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기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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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전6장_헬라파,히브리파
- 느헤미야강
- 2019-0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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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6장 1절~7절을 중심으로 살펴봅니다.
사도행전 6장은 초대교회가 최초로 일곱 집사를 세운 동기와 과정을 전해줍니다.
이 본문은 집사를 세웠다는 제도적인 의미보다 더 큰 의미가 있습니다.
1절, “그때에 제자가 더 많아졌는데”.
‘그때에’라는 말은 유대교 지도자들이 사도들을 채찍질하며
다시는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지 말라고 협박하였음에도
가르치기와 전도하기를 그치지 않았을때를 말합니다.
그 결과 주님을 믿는 그리스도인들이 많아졌습니다.
그 상황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헬라파 유대인들이 자기의 과부들이 매일의 구제에 빠지므로
히브리파 사람을 원망하니”(1절 하반절)
헬라파 유대인은 남북이스라엘이 멸망할때에 포로로 끌려가거나
세계 각처로 흩어진 디아스포라 라 불리는 헬라어를 쓰는 유대인들입니다.
이들중에 여러 가지 이유로 이스라엘에 돌아와 사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반면 멸망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을 떠나지 않고 자리를 지킨
히브리어, 아람어를 쓰는 사람들을 히브리 유대인들이라 했습니다.
그런데 헬라파 유대인 사이에 히브리파 유대인에 대한 원망이 생겼습니다.
누군가의 도움으로 살 수 밖에 없는 헬라파 유대인 과부들이
구제에서 제외되었기 때문입니다.
2-4절은 열 두 사도가 말하기를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제쳐 놓고
접대를 일삼는 것이 마땅하지 아니하니 라는 말을 볼 때.
구제와 봉사를 책임졌던 사람들이 사도였음을 보여줍니다.
당시 교회에 많은 사람들이 들어오자 사도들은
구제와 봉사를 위해 시간 대부분을 할애했습니다.
당시 헌금도 많았고 구제도 많았습니다.
그때에 사도들은 히브리파 유대인만 구제 대상으로 삼고
헬라파 유대인을 구제의 대상에서 놓쳤던 것입니다.
지도자들이 그랬으니 다른 히브리파 유대인들이야 말할 것도 없었습니다.
그 와중에 헬라파 유대인들이 이의를 제기하자 사도들은
자신들의 행위가 옳지 못함을 깨달았습니다.
자신들은 기도와 복음증거에만 전념하기로 하고
일곱 명의 집사를 따로 세우기로 하였습니다.
그리고 일곱 명을 자신들이 임명하는 대신 가이드를 제시하고
교인들이 직접 선출하게 했습니다.
5-6절에 스데반, 빌립을 비롯하여 일곱명이 뽑혔습니다.
주목할 것은 일곱명 모두 헬라식 이름이라는 것입니다.
곧 모두 일곱 명의 집사들이 헬라파 유대인으로 세워졌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히브리파 유대인들이 헬라파 유대인들에게
표를 몰아주었다는 뜻입니다.
히브리파 유대인들은 나라가 멸망한 뒤
오랫동안 이스라엘 땅을 지켜왔고,
그 속에서 온갖 수모와 고통을 감당한 사람들입니다.
반면에 해외파 유대인들은 이유야 어떻든 간 어려울 때
나라를 등진 사람들입니다.
그런데도 다수파가 소수인 해외파들에게 표를 몰아주었습니다.
인간의 집단 속성상 불가능한 일이 초대교회에서 일어났습니다.
그후 사도행전에는 헬라파 유대인들의 눈부신 활약이 드러납니다.
7절, “하나님의 말씀이 점점 왕성하여 예루살렘에 있는 제자의 수가
더 심히 많아지고 허다한 제사장의 무리도 이 도에 복종하니라”
헬라파 유대인 집사들이 활동을 하자 제자 수가 심히 많아지고,
제사장들이 집단적으로 주님을 영접하였습니다.
사도행전 7장에는 스데반 집사의 설교가 소개되는데
하나님께서는 예루살렘 성전에 갇혀 계시는 분이 아니라
이 세상 어디에나 계시는 무소부재하신 분이라 전했습니다.
그가 해외에서 살던 헬라파 유대인이기에 가능한 설교였습니다.
