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기도회

간절한 기도, 은혜가 충만한 말씀, 주님의 말씀으로 늘 새롭게 변화되는 새생명교회입니다

마태복음 14장_시선고정

  • 느헤미야강
  • 2018-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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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께서 여러 이적을 행하시고 병든자들을 고치시는 이유는

예수님이 우리 몸을 만드셨기 때문입니다.

몸이 만드신 예수님앞에 순복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죽은 자를 살리신 것은

인간의 생명을 만드시고 주인되시기 때문임을 알려 주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행하신 자연을 변화시킥 다스리신 기적 역시

온 우주 만물의 창조주이심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세례요한의 죽음 이후 예수님께서 빈들에 나가십니다.

그곳에서도 예수님의 소식을 듣고 몰려온 사람들을

치유하시고 빈들에 있는 그들을 향하여

오병이어의 기적을 베푸신 것과

물위를 걸으신 예수님과 베드로 이야기로 되어 있습니다.

 

22절에 보면 예수께서 제자들을 재촉하사보내셨습니다.

요한복음 6;15절 이하를 보면 오병이어 이적으로 인해

군중들 사이에 예수님을 왕으로 삼고자 하는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먼저 배에 태워서

갈릴리 바다 건너편으로 보내시고 군중들을 흩으신 다음에

자신은 홀로 깊은 산 속에 들어가 기도하고 계셨습니다.

 

제자들이 갈릴리 바다를 건너가는 가운데

커다란 풍랑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밤새도록 기도하신 예수님이 찾아오셔서

나니 안심하라말씀하셨습니다.

그때 베드로가 말합니다.

주여 주님이시거든 나도 주님처럼 물 위로 걷게 해 주십시오

오라말씀하시니 베드로가 물 위를 걸어갑니다.

그러다가 풍랑을 보고는 물 속에 빠져듭니다.

주님께서 즉시 베드로의 손을 붙들고 배 위에 올라타시니

풍랑이 잔잔해집니다.

그래서 제자들이 주님께 절하며 주님을 향해

당신은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고백하는 이야기로 오늘 본문은 막을 내리고 있습니다.

 

본문의 배경은 오병이어의 기적이 사건입니다.

도시락 하나로 오천 명을 먹입니다.

사람들은 메시야가 왔다. 바로 여기 계신 예수님이 메시야다.

이 분을 왕으로 삼는다면 모든 적고 없음의 문제는 끝난다.

이분이야말로 참으로 경제대통령이로다.

이 분이 독립운동을 해 주신다면 로마가 문제가 아니다.

이제 우리는 세계를 지배하는 위대한 민족으로 발돋움할 수 있다.

군중들 사이에 커다란 동요가 일어나게 된 것입니다.

제자들은 이 동요에 휩싸일 수 밖에요.

떡을 먹는 군중들보다 떡을 나누어주는 제자들은

신이 나기 짝이 없었습니다.

이제 예수님이 왕이 되시면 갈릴리의 촌부들이

벼락출세를 하게 생긴 것입니다.

이것을 예수님께서 그냥 내버려 둘 수 없었던 것입니다.

 

군중들의 들뜬 마음도 가라앉히고 제자들의 꿈을 깨뜨릴 생각으로

지금 군중들은 흩으셨고 제자들은 배를 태워 갈릴리 바다에 보내셨습니다.

갈릴리 바다는 제자들에게 잔뼈가 굵어 진곳입니다.

이 바다를 건너는 것쯤이야 예수님이 아니 계셔도

너끈히 건널 수 있는 바다였습니다.

그런데 가다가 큰 풍랑을 만나게 된 것이지요.

이것을 성경은 고난이었다.

원문으로 바사노스(βασανος)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풍랑이 일어났을 때 제자들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예수님께서 임금이 되시면 상상만해도 좋을 미래를 상상했겠지요.

가슴 부풀어 배를 타고 건너편으로 건너고 있는데 풍랑을 만났습니다.

죽으면 이 모두가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문제는 하나밖에 없습니다. 죽느냐 사느냐의 문제입니다.

구원의 문제입니다. 생명의 문제만 남게된 것입니다.

 

제자들이 신음하고 있을 때에 죽게 생겼다고 아우성치고 있을 때에

예수님께서 깊은 산 속에 들어가 기도하다가 제자들의 상황을 아셨습니다.

기도 중이었셨으니 거기까지 갈 필요가 없었을 것입니다.

먼곳에서 풍랑을 잠잠케 하실 수 있으셨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급히 산에서 내려와 바다 위로 걸어오고 계셨습니다.

 

요한복음은 오병이어 사건을 만나사건에 비추어

우리의 하루를 책임지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다.

만나는 땅의 소산이 아니라 하늘에서 내리시는 것이라했습니다.

그 분이 삶과 죽음의 문제앞에서 먼저 찾아오시고

함께 하신 분이십을 보여줍니다.

주님이 삶과 생명의 주인이시다는 것을 말입니다.

 

초저녁에 제자들은 배를 저어 갈릴리 바다로 들어갔습니다.

지금이 밤 4경입니다. 새벽 3시부터 6시 정도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향해 물위를 걸어 오셨습니다.

온 우주를 창조하시고 다스리는 분,

자연질서를 초월해 계신 분이니 문제될게 없습니다.

