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기도회

간절한 기도, 은혜가 충만한 말씀, 주님의 말씀으로 늘 새롭게 변화되는 새생명교회입니다

행전7장_광야교회

  • 느헤미야강
  • 2019-0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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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7:35-38절중심으로 말씀을 나눔니다.

 

2천년전 인간의 모습으로 이 땅에 오셨던 예수님께서는 광야에서

사탄의 유혹을 물리치시는 것으로 공생애를 시작하셨습니다.

돌을 떡 덩이가 되게 하라.’ 

성전에서 뛰어내리면 천사가 받쳐줄 것이다.’

높은산에서 자신에게 경배하면 모든 나라의 영광과 권세를 주겠노라.’

세 번에 걸친 사단의 유혹과 예수님의 대응에서 중요한 사실을 발견합니다.

사단은 눈에 보이는 것으로 유혹한 데 반해 예수님께서는

눈에 보이지 않는 것으로 사단의 유혹을 제압하셨다는 것입니다.

사람은 오직 말씀으로 살 것이다.’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

너희 하나님을 경배하고 다만 섬기라고 응대하셨습니다.

예수님의 관심사는 오직 눈에 보이지 않는 영이신 하나님이었습니다.

 

예수님과 사탄의 이 차이가 명백하게 드러난 곳이 유대광야였습니다.

광야의 특징은 아무것도 보이는 것이 없다는 점입니다.

하늘을 제외하고는 물 한방울, 풀 한포기 아무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볼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사탄은 확실하게 눈에 보이는 것들만 추구했고

예수님은 동일한 광야에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기에

도리어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보며 하나님만 추구하셨습니다.

 

사도행전 717절 이하는 스데반집사의 설교중 모세이야기입니다.

모세는 40세가 되기까지 이집트 왕궁에서 왕자의 신분으로 살았습니다.

왕궁이란 없는 것이 없는 곳입니다.

그러나, 보지 못할 것이 없는 왕궁에서 모세는 하나님을 보지 못했습니다

너무나 볼 것이 많았기에 하나님을 향한 시선을 가질

여유도 필요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집트 왕궁을 떠나 미디안 광야로 피신한 모세는

그곳에서 엘리에셀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모세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그 미디안 시내산에서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보고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본문 38절은 이렇게 증거하고 있습니다.

시내 산에서 말하던 그 천사와 우리 조상들과 함께 광야 교회에 있었고

또 살아 있는 말씀을 받아 우리에게 주던 자가 이 사람이라


모세는 미디안 광야에서만이 아니라 출애굽 이후 40년 동안

시내반도의 모압광야에서 하나님께 말씀을 받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전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 말씀이 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입니다.

모세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광야에서 40년 동안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보고 하나님 말씀을 들었습니다.

반면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보이는 금송아지를 만들고 하나님이라 경배하는

어처구니 없는 일을 자행했습니다.

모세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똑 같은 광야에 있었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광야에서 지향하는 것은

극에서 극으로 갈라졌습니다.

 

38절에 광야 교회가 나옵니다.

원문은 광야에 있는 교회라는 말립니다.

교회는 건물이나 조직, 제도가 아니라

하나님의 부르심을 입은 사람들입니다.

38절의 광야 교회는 하나님의 부르심으로 출애굽하여

광야 생활을 하던 이스라엘 백성을 칭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광야교회란 단순히 교회의 위치가

광야라는 의미 그 이상의 뜻을 지니고 있습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광야에 있기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보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진정한 교인, 진정한 교회가 될 수 있다는 뜻입니다.

이 말은 교회가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광야에 있음으로 인해

도리어 눈에 보이는 것만 추구하느라 전혀 교인답지 못한 교인,

교회답지 못한 교회가 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에 의해 입증되었습니다.

모세나 이스라엘 백성들도 모두 광야 교회로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이었기 때문입니다.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이 40년 동안 시내광야와 모압광야를 거쳤습니다.

똑같은 광야 위에서 모세는 날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보고

하나님의 말씀을 들은 반면,

이스라엘 백성은 매일 눈에 보이는 것만을 추구하였습니다.

이것은 1400여년 시차를 두고 모두 광야에서 일어난 일이었습니다.

 

본문이 주는 깨달음이 있습니다.

보이는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는 광야에서 언제나

두 줄기의 흐름이 존재한다는 사실입니다.

보이는 것이 아무것도 없기에

오히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보는 흐름과,

반대로 보이는 것이 없음으로 더더욱 확실하게

보이는 것에만 집착하는 것이 또 다른 흐름입니다.


그렇다면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광야는 무엇입니까?

우리 인생이 광야입니다.

인생이란 한치앞도 내다보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오늘낮, 1분 후에 우리에게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아무도 볼 수 없습니다.

분명 우리 자신의 몸임에도 불구하고

우리 몸속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조차도 볼 수 없습니다.

 

인생은 광야입니다.

모든 그리스도인의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광야 인생을 사는 그리스도인들의 모임인

이 땅의 교회 역시 모두 광야 교회입니다.

모든 인생이 광야 인생이요,

모든 교회가 광야교회이기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는 사람의 모임인

교회 속에도 상반된 두 흐름이 있을 수 밖에 없습니다.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인생광야에서 보이지 않는

영원하신 하나님을 바라보며

하나님과 동행하는 참 믿음의 흐름이 있고,

매 순간 하나님의 이름으로 눈에 보이는 것만 추구하는

우상숭배의 흐름이 있습니다.

이 두 흐름 중에서 무엇이 참되고 영원한 흐름인지

1400년의 시차를 두고 모세와 예수님에 의해 증명되었습니다.

광야에서 보이지 않는 하나님만을 보고 따라갔던 모세는

오늘날까지 우리 신앙의 모델로 살아 있는 반면,

눈에 보이는 것만 추구했던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출애굽하였으나

가나안땅을 얻지 못한채 광야에서 죽고 말았습니다.

 

유대 광야에서 하나님과 말씀만을 쫓던 예수님께서는

죽음을 깨트리시고 만인을 위한

생명의 구주, 부활의 주님이 되셨습니다.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14;6)


광야에서 사탄을 제압하시고 죽음에서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안에서만 우리가 이 광야 세상에서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볼 수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반대로 말하면 우리가 예수안에 있지 않으면

하나님을 믿는다하면서도 어쩔 수 없이

보이는 세상의 것만 추구하는 우상숭배자가 될 수밖에 없다는 말입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셨기에 광야의 먼지로 사라질 수밖에 없었던

우리에게 죽음을 넘어 하나님나라의 소망이 주어졌고

하나님을 보고 하나님께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불러 주신 것이

하나님의 일방적인 은총이라면,

우리가 말씀과 기도를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고

그분 안에 거하는 것은 하나님의 부르심을 입은 우리의 책임입니다.

그 책임을 다할 때 광야에서 사탄을 제압하신

예수 그리스도안에서 비로소 우리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날마다 보고 나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광야 길을 걷는 우리의 인생은 영원한 가치를 지니게 될 것이며,

우리 모두 이 광야 세상에서 지행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세상에 밝히 보여주는

진정한 광야 교회가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