사도행전 8장에서는 사마리아인에게 전도한
헬라파 유대인 빌립집사의 모습이 나타납니다.
정통 유대인들은 짐승취급까지 하는 사마리아에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사도행전 9장에서는 헬라파 유대인의 거두 사도바울의 회심과 활약이 시작됩니다.
그리고 사도행전 13장에서부터 헬라파 유대인들의 독무대가 됩니다.
초대교회의 중심축이 히브리파에서 헬라파 유대인으로 옮겨가게 되었습니다.
이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히브리파 유대인들은 전통적으로 이스라엘 땅에서
히브리어를 모국어로 삼고 살아온 사람들이고,
자신들과 다른 사람을 받아들이는데 인색했습니다.
반면에 이방 땅에서 살아온 헬라파 유대인들은
자신들과 다른 사람을 받아들이고
함께 어울려 사는 것이 전혀 힘들지 않은 사람들입니다.
이방 땅에서 태어나 이방인 틈에 섞여 살면서
이방언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던 사람들이었기에
어울려 사는 것이 그들 삶 자체였습니다.
그런 헬라파 유대인들이 아니었다면
우리에게 전해진 사도행전이 완결될 수 없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역사가 놀랍습니다.
그러나 절대로 간과해서는 안될것이
헬라파 유대인들의 존재가 중요할수록,
그들을 있게끔 한 히브리파 유대인들 역시 중요한 존재라는 것입니다.
일곱 명의 집사를 선출할 때 다수를 점하고 있던 그들이
소수인 헬라파를 믿어주고 표를 몰아주지 않았다면
오늘날 우리에게 전해진 사도행전은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그들은 자신들과 다른 헬라파라는 이유만으로
구제와 봉사의 대상에서 제쳐 놓은 자신들의 편협성을 깨달은 즉시,
대인관계에 관한 한 자신들보다 훨씬 그릇이 큰
헬라파 유대인들을 전폭적으로 밀어주었고,
그 결과로 사도행전이 완성될 수 있었습니다.
이것이 초대교회의 위대성입니다.
이것은 철저한 자기 부인의 토대 위에서
자신보다 하나님을 먼저 생각할 때에난 가능한 일입니다.
축구로 비유하면 헬라파 유대인들은 스트라이커라면,
히브리파 유대인들은 어시스터들입니다.
본문이 주는 감동은 수적으로나 기득권에서나
히브리파 유대인들이 얼마든지
자신들이 스트라이커가 되겠다고 할 수 있었지만,
그들은 자신들보다 나은 헬라파 유대인들을 위한
어시스터가 되기로 했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주님을 위한 길이요,
주님께서 원하는 일이라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들 모두는 위대한 그리스도인들이었고,
그로 인해 사도행전이 완성된 것은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 각자가 헬라파 유대인이 될 때와
히브리파 유대인이 되어야 할 때를
그리스도 안에서 바르게 구별하는 것이
믿음이요 참 그리스도인임을 깨닫습니다.
결국 관계에서 일어나는 모든 문제는
헬라파 유대인이 되어야 할 때와
히브리파 유대인이 되어야 할때를 구별하지 못하는데 있습니다.
가정의 행복은 가정에서 남편과 아내가, 부모와 자녀,
형제와 형제, 각자 자신이 스트라이커가 될 때와
어시스터가 될 때를 구별하는데 있습니다.
참된 교회는 그 교회를 구성하고 있는 성도들이
헬라파 유대인이 될 때와
히브리파 유대인이 될 때를 구별하는 교회입니다.
그 구별이 바르게 이루어질 때 가정, 국가,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안에서 늘 새로워 질 수 있습니다.
이것이야 말로 우리안에서 일어날 가장 중요한 개혁입니다.
주님께서 헬라파 유대인이 되라 하실때에
진리의 골을 떠트리기 위해
영적 스크라이커로서의 신명을 바치십시오.
주님께서 히브리파 유대인이 되라 하시면
우리가 도와야 할 누군가를 위해
우리의 총력을 집중하는 어시스터가 되어주십시오.
그때 헬라파 유대인과 히브리파 유대인을 통해
사도행전을 완성시킨 주님께서 우리를 통해
이 시대의 사도행전을 완성하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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