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기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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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9장_예수님의 권위가 행동으로 드러나다
- 느헤미야강
- 2018-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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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911(화) 새벽기도회
마태복음 9장
5장부터 7장까지를 정리하면 예수님의 말씀앞에
회개하고 참으로 받아들이고 갈망하는 삶을 살 때
하나님의 다스림가운데 거하게 됩니다.
거기에 제자됨의 모습이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권위 있는’ 말씀이 거기에 녹아있습니다.
이어 8장부터 우리는 예수님의 행동에서 드러나는 권위를 목격하게 됩니다.
그분의 말씀에서 느껴지는 비범함은 그분의 행동에서도 드러납니다.
이 행동들을 통해 예수님은 당시의 유명했던 종교 지도자들보다
더 ‘나은’ 분이 아니라 ‘다른’ 분임이 분명해집니다.
마태는 예수님이 행하신 일들 중 몇 가지를 여기에 기록합니다.
1-17절을 살펴보면 온갖 질병을 짊어지시는 예수님을 발견합니다.
1-4절에는 나병환자를 만나십니다.
레위기는 이런 사람들을 부정하다 여겨 공동체로부터 격리 시키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이런 사람과 만나거나 접촉하는 모든 것은 부정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 환자가 자신을 치유해 달라고 청했을 때 예수님은 그의 몸에 손을 대십니다.
예수님은 부정해 지는 것을 상관하지 않고 그를 정상인으로 대하시고
말씀으로 그를 치유해 주십니다.
그리고는 율법 규정을 따라 제사장에게 가서 완치 확인을 받으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로써 예수님은 그의 마음의 질병과 육신의 질병과 사회적 질병을 치유해 주십니다.
하나님의 다스림은 이와 같은 온전한 샬롬을 가져옵니다.
5-13절에서는 가버나움에서 자신의 종을 치유해달라는 백부장을 만납니다.
가버나움에는 중대 병력의 로마 군인들이 주둔하고 있었고,
백부장은 그 부대의 최고 지휘관이었습니다.
백부장이 병든 종을 위해 체면 불구하고 예수님에게 찾아가
도움을 청했다는 것은 주목할 만한 일입니다.
예수님은 그의 요청에 응답하여 따라 가려 하나 백부장이 사양합니다.
그는 백부장으로서의 자신의 권위에 능력이 있는 것처럼
예수님의 권위에도 능력이 있을 것이라고 믿고 말씀만 해 달라고 청합니다.
예수님은 그의 믿음에 놀라시면서 그렇게 해 주십니다.
14-17절에서는 가버나움에 있던 베드로의 장모의 열병을 고쳐주시고
소문을 들은 사람들이 귀신 들린 사람들과 병자들을 데려 오자 모두 치유해 주십니다.
여기에서 마태는 이사야서 53장 4절의 말씀을 인용합니다.
예수님은 예언자 이사야가 예언한 ‘고난의 종’으로서
인간이 당하는 모든 아픔과 질병을 담당하시는 분이라는 뜻입니다.
인간의 질병 중에 가장 깊은 질병은 죄입니다.
고난의 종 예수님은 마침내 십자가에서
모든 인류의 근원적인 질병을 짊어지고 죽음을 당하셨습니다.
18-22절에서는 예수님을 따른다는 것이 무엇이어야 하는지를 보여줍니다.
예수님의 말씀과 행적에 감동한 어떤 서기관이 예수님을 따르겠자고 합니다.
그 때 예수님은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20절)고 대답하십니다.
‘인자’는 예수님께서 당신 자신을 가리키기 위해 자주 사용하신 칭호입니다.
이것은 단지 예수님의 사람되심을 의미하는 칭호차원이 아니라,
다니엘서 7장 13절의 예언과 관계 있습니다.
마지막 날에 성부 하나님으로부터 온 세상에 대한
영원한 통치권을 부여 받는 존재가 ‘인자’입니다.
예수님은 당신의 영적 신분을 생각하시고 이 칭호를 사용하신 것입니다.
그 영원한 통치자가 지금 이 땅에서는 머리 둘 곳도 없이 유랑해야 합니다.
