나님의 예언자를 귀히 여기는 사람이었습니다.
참 용기는 어디에서 나오는지를 알고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참 믿음, 참 용기는 자신의 안위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 진리 때문 에 마땅히 행해야 할 일을 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그에게 어떻게 갚으셨을까요?
예레미야 39장의15~18절에서 그것을 볼 수 있습니다.
약속하신대로 성에 재앙이 내릴 때에도
하나님은 그를 기억하사 구원해주 실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가 하나님을 신뢰했기 때문입니다.
우리 역시 진리 때문에 위험한 일이어도 용기를 가지고 침묵하지 않는
하 나님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말씀을 듣고 내 뜻과 달라도 결단하는 자리로 나아가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것이 참 믿음의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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