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기도회

간절한 기도, 은혜가 충만한 말씀, 주님의 말씀으로 늘 새롭게 변화되는 새생명교회입니다

마태28장_제자됨

  • 느헤미야강
  • 2018-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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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식후 첫날에 부활하신 예수님은 천사를 통해 두 여인에게

부활을 알리시고 친히 나타나 말씀하셨습니다.

갈릴리로 갈터이니 거기서 제자들과 만나자고 하셨습니다.

제사들과 갈릴리의 지시하신 산에서 만난 예수님은

먼저 당신에게 일어난 변화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나는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받았다”(18)

이 말씀은 다니엘이 환상 속에서 보았던

인자의 예언이 이루어졌다는 뜻입니다.

 

광야에서 예수님을 시험하던 사탄이

자신에게 절하면 주겠다고 했던 것은

이 세상과 그 모든 영광이었습니다.

예수님은 그 제안을 거절하시고 하나님의 뜻에 복종함으로써

이 세상만이 아니라 하늘의 권세까지 부여 받으셨습니다.

그분은 하늘과 땅의 전권을 영원히 위임 받으신 것입니다.

 

그 전제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명령하십니다.

그 명령의 핵심은 모든 민족으로 제자 삼으라”(19-20)는 것입니다.

단순히 믿는 것에서 만족하는 것이 아니라

하늘 나라의 사람으로 변화되는 것을 뜻하십니다.

제자로 삼는 방법으로서 예수님은 두 가지 즉

1) 전도(“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19)

2) 양육(“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그들에게 가르쳐 지키게 하여라”, 20)을 제시하십니다.

예수님이 진실로 하늘과 땅의 영원한 왕이시라면

그분을 주님으로 영접할 뿐 아니라(세례)

그분의 가르침을 배워 그분의 뜻대로 살아야 합니다(양육).

예수님에 대한 고백이 진실하다면

그 고백에 합당한 삶의 변화가 있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이렇게 말씀하시면서 예수님은 보아라, 내가 세상 끝 날까지 항상

너희와 함께 있을 것이다”(20)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분이 임마누엘이 되실 것이라는 예언이 이루어집니다.

부활하심으로 그분은 어느 때,

어느 곳에서나 모든 사람들과 함께 하십니다.

모든 민족으로 제자 삼는 과정에서 그것은 가장 큰 힘입니다.

우리가 제자의 삶을 살고 제자삼을 수 있는 힘은

함께 하시는 예수님 때문입니다.

 

부활은 예수께서 선포하신

하나님 나라가 존재한다는 결정적인 표징입니다.

부활의 그 변화의 실체가 무엇인지는 다 이해할 수 없으나

분명한 것은 죽음이 끝이 아니며

이 세상이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이

예수님의 부활로써 입증되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영원이 1차원 시간 안에 뚫고 들어온 사건이며,

하나님 나라가 땅의 나라에 잠시 침투한 사건입니다.

부활로써 우리는 영원에 눈 뜨고 하늘 나라에 눈 뜹니다.

그리고 그 영원한 나라를 위해 우리는 인생의 방향을 수정합니다.

예수님을 제대로 믿는다면 그분이 절대가 됩니다.

그렇기에 그분의 제자로 자라기를 힘쓰고

그분의 제자를 만드는 일에 노력합니다.

그것이 우리 인생을 가장 값지게 사는 길이고,

다른 이를 돕는 최선의 길이며,

이 세상을 변화시키는 첩경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기준에서 볼 때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은

예수님의 제자가 되는 것이

마치 어떤 '훈련'을 이수해야 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물론 제자에게 훈련은 필요합니다.

마땅히 성경구절 외우고, 교리를 이해하고,

신앙도서를 읽기도 하고, 큐티 훈련을 하기도 해야 합니다.

이런 과정 필요하고 중요합니다.

하지만, '제자훈련'을 통해서 기대하는 것은

그런 방법들에 익숙해지는 사람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제자로서 사람이 변화되는 것에 초점이 있어야 합니다.

큐티 잘하고, 기도 잘하고, 봉사 잘하고, 사역 잘하면,

제자훈련 잘 받은 것으로 생각하게 만드는 것과는 다르다는 것입니다.

 

제자가 된다는 것의 본질이 무엇입니까?

예수님을 모시고 사는 인격적인 관계의 형성입니다.

예수님의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과 동행하는 것입니다.

그 열매로 예수님의 모습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성품과 마음과 뜻이 제자의 삶을 통하여 나타나는 것입니다.

 

바리새인들이 처음부터 잘못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처음에는 잘 출발했을 것입니다.

다 잘해 보려고 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을 바탕으로 구체적인 실천 강령들을 만들어

지키려고 했을 때는 모든 사람들이 훌륭하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본질이 왜곡된 것입니다.

본질은 없어진채 방법들만,

자신들이 만든 실천 강령들만 강조된 것입니다.

사람의 계명과 전통이 더 우선시 되는 지경이 이른 것입니다.

 

우리교회 역시 몇 가지 양육과정을

중요한 훈련과정으로 삼고 있으면서도

조심스러운 것이 이런것입니다.

어떤 프로그램이나 방법들이 양육과정의 최고이거나

어떤 특권층을 만드는 것이 결코 아니라는 점입니다.

그렇다면 바리새인들이 왜곡된 과정과 똑같습니다.

 

예수님의 사람을 만드는 것이지

다만 제자훈련을 이수한 사람을 만드는 것이 목적이 아닙니다.

제자훈련은 해야 합니다.

그리고 제자의 본질로 돌아가야 합니다.

제자는 예수님을 만난 자입니다.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고 영접하여 모시고 사는 자입니다.

예수님을 구주와 주님으로 모시고 사는 자입니다.

예수님 중심으로 사는 자입니다.

자기 중심이 아니라 주님 중심으로 사는 자입니다.

주님 앞에서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며 사는 자입니다.

항상 함께 계시는 주님을 의식하고 사는 자입니다.

그 주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해서 사는 자입니다.

 

뿐만아니라

다른 사람도 예수님을 모시고 사는 그런 사람이 되도록 하는 것입니다.

삶으로 해야 하는 것입니다. 평생 해야 하는 것입니다.

내가 먼저 주님을 모시고 사는 삶을 살면서 다른 사람도

그런 삶을 살도록 보여주고 안내하는 것입니다.

 

그런의미에서 우리는 끊임없이 질문해야 합니다.

나는 예수님의 제자입니까?

다른 제자를 낳는 건강한 제자입니까?

 

첫 증인이었던 두 여인은 무서움과 큰 기쁨의 감정이 교차하는

이루 말할 수 없는 은혜를 부활의 아침에 경험하였습니다.

오늘날 우리 가슴 속에 십자가에 죽으신 그리스도의 모습이

분명하면 할수록 이 여인들이 느꼈던 그런 놀라운 감격이

찾아오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주님을 만난 사람은 하나님을 두려워함과 기쁨이 공존합니다.

부활의 기쁨이 기쁨이 될 수 없다면 그것은

십자가가 아직도 십자가가 되지 못한 까닭이 아니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우리의 눈을 열어주사 십자가가 십자가 되게 하시고

부활이 말할 수 없는 기쁨의 영광이 됨을 알게 하시기를 구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