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기도회
간절한 기도, 은혜가 충만한 말씀, 주님의 말씀으로 늘 새롭게 변화되는 새생명교회입니다
눅20장_ 나는 누구에게 반응하는가
- 느헤미야강
- 2018-12-01
- 535 회
- 0 건
1.
주님은 마지막 주간에 매일 성전에 말씀을 가르치셨는데,
이것은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 장로들의 주목을 받았습니다(19:47; 20:1).
이들은 직접 주님께 와서 무슨 권위로 이렇게 가르치는지 물었습니다(1~2).
주님은 이들의 의도를 아시고 오히려 역으로 질문을 하셨습니다.
세례 요한이 하나나님이 보내신 선지자인지 그냥 사람인지 물으셨습니다.
그들은 백성이 요한을 선지자로 인정하니 아니라하면 백성들에게
해꼬지를 당할까 두려워서 대답할 수 없었습니다.
그들의 약점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았기에 백성을 두려워했습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으면 사람을 두려워하게 됩니다.
2.
이어서 주님은 그들에게 악한 농부 비유를 말씀하셨습니다(9~19).
포도원의 소작을 맡기고 떠난 한 사람이 세를 받으러 종을 보내지만,
번번이 세 번이나 소작농들은 종을 때려서 내쫓았습니다.
주인은 아들을 보내면 말을 듣겠지 하고 아들을 보내지만,
소작농들은 도리어 아들을 죽이면 포도원이 자기들의 것이 될 줄 알고
아들을 포도원 밖에 내쫓아 죽였습니다.
결국 주인은 그 농부들을 진멸하고 포도원을 다른 사람에게 주었습니다.
이 비유는 주님께서 버림을 받으시지만,
교회의 머리가 되실 것이다는 말씀이었습니다(17).
문제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주님의 이 비유가
자기들을 표적 삼아 하신 말씀임을 알아들었습니다(19).
그리고 그들은 회개로 반응하는 대신
예수님을 잡아 죽이려는 마음과 태도로 반응했습니다.
3.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의 포도원 농부들과 주인,
주인이 파송한 종들에 관한 비유가 자신들에 관한 비유임을 알고
예수님을 잡고자 기회를 엿보았습니다.
그럼에도 예수님을 잡지 못한 것은 사람들을 두려워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 또 이들은 예수님을 말의 올무에 씌워 잡을 기회를 노렸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추종자인 것처럼 가장하여
예수님을 쫓아다니면서 책잡을 구실을 잡거나,
질문을 해서 곤경에 빠뜨려서 사람들에게 비난거리를 제공하고,
그로 인해 예수님을 체포하려는 것이었습니다.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하나님을 온전히 섬긴다고 하였으나,
문제를 하나님 앞에서 해결하려는 의지가 처음부터 없었습니다.
오직 그들이 지니고 있었던 종교적, 사회적,
정치적 힘에 의지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에게 반응하였습니다.
그들은 결코 하나님과 그 말씀에 반응하지 않았습니다.
4.
반면 예수님은 어떤 순간에도 흔들리지 않으셨습니다.
주님은 늘 사람들에게 반응하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늘 아버지의 뜻과 마음에 의지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늘의 지혜로 문제를 넘어설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의 어떠함에 따라 반응할 이유가 없었습니다.
단 주님께서 사람들에게 반응하실 때는 말 그대로
목자로서 긍휼과 사랑의 마음으로 하늘의 구원을 전하시기 위함이었고,
아버지의 공의를 선포하시기 위함이었을 때뿐이었습니다.
이 또한 사람들에게 반응하셨다기보다는
여전히 하늘 아버지의 마음을 따랐으니
하나님께 반응하셨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어느 순간에든지
감정적 변화가 요동칠 이유가 없었습니다.
단지 주님께서 감정의 변화가 있었을 때는
늘 아버지 하나님의 마음으로 안타까움을 나타내시거나,
사랑과 긍휼을 베풀어야 할 때이거나,
공의를 선포하셔야 했을 때뿐이었습니다.
주님은 늘 아버지 하나님께 반응하셨습니다.
그러기에 주님은 늘 하늘의 평강을 유지하실 수 있었습니다.
5.
이제껏 내 자신과 주위의 믿음의 길을 가만히 돌아보면
자신에게 반응해주기를 원하거나 사람들을 의식하며 반응하는 자들이
하나님께 반응하는 예수님과 백성들 앞에서
결코 그들의 목적을 이룰 수 없다는 점입니다.
오직 하나님 아버지께만 반응하는 사람들이
하늘의 지혜와 권세를 통해 승리할 수 있었습니다.
그때마다 깨닫는 것은, 예수님을 믿는 모든 신자들은
그 온전한 믿음의 기초 위에서
모든 문제들을 하나님께로만 가져가야 합니다.
사람에게 가져가서는 안된다는 것을 본문은 보여줍니다.
오늘 말씀은 그런의미에서 우리 자신에 대해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줍니다.
우리는 과연 어떻습니까?
정말 주님만 바라보고 나아간다고 하면서도 때로
사람들에게 더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는 우리 자신을 발견합니다.
하나님께서 어떻게 생각하실까에 더 민감한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작은 반응에 내가 더 민감하게 반응할때가 있습니다.
그럴때마다 우리는 다시 주님께 나아가기 위해 몸부림 쳐야 합니다.
여전히 모든 문제를 주님께로 가져가기 보다는,
주님 안에서 참 평강을 누리기 보다는
사람들의 반응으로 지나치게 몰입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오직 말씀앞에서만 반응하시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 이전글 눅21장-오늘이 마지막인것처럼 18.12.04
- 다음글 눅19장_구원받은 자의 모습 18.11.3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