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기도회
간절한 기도, 은혜가 충만한 말씀, 주님의 말씀으로 늘 새롭게 변화되는 새생명교회입니다
호세아 8장 - 네 송아지는 버려졌느니라
- 느헤미야강
- 2018-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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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행기를 타고 창공에 오르면 아래 있는 것들은 뭐든지 크게 보이지가 않습니다.
집도 학교도 아파트도 산들도 작게만 보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아 버지의 품에 안겨 높이 올라가면 이 땅에서 그렇게도 크고 중요하게 보이던 것들이 모두 작아 보입니다.
가정, 직장, 돈, 갈등, 고민, 문제 등등 모 두가 작아 보입니다. 관점의 변화가 일어났기 때문입니다.
낮은 곳에서 보 는 것과 높은 곳에서 멀리 보는 것과는 다르게 보일 수 밖에요. 때문에
신앙생활의 목표는 낮은 차원의 관점을 높은 차원의 관점, 즉 하나님의 관점 까지 끌어올리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불행은 하나님과의 언약 관계를 오해한 데 있습니다.
즉,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한 하나님의 관점이 어디에 있는지, 자신들의 관점이 어디에 있어야 하는지를 잃어버렸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태어나기만 하면 자동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 자격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신앙을 언약의 관계로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하나 님께서 택한 백성이니까 하나님의 은혜는 자동적으로 주어지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여호와의 집에는 결코 심판이나 재앙이 임할 것으로 여기지 않았습니다.
역시 하나님에 대한 잘못된 지식이 원인입니다.
성경은 1절에 원수가 독수리처럼 이스라엘 집에 덮치리라고 말씀합니다.
원인은 언약을 어겼기 때문입니다. 신앙은 언약의 문제입니다.
이 언약이란 너희가 하나님을 왕으로, 주권자로, 삶의 중심에 놓으면
너희가 살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댓가를 지불할 것이라는 것입니다.
언약관계에서 주목할 구절이 5,6절입니다. 5절 “사마리아여 네 송아지는 버려졌느니라”,
6절 “이것은 이스라엘에서 나고 장인이 만든 것이라 참 신이 아니니 사마 리아의 송아지가 산산조각이 나리라”.
사마리아 신앙의 특징은 송아지 신앙입니다.
하나님의 언약은 상호관계성이 있는 것인데 송아지 신앙은 인간편에서 하나님을 형상으로 제한해 버리고
나의 요구만을 일방적으로 들어주도록 하는데 있습니다.
거기에서 하나님은 그저 내 필요를 채우는 신일 뿐입니다.
송아지 신앙은 하나님을 제한해 놓 고 자신들이 편한대로 생활합니다.
송아지 신앙은 하나님을 주일에만 제한 해 버리는 것입니다.
예배시간, 설교시간에만 제한해 놓고 살아갑니다.
사마리아의 송아지는 예루살렘에 대한 시기심 때문에 생겼습니다.
남북이 분열되고 남유다에 예루살렘성전이 있는데 절기때가 되면 예배드리러 갈 수 없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고안해 낸 것이 송아지인데 그것을 만들어 놓고
그것이 자신들을 애굽에서 이끌어내고 광야를 인도하신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거기에 하나님을 가두고 제한시켜 놓은 것입니다.
하나님을 주일에만, 예배때만, 설교때만 계시는 분으로 오해하고,
주일에만 하나님을 가둬 놓으신다면 그것이 곧 송아지 신앙입니다.
우상의 정체는 무 엇입니까?
6절, “이것은 이스라엘에서 나고 장인이 만든 것이라 참 신이 아니니 사마리아의 송아지가 산산조각이 아니라”
사람이 만들고, 사람이 정의해 낸 것은 하나님이 아니라 우상입니다.
7절 “그들이 바람을 심고 광풍을 거둘 것이라 심은 것이 줄기가 없으며 이 삭은 열매를 맺지 못한 것이요
혹시 맺을지라도 이방 사람이 삼키리라”
시작할때는 바람이 슬슬 불어서 모든 것이 형통한 것 같았는데 좀 지나고 나니까
광풍이 불어서 모든 것을 다 날려 버리고 맙니다. 헛된 것을 의지하 면 그 결과가 광풍입니다.
다 날려 버립니다. 하나님이 아니시라 하고 훅 불어 버리면 무엇을 심어도 줄기가 없습니다.
혹시 열매가 맺힌다고 해도 대적이 다 빼앗아가 버립니다.
하나님을 의지 하지 않는 신앙은 외교적인 수단으로 다른 강대국을 의지하 는 것으로,
또 하나는 말씀 없는 종교적 열심으로 나타났습니다.
8-10절은 불신앙 외교를 보여주면서 즐겨 쓰지 않는 그릇같다고, 홀로 떨 어진 들나귀같다고 말씀합니다.
결국 주인이 즐겨하지 않는 그릇되었고, 친 구 하나없이 어너제나 혼자인 민족이 되었다고 합니다.
12절 “내가 그를 위하여 내 율법을 만 가지로 기록하였으나 그들은 이상한 것으로 여기도다”
하나님은 다른 곳에서 삶의 의미와 바른 언약관계를 찾지 않아도 되도록 많은 율법을 주셨습니다.
그 말씀중에 어느 부분을 묵상해도 하나님에 대한 거룩을 되찾을 수 있고 축복을 회복할 수 있으며,
하나님의 은혜로 돌아올 수 있도록 굉장히 많은 말씀을 기록해 놓았습니다.
그런데도 읽지 않을뿐아 니라 상관 없는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오늘날 놀라운 가운데 하나는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이 성경을 엄청나게 읽지 않습니다.
그 많은 시간을 고민하고 방황하고 토론하면서 성경 은 읽지 않습니다.
성경 한 장만 진지하게 읽어도, 설교 한 번만 진지하게 들어도 모든 어둠의 권세를 물리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읽지 않습니다.
성경은 자기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것으로 생각하면서 쓸데없는 자기 열 심히 빠집니다.
올 한 해 성경을 통독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같은 본문을 읽고 같이 고민하여 우리의 믿음이 방향성을 일치시켜 나가는 것입니다.
좋은 부모와 자녀의 관계가 되려면 사랑의 교제가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이 자녀의 관계가 되었다는 것만으로 모든 것을 다 이룰 수 없습니 다.
언약관계인 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말씀을 읽어야 합니다.
말씀이 내 삶을 변화시키고 나를 뒤 집어 엎게 해야 합니다.
나에 대한 염려와 계획을 포기하고 하나님의 계획이 세워지기를 구 해야 합니다. 이것이 오늘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의 신앙이 북이스라엘의 송아지 신앙처럼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하나님을 이 땅에 끌어내리고
하늘 보좌를 움직이는 기도라고 하는 것은 심각한 문제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섭리와 뜻에 나를 맞추고 변화시킬 수 있는 그것이 참된 기도이고 성도의 삶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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