예수의 제자가 되는 것은 미래에 그분의 영원한 왕권에 참여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지금 이 땅에서는 그분의 고된 운명에 참여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또 제자 중 아버지의 부고를 듣고 장례를 치르고 주님을 따르겠다는 사람에게
“죽은 사람들의 장례는 죽은 사람들이 치르게 두어라”(22절)고 말씀하십니다.
앞의 “죽은 사람”은 육신적으로 죽은 사람을 가리키고,
뒤의 “죽은 사람”은 영적으로 죽은 사람을 가리킵니다.
이 대답을 통해 예수님은 무엇이 우선이며
무엇이 중요한지를 생각하도록 깨우치십니다.
자식의 도리를 무시하신 것이 아니라
일상적인 논리의 흐름을 뛰어 넘어
영원한 진리를 언급하곤 하신 말씀입니다.
23-34절은 기적을 행하시는 이 분이 누구인가에 초점을 맞춥니다.
예수님은 배를 타고 갈릴리 호수 건너편으로 가실때에
돌풍이 불어 예수님 일행이 탄 배가 뒤집힐 지경이 됩니다.
예수님은 주무시고 계셨습니다.
제자들이 예수님을 깨워 일으키자 그분은 마치 사람에게 하듯
바람과 바다를 꾸짖으셨습니다.
그러자 놀랍게도 바람과 바다가 즉시로 잔잔해집니다.
말씀과 기적을 통해 드러난 예수님의 권위가
자연 현상에까지 통하는 것을 보고 그들은 경이감에 사로잡혔습니다.
이어 이방땅 거라사 지방으로 가십니다.
예수님에게는 금단의 땅이 없습니다.
그곳에서 귀신들린 사람 둘을 만나셨습니다.
귀신들은 예수님을 보고는 그 정체를 알아보고 돼지떼에게 보내 달라고 청합니다.
살기위한 자기들만의 처방이었으나 귀신들이 돼지떼에게 옮겨 가자
돼지들이 발작을 일으켜 모두 호수에 빠져 죽습니다.
그 소식을 전해 들은 동네 사람들은 예수님에게 그 지방을 떠나 달라고 간청합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권위와 능력을 보았으면서도,
귀신 들린 사람이 치유 받은 것도,
비범한 권위를 가진 예수님이 오신 것도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에게는 당장의 이익이 더 중요했습니다.
“인자”이신 예수님의 권위를 생각해 봅니다.
그 권위는 말씀에서 드러났고,
질병 치유를 통해 드러났으며,
귀신들린 사람을 온전하게 하시는 것을 통해 드러났고,
풍랑을 잠잠하게 하시는 것을 통해 드러났으며,
영원한 하나님 나라를 위해 제자를 부르시는 행동을 통해 드러났습니다.
그분이 우리의 주님이십니다.
그분 앞에 내 삶을 드리고 그분의 다스림앞에
무릎 꿇고 경배를 드리는 것이 최고의 복입니다.
또한 그분의 말과 행동에서 드러나는 그분의 사랑을 봅니다.
인자이신 주님은 이 땅에서 고난의 종으로서 사셨습니다.
인류의 질병과 아픔과 고통은 마치 자석처럼 그분을 끌어 당겼습니다.
그분은 높은 곳이 아니라 낮은 곳으로,
잘 난 사람이 아니라 못 난 사람에게로,
건강한 사람이 아니라 아픈 사람에게로,
밝은 곳이 아니라 어두운 곳으로,
잔칫집이 아니라 초상집으로 가셨습니다.
사랑이 그분을 이렇게 이끌었습니다.
그것이 결국 그분을 십자가로 이끌었습니다.
그로 인해 구원이 우리에게 이르렀습니다.
이런 주님을 믿습니다.
그 주님이 우리를 그분의 길로 인도하십니다.
그 길은 십자가의 길이고 좁은 길이며 하나님을 신뢰하는 길입니다.
하나님의 동행하는 길입니다.
주님의 권위를 알아 보고 그 앞에 무릎 꿇는 사람은 복이 있습니다.
주님의 길을 따라 걷는 사람은 복이 있습니다.
주님의 다스림가운데 살아가는 자들이 누리는 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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