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기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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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11장_그분의 필요를 채워드리는 삶

  • john
  • 2018-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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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던 주간의 처음 삼일 동안의 기록을 담고 있는 오늘 본문은

예루살렘으로 입성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첫 날 새끼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셨던 예수님은 수많은 인파로부터 환영을 받으시고,

성전을 둘러보신 후에 베다니로 나가셨다.

그리고 이튿날 다시 예루살렘으로 들어오시며 열매 없는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셨고, 성전을 정화하셨다.

그 다음 날에도 예루살렘에 가신 예수님은 당신의 권위에 대해 묻는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에게

역으로 질문하시며 그들로 하여금 더 이상 예수님께 대하여 도전할 수 없게 하셨다.

 

오늘은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의 모습을 통해 그 가운데 은혜를 나누고 싶다.

처음, 예루살렘의 주민들은 나귀를 타고 입성하시는 예수님을 보며 크게 환호했다.

그러나 이들의 환호는 며칠이 지나지 않아 저주와 야유로 바뀌게 된다.

자신들의 옷을 벗어서 깔고, 나뭇가지를 꺾어서 흔들고, 호산나를 목 놓아 외치는 그들의 모습을 상상해보면

예수님을 환영하는 그들의 마음이 얼마나 간절했고, 기대감에 차 있었을지 짐작이 간다.

그런데 그들의 이러한 외침은 사실 철저히 자신들의 필요와 욕망을 채우고자하는 외침이었다.

호산나! 우리를 구원하소서! 이제 구원하소서!”라는 그들의 이 외침은

우리를 죄와 사망의 권세로부터 구원하시기 위해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의 뜻과는 달리,

단지 자신들을 억압하는 세상의 정치세력, 자신들을 힘들게 하는 현실과 상황에서 벗어나게 해달라는 외침이었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삼년 간 행하셨던 수많은 기적들을 보며

이제 그분이 왕이 되시면 먹고 살기 편해지겠다, 아픈데 없이 죽지 않고 살겠다.’ 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물론 사람이라면 누구나 바라고 기대하는 일일 것이다.

하지만 우리를 가장 속박하는 것은 상황과 조건이 아닌, 죄의 문제, 영적인 문제이다.

이것이 중요한 사실이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임이었음에도 이를 깨닫지 못했다.

그들은 그저 이방인들과 같이 눈에 보이는 세속적인 욕망만을 구하며 따랐던 것이다.

그러니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서 보이신 언행은 그들의 기대를 충족시킬 수 없었고,

예수님을 향해 호산나를 외치던 무리는 불과 며칠 만에 십자가에 못 박으라!’ 외치기 시작했다.

그들이 기대했던 메시아의 모습이 아니라는 것이다.


우리에게도 저마다의 기대와 소망이 있다.

그런데 어쩌면 우리도 예수님 당시의 군중과 같이 우리의 기대와 소망 가운데서만 예수님을 찬양하고 있지는 않는지 모르겠다.

우리의 바람대로 되지 않으면 절망과 원망을 일삼으며 심지어는 예수님을 떠나기도 하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시기 위해 오셨다는 것이다.

기독교 신앙은 단지 우리의 필요를 채우는 도구가 아니다.

우리의 가장 크고 근원적인 문제를 해결 받고 그 은혜에 감사하며 하나님나라의 필요를 채워 드리는 것이다.

우리의 삶 속에 많은 기대와 바람이 있지만, 하나님께 속한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그 모든 것을 당신의 뜻대로 가장 선하게 채워 가신다.

이러한 믿음을 가지고 예수님 때의 군중과 같이 그저 우리의 필요를 따라 예수님을 높이고 따르는 것이 아니라,

그분께서 행하신 가장 크고 놀라운 일을 기억하며 그분의 필요를 채워 드리는 삶이 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