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기도회
간절한 기도, 은혜가 충만한 말씀, 주님의 말씀으로 늘 새롭게 변화되는 새생명교회입니다
마가10장_보기를 원하나이다
- 느헤미야강
- 2018-10-24
- 574 회
- 0 건
오늘 우리가 읽은 마가복음 10장 끝자락에 소경 이야기가 기록되고 있습니다(56-52).
우리는 본문을 통해서 바디매오를 만나게 되는데
이 본문을 통해서 또 하나의 소경을 만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 소경은 여러분 자신일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옛날 이사야 선지자를 보내시면서 이런 말씀을 하십니다.
나는 너를‘보기는 보아도 보지 못하는 백성들에게 너를 보내노라.
미래가 보이지 않는 사람들,
죽음 저 건너편의 세계가 보이지 않는 사람들,
교회에 출석하면서도 하나님이 보이지 않고
예수가 보이지 않는 사람들이 그들입니다.
소경은 예수님 만났을 때 그 앞에 엎드려서
이런 절절한 고백을 쏟아냈습니다.
‘제가 보기를 원하나이다.’
볼 수 없었던 사람이 보게 된다는 것은 치유입니다.
이 치유의 조건은 무엇이었습니까?
첫째로 자신의 처지를 인식할 필요를 가르칩니다.
바디매오는 소경이요 생활능력이 없으니
거지가 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이런 처지에서 그는 한 가지 알았습니다.
자기가 비참한 처지에 있다는 사실만은 알았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앞에 나와 엎드리면서 이렇게 요청합니다.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사람들이 예수님앞에 나오지 못하고 있는 이유는
자기의 비참함을 인식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예수가 구원의 주님이라는 사실은 복음입니다.
이 메시지가 복음으로 내게 다가오지 못하는 이유는
자기가 구원이 필요한 죄인이라는 것을 깨닫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내가 구원이 필요하다. 구세주가 필요하다.
나는 죄인이다 라는 사실을 깨닫는 사람은 예수님 앞에 나오게 됩니다.
바디매오는 자신의 비참한 처지를 인식했고,
이것이 눈을 뜨는 첫 번째 과정이었습니다.
둘째로는 예수님이 메시야, 치유자라는 사실을 믿어야 합니다.
47절, “나사렛 예수시란 말을 듣고 소리질러 이르되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거늘"
바디매오는 사람들을 통해서 예수 소식을 듣고는
그 나사렛 예수대신 다윗의 자손 예수여 라고 불렀습니다.
나사렛은 경멸과 편견이 섞인 지역에 대한 호칭입니다.
그는 대신 다윗의 자손 예수여! 이렇게 불렀습니다.
이것은 그가 예수를 메시야로 믿었다는 증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사야 35장 5절에 ‘메시야가 오시고 그가 통치하시게 되면
그 때에 소경의 눈이 밝을 것이며 귀머거리의 귀가 열릴 것이다’
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그는 소식을 들었을 것입니다.
나사렛 예수가 사람들의 눈을 띄웠다. 귀를 열었다.
예수를 만난 사람마다 인생이 바뀌였다.
운명이 변하고 그의 가치 관이 새로워지고 세계관이 달라지고 인생이 달라졌다.
사람들이 변하고 있다. 사람을 바꾸고 있는 예수, 그분은 메시야일지 모른다.
메시야에 대한 믿음이 그의 마음속에 있었던 것입니다.
마태복음 11장에도 세례요한이 감옥에 갇혀서 예수님에게 사람을 보내어
'오실 그 분이 당신입니까?'라고 물었을 때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나를 통해서 소경이 보고 귀머거리가 듣게 되는 것이 증거다 라고 하셨습니다.
바디매오는 이 믿음이 있었던 것입니다.
본문 52절에도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하시니-"
그의 눈이 열리는 기적을 체험시키면서 예수님이 선언하신 것입니다.
‘네 믿음이 너를 구원했느니라.’
예수를 메시야로 하나님이 기름부어 주셔서 보내주신 분,
나를 고치고 내 육체도 고치고 내 마음도 고치고
내 영혼을 변화시켜 주시는 분,
내 삶의 통치자 그리고 내 삶을 바꿀 수 있는 나의 희망이요,
구원이신 예수, 예수는 메시야다!
이것을 믿었습니다.
