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기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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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니엘 6장 - 던져질것인가 들어갈 것인가
- 느헤미야강
- 2018-0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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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벨론 제국은 망하고 이제 메대와 바사제국이 세워져 다리오 왕의 통치가 시작되었지만, 다니엘은 계속해서 새 제국의 최고 총리로서 역할을 하게 됩 니다(1~3). 다니엘에게서 받는 첫 번째 도전은 나라가 바뀌고 정권이 바뀌 어도 다니엘은 변함없이 총리자리에 있었다는 것입니다. 어떤삶을 살았기에 바벨론이 왕에게서도 인정받고 그나라를 멸망시킨 메대 바사 페르시아 제 국에서도 인정받을 수 있었을까요? 다니엘서 전체는 하나님의 주권에 대해 서 말하고 있습니다. 다니엘 개인사에서 보자면 하나님이 높이시고자 하는 자를 사람이 막을 수 없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러나 다니엘의 편에서 보면 그는 하나님께 뜻을 둔 사람이었습니다. 메대 바사 제국은 120개 도를 관할하는 방백들과 그 위에 세 명의 총리를 두었는데, 그 중 다니엘은 수석 총리에 해당하는 역할을 맡았습니다. 그러 나 실상 모든 방백과 두 사람의 총리는 다니엘의 대적이었습니다. 이전 바 벨론 제국의 대신으로서 새 제국의 수석 총리를 맡은 다니엘에 대한 시기 와 질투는 도를 너머 어떻게 해서든 그를 책잡고자 살피지만 흠을 찾지를 못했습니다(4~5). 결국 그들이 꾸민 음모는 삼십일 동안만 다리오 왕 외에 어떤 신에게도 어떤 것도 구할 수 없다는 법을 제정해서 매일 하루 세 번 을 기도하는 다니엘을 잡으려는 계획이었고 이것은 결국 다리오 왕의 어인 을 받아 내게 된다(6~9). 책 잡을 것이 없자 다니엘의 경건한 습관을 이용 해서 책략을 세웠습니다. 다니엘에게도 이 음모는 알려졌습니다.
이것은 다니엘에게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를 요구하는 것이었습니다. 경건한 삶을 선택함으로써 왕의 노여움을 사 사자굴에 들어가 죽을 것인가? 아니면 적당히 타협하고 불경건한 자로서 목숨을 이어갈 것인가 하는 선택입니다.
다니엘의 선택은 분명했습니다. 그는 이 사실을 알고도 평상시 와 마찬가지로 예루살렘으로 향하여 열린 창 앞에서 기도의 삶을 계속했습 니다(10).
이 믿음은 결코 하루 아침에 만들어지는 게 아닙니다. 그의 믿음의 비밀은 조국과 부모를 떠나 포로로 바벨론 왕궁에 붙잡혀왔던 십대 소년이었을 때 그가 했던 결심에서 이미 시작됐습니다(1:8). 세월이 흘러서 80여세 가까이 된 다니엘에게 이 소년 때의 결심은 여전했고 평생에 했던 수없이 작은 선 택들은 이 생사를 가늠하는 결정적인 순간에도 여전히 경건한 삶으로 죽음 을 선택하는 용기를 주었을 것입니다. 결국 창문을 열고(그는 창문을 닫는 타협도 하지 않았습니다!) 기도하는 모습이 대적들에게 포착되고 그는 자신 을 살리려고 애쓰는 다리오 왕도 어쩔 수 없는 ‘법’의 힘 앞에서 사자 굴에 던져집니다(11~18).
밤새 잠을 못 이루고 이튿날 새벽 사자 굴 입구로 달려간 다리오 왕에게 굴에서부터 흘러나오는 다니엘의 고백은 참으로 놀라운 광경이다. 결국 하 나님은 ‘자기 하나님을 의뢰한’(23) 다니엘을 사자들의 입에서 건져내셨고 대적들은 오히려 사자굴에 들어가 죽임을 당하게 된다.
본문을 통해 하나님께서 주신 많은 은혜가 있습니다.
첫째 하루 아침에 이런 다니엘의 믿음이 만들어진 게 아닙니다. 이 믿음은 평생의 선택의 결과로 다져진 믿음입니다. 우리는 매일 선택에 직면해서 살 아갑니다. 인생의 작은 결정과 선택을 믿음으로 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인생 의 결정적인 순간에도 그렇게 하지 않을 것이며, 결국 이것은 우리가 하나 님과 무관한 인생을 살았음을 증명하게 될 것입니다.