어떻게, 왜 물 위로 걸어오셨을까요?

예수님께서 바람과 파도를 정복하신 것입니다.

일찍이 바람과 파도를 꾸짖으신 예수님,

지금 이 시간에는 바람을 타고 오십니다.

파도를 밟고 오시는 분이십니다.

 

물위를 걸어 오시는 주님을 본 베드로는

주여 만일 주시어든 나를 명하사 물 위로 오라 하소서!”

베드로는 자신의 재주나 능력으로

물 위를 걸으려고 했던 것이 아닙니다.

주님의 말씀을 붙들고 말씀에 의지하여

물 위로 걸어가게 되었습니다.

 

여기에 한 가지 문제가 생겼습니다.

말씀을 붙들고 믿음으로 시작한 일인데 실패가 있었습니다.

말씀을 붙들고 바다 위를 걸어가던 베드로가

물속에 빠져 들어갔습니다.

왜 베드로가 물속에 빠져 들어가게 되었을까요?

한마디로 예수를 보던 그 눈이

문제의 파도를 보는 순간 문제 속에 빠졌습니다.

이때 예수님은 31절에서

믿음이 작은 자여 왜 의심하였느냐?” 물으십니다.

 

우리에게 때로 믿음이 있다할지라도,

말씀 듣고 달려간다 할지라도, 물에 빠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들도 건강이 물에 빠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들도 사업이 물에 빠질 수 있습니다.

사랑이 물에 빠질 수 있습니다.

행복이 물에 빠질 수 있습니다.

그것은 주님이 아니라 바람과 파도를 본 까닭입니다.

그러니 믿음이 적은자라는 것은

왜 끝까지 주님을 신뢰하며 바라보지 못했느냐는 말씀입니다.

 

제가 본문에서 주목한 말씀이 있습니다.

한 단어가 세 번씩이나 반복적으로 등장하고 있습니다.

즉시” immediately 라는 말입니다. 22, 27, 31절입니다.

제자들이 오병이어 사건으로 흥분하여

예수님이 왕이 되시면 어떻게 될까 흥분할 때

즉시 배를 태워 보내셨습니다.

풍랑 가운데 소망이 없음을 인식했을 때

즉시 찾아 오셨습니다.

물 위로 걷던 베드로가 속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었을 때

즉시 손 잡아 일으켜 주셨습니다.

 

우리가 헛된 욕망에 빠져있을 때에,

두려움에 빠져 신음하고 있을 때에,

당신의 자녀들이 모진 고난에 빠져있을 때에,

멀리서 구경하시는 분이 아니라

즉시찾아와 건져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니 사람의 손을 붙잡지 마십시오.

명예나 권력도 마찬가지입니다.

실패의 고난앞에서,

아무도 나를 도와줄 수 없다고 여겨질때에,

내가 의지하고 믿고 따랐던 모든 끈들이

단절되어지고 끊어진 고통 가운데 있다고 여겨질때에

즉시 손 잡아주시는 주님을 찾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들이 기도한 다음이 아닙니다.

오늘밤 은혜 받은 다음이 아닙니다.

성경을 100번을 읽은 다음이 아닙니다.

여러분들이 고통 가운데 빠져서 손을 내미는 순간

즉시 주님께서는 여러분의 손을 붙들어 주실 것입니다.

 

오늘 본문 제자들이 풍랑 만나 허우적거리는 모습을 보면서

예수님께서 제자들이 풍랑 만날 것을 모르고

갈릴리 바다로 보내셨을까?

이 본문의 사건의 결론이 무엇입니까?

 

베드로 물에 빠진 실패를 통하여

예수가 누구인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물을 거닐어 보는 위대한 성공을 통하여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로소이다.

당신은 천지를 창조하신 분이십니다.

당신은 바람을 잔잔케 하신 분이십니다.

내 인생의 시련의 풍랑을 잔잔케 하시는 분이십니다.

온 우주의 주인이 되시는 분이십니다.

당신은 역사의 흥망성쇄를 움켜쥐신 분이십니다.

내 인생의 살고 죽는 문제,

생사화복을 주장하신 분이십니다.

진실로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로소이다!

 

사람이 물 속에 들어가면 빠지고 잠기는 것이

자연의 질서와 법칙이지요.

그래서 누군가 그 자연의 법칙을 초월하고

자연을 꾸짖을 수 있다면

그분은 그 자연 법칙을 만드신 하나님이라는 겁니다.

그래서 제자들은 33절에서 고백합니다.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로소이다

 

그리스도인은 풍랑속에서 예배하는 사람들입니다.

 

이제는 두려움의 배 안에서 두려워하지 않겠습니다.

문제에 빠져서 허우적거리지 않겠습니다.

환경을 머리에 걸머지고 낙담하지 않겠습니다.

두려움에 떨며 고통가운데 있지 않겠습니다.

주여 환경을 밟고 일어서게 하옵소서.

고난을 디디고 일어서게 하여 주시옵소서.

지금까지 내가 하지 못했던 이 엄청난 일들,

이 모든 일들 가운데 안되는 일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불가능이 가능케 하여 주시옵소서.

믿음으로 도전합니다.

당신의 손을 붙들고 도전하기를 원합니다.

이런 믿음의 고백이 저와 여러분 가운데 계시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