셋째로는 장애물을 극복할 수 있는 인내심을 가지셔야 합니다.
진리를 찾고 있는 사람들, 또 믿는 자들,
믿고 있는 사람들이 기도의 응답을 받을 때도
때로는 기도의 장애물이 있을 수가 있습니다.
그 장애물을 극복하려면 포기하지 않는 인내심이 필요합니다.
바디매오는 단 한번의 부르짖음으로써 그 기도가 응답된 것이 아닙니다.
예수를 만나자마자 바로 눈을 뜬 것이 아닙니다.
지금으로 말하면 기도했습니다.
아직 그의 육체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어둠입니다.
여기에 장애요인이 발생합니다.
48절, 수많은 무리들이 장애요인입니다.
그들이 꾸짖어 잠잠하라고 합니다.
그럼에도 그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주님앞에 나오고 있다면 포기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48절에 그가 확실한 믿음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
믿음의 징후를 설명해주는 두 단어가 발견됩니다.
"더욱 크게". 오히려 더욱 크게 소리를 질러서 이렇게 말합니다.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그때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합니다.
예수님께서 머물러 서서 그를 부르라 하셨습니다.
노력봤는데 안됩니다. 기도했는데 응답이 되지 않습니다.
성경은 한 한번의 기도에 응답된다는 약속을 하신 일이 없습니다.
구하라 그러면 주실 것이라. 한 번만 구하라는 뜻이 아닙니다.
계속해서 구하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동전만 넣으면 나오는 자판기가 아닙니다.
분명한 것은 우리의 믿음의 진지성을 테스트 하는
의도가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단 한번의 기도에 내 상황이 달라지지 않아도,
내 환경이 달라지지 않아도 나는 믿어.
주님은 마침내 내 기도를 응답하실거야!
이런 사람의 기도는 응답을 받게 되는 줄 믿습니다.
마침내 장애물은 극복될 것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바디매오는 마침내 주의 목소리가 들려오자
그는 겉옷을 버리고 달려갑니다.
바디매오를 향해 예수님이 반응하십니다.
"예수께서 머물러 서서 저를 부르라 하시니
저희가 그 소경을 부르며 이르되 안심하고 일어나라
너를 부르신다 하매"(49절)
예수님이 부르짖음을 듣고 머물러 서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가시면
그곳엔 십자가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주님의 머릿속엔 십자가로 꼭 차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고통의 걸음 걸음 속에서도 들려오는,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이 부르짖음을 듣고 가던 걸음을 멈추셨습니다.
주님은 그의 신음소리를 듣고 계셨습니다.
주님은 우리의 신음소리를 외면한 적이 없으십니다.
지금도 우리의 소리를 듣고 계십니다.
하나님 우편에 계시다고 말씀하신 주님은
이 땅에서 삶을 살면서 허우적 거리며
우리가 부르짖음의 소리를 토할 때 저 하늘에서도 듣고 계십니다.
이 땅의 골짜기, 땅의 걸음을 옮겨가면서 괴로워하고 아파하는
내 작은 신음소리에도 멈추지 않고 그 소리를 들으십니다.
예수님은 멈추어 서셨고, 부르셨고 무엇을 원하는가를 물으셨습니다.
그에게 필요한 것 구하고 싶은 것은 많이 있었을 것입니다.
집도, 돈도 구할 수 있었습니다. 그
러나 이 절실한 타이밍에 그는
자기 인생의 가장 절실한 근본적인 것을 구합니다.
"보기를 원하나이다."
예수님이 말씀하십니다.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성경은 저가 곧 보게 되어 예수를 길에서 따르니라고 말씀합니다.
오늘 우리에게 가장 절실한 것은 무엇입니까?
집, 일터, 돈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보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보면 모든 것이 해결됩니다.
오늘 여러분은 어떠십니까?
오늘 이렇게 기도할 사람들이 우리 가운데 있지 않을까요?
'주여 내가 보기를 원하나이다.'
오늘 주께서 여러분의 눈을 열어주시길 바랍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새로운 인생을 보시기 바랍니다.
주께서 여러분을 위해서 예비하신 놀라운 세상을
열어 주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이전글 마가11장_그분의 필요를 채워드리는 삶 18.10.25
- 다음글 마가9장_불가능을 넘어서는 3대조건 18.10.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