둘째, 다리오 왕은 다니엘을 통하여 비록 하나님의 존재를 알게 되었습니 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손에 붙잡힌 한 사람을 통해서 제국의 최고 통 치자들에게 하나님을 알게 하시는 분이십니다(16, 20, 26~27).
셋째, 무엇보다 저는 이 본문을 읽을때마다 신앙적 갈등과 의문이 일어납니 다. 다니엘은 타협할 수 없었나? 꼭 이렇게까지 해야 했을까?
왕의 조서가 30일 동안만이라고 했으니 30일 동안만 참으면 안 되었을까? 참는다고 하나님을 버린것도 아닌데, 30일 만이라도 마음으로 기도할 수는 없었을까? 예루살렘을 향한 타는 가슴과 목마름으로 기도해도 되지 않았을 까? 꼭 티를 내면서 그래야 했나? 오늘 본문을 보면 다니엘은 티를 팍팍 내면서, 그것도 창문을 열고 기도를 했습니다. 굳이 그렇게까지 기도해야 했을까요? 아니 기도를 안할 수 없었다면 방문을 꼭 걸어 잠그고 기도하며 되는 것 아닙니까? 뻔히 흠잡으려는 의도를 알면서도 굳이 창문을 열고 기 도하는 것은 도대체 무슨 배짱일까? 저의 합리적인 생각으로는 이해 되지 않습니다. 그러다가 어느순간에 그게 아니었음을 깨달았습니다. 다니엘이 저와 같은 생각을 못했을까? 다니엘은 그것도 한 방법인 줄 알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다니엘은 창문을 닫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다니엘의 인생속에서 한 번도 떠나지 않으셨던 분, 하나님만이 유일한 소망임을 알았던 사람입니다.
다니엘에게는 한가지 소원이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 예루살렘 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끌려왔을때부터 생각했고, 지금 총리가 된 후에도 생각했던 것은 예루살렘으로 돌아가는 것이었습니다. 그때 무엇을 생각했을 까요?.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 있을때 모세를 통해 약속하신대로 구원하 셨듯이, 이 하나님의 언약 백성들을 다시 바벨론에서 해방시켜 해주실 것이 라는 믿음을 가졌을 것입니다. 그러니 그는 기도할 수 밖에 없었고, 매일 세 번씩 기도하다보니 기도가 습관이 되었던 것입니다. 습관이 되니 귀에 들린 왕의 조서와 상관없이 몸이 이미 움직이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니 10절의 다니엘의 행동은 일부러, 고의적으로 한 것이었습니다. 알고 도 행한 것이었습니다. 다니엘이 창문을 연 것은 하나님을 향한 다니엘의 믿음, 다니엘의 마음을 표현한 것이었습니다. 다니엘이 기도하면서 열어놓 았던 창문은 단순한 것이 아니라 이 백성들을 구원해내실 하나님을 확인하 고야 말겠다는, 절대로 닫을 수 없었던 창문이었습니다. 그렇기에 창문을 연다는 것 때문에 어떤 어려움 온다해도 그것만큼은 닫을 수 없었던 최후 의 창문, 유일한 소망의 창문이었습니다. 그러니 다니엘은 왕의 조서에 어인이 찍힌 것을 알고도 창문을 열 수 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니 다니엘 은 사자굴에 던져진 것이 아니라 스스로 들어간것입니다.
여러분에게는 다니엘과 같은 창문이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나에게도 소망 이 되어주시고, 책임지신다는 확신의 창문이 있으신가요? 내가 하는 대부분 의 낙심과 염려는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열린 창문이 없기때문이 아닐까 요? 내 상황에 따라 내가 결정하고 행동하기에 걱정와 염려, 갈등이 끊이지 않는것 아닙니까? 열린 창문이 있으면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볼 수 있는데, 왜 걱정하십니까? 기도의 창문, 확신의 창문, 언약을 반드시 이루시는 하나 님이 계시는데 왜 걱정하십니까? 걱정, 염려만 하고 주저앉는 것은 열린창문이 없기 때문입니다. 믿음의 창 문이 닫혀있으니 하나님을 못 보는 것입니다. 소망의 창문을 닫아놓으니 일 하시는 하나님을 못 보는 것입니다. 상황과 조건이 사자굴에 넣어진 것 같아도 마음보다 몸의 반응이 먼저 하 나님께로 향해 있으면 그곳에서도 살아나는 역사가 있습니다. 신앙과 믿음 의 반응이 마음을 넘어 몸이 반응하도록 하십시오. 그것이 세상속에서 믿음 의 사람이 살아아 할 방향임을 다니엘이 가르쳐줍니다. 여러분 믿음의 길과 심령에, 가정 가운데 열린창문을 둘 수 있기를 축원합 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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