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기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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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레미야애가5장 - 하나님의 영예를 위해 울라

  • 느헤미야강
  • 2018-0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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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레미야애가 1~4장은 각절이 히브리 알파벳의 순서대로 시작하는 
acrostic 의 형태를 가지고 있었지만 5장은 예외입니다. 
5장의 내용은 기 도로 시작해서 기도로 마치고 있습니다. 
여기에 소망이 있습니다. 

하나님께 유다의 비참한 처지를 기억하시고 
살펴주시기를 구함으로 기도가 시작됩니다(1). 
이스라엘 백성들이 당한 치욕은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에게 주시려고 의도하셨던 영광과는 
전혀 반대의 것이었습니다. 
그 치욕은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선물로 주사 누리게 하신 영토와 집을 빼앗긴 것으로(2), 
적이 유다 백성의 목을 눌러 굴욕과 위협을 주는 것(5), 
유다 백성은 양식을 얻기 위해서 구걸을 해야만 하는 
처지가 되는 것으로 나타 났습니다(4, 6). 
타는 굶주림은 유다 사람들의 피부를 다 검게 만들어버렸고(10), 
부녀들은 다 적들에게 욕을 당했으며(11), 
지도자들도 역시 적들 에 의해서 수치를 당하였습니다(12). 
청년들은 엎드러지고, 노인들은 희망 을 잃어버렸습니다(13,14). 
유다가 누리고 있던 모든 것이 하나도 남김이 없이 다 사라져버렸다. 
면류관이 머리에서 떨어져버렸다는 표현으로 예레미야는 처지를 아뢰고 있습니다(16). 
그리고 고백하기를 이 모든 고통과 멸망의 원인은 
그들의 범죄함때문이 라고 고백합니다(16b).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지막으로 예레미야는 놀라운 고백을 합니다. 
하나님이 영원하시다는 것입니다. 
“여호와여 주는 영원히 계시오며 주의 보좌는 대대에 이르나이 다”(19). 
이 세상의 짧은 역사 속에서 일어나는 일들로 인해서 
우리는 일희일비 할 수 있으나, 
하나님은 영원하신 분으로 그 큰 그림 안에서 
당신이 영광 받으실 일을 행하고 계시다는 확신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삶을 짧게 끊어서 보면 힘듦과 고통으로만 가득해 보입니다. 
이해안되는 것이 많습니다. 
그러나 영원하신 하나님앞에서는 작은 순간 에 불과합니다. 
영원하신 하나님편에서는 우리가 다 이해할 수 없는 것조차도 
하나님의 주권속에서 계획하심이 있습니다. 
그것을 이해하면 오늘의 아픔을 이기는 능력이 됩니다.

내 눈앞의 현실, 나라 잃고 수많은 백성들은 포로로 잡혀갔습니다. 
남아 있는 백성들도 비참하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보니 영원 하신 분입니다. 
가장 밑바닥에 떨어졌다 해도 위로가 될 수 있습니다. 
영원하신 하나님을 인정하는 것은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태도입니다. 

예레미야 입장에서 눈에 보이는 성전과 보좌는 무너졌지만 
영원하신 하나님과 보좌는 변함 없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영원하신 하나님이 고백되어지면 
오늘이 내 삶의 위기조차도 나를 주저앉힐 수 없으며, 
넉넉히 이기는 힘이 됩니다.

말씀을 묵상하는 가운데 보아스와 룻이 생각났습니다.

여리고성 기생 아합. 가장 밑바닥의 인생을 사는 여인이었으나 
하나님 의 행하실 일을 소문으로만 듣고 믿음으로 고백한 결과 
멸망의 자리에서 구원의 능력을 경험했습니다. 
그런 여인이 자녀를 낳고 어떻게 길렀을까요? 
그 믿음안에서 하나님의 주권과 영원하심에 대한 고백은 
자연스럽게 아들 보아스에게로 흘러들어갔을 것입니다.

룻은 이방여인으로 시어머니 나오미를 통하여 
믿음의 길을 들어선 여인 입니다. 
나오미의 내리사랑, 
내게는 소망이 없으니 친정으로 돌아가라는 권면앞에서 
어머니의 하나님이 내 하나님이라는 고백과 함께 
나오미를 따 랐던 룻 역시 가장 비천한 삶의 자리에서 
하나님의 능력과 영원하신 사랑을 경험한 여인이 되었습니다. 
그런 보아스와 룻의 만남은 
결국 예수 그리스도의 조상이 되는 가정이 되었습니다. 

눈 앞의 현실보다 전능하신 하나님, 
영원하신 하나님을 고백하는 인생에게는 
절망의 자리에서 소망으로 나아가게 하는 힘이 있습니다. 
이 영원하신 하나님을 붙잡으시기를 바랍니다.

또한 예레미야 선지자가 애가를 통해서 보여주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하나님의 백성을 위한 눈물과 탄식입니다. 
오늘날에도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이런 정서와 인식이 절대적으로 필요 합니다. 
우리를 괴롭게 하고 힘들게 하는 것은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일어나는 문제들이 대부분일 것입니다. 
그렇다면 과연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영예를 위해서, 
교회의 영적인 상태를 인해서 
아파하고 울며 
하나님께 나아가고 있는 것인가? 
그런 사람들은 어디에 있는가? 

예레미야가 가졌던 태도는 
바로 모든 참된 그리스도인들의 태도와 다르지 않습니다. 
애가에 나타난 예레미야의 마음이 
우리 자신에게도 부어지 기를 기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