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기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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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전26장_결박된 것 외에는 나와 같이 되기를
- 느헤미야강
- 2019-0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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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220(새벽기도회)
결박된 것 외에는 나와 같이 되기를 <행전26장>
헤롯 아그립바 왕의 요청으로 베스도 총독에게 제안한 바울 청문회장에서
바울은 예수님의 죽으심, 다시 사심을 강조함으로 변론을 마쳤습니다.
그와 동시에 베스도 총독은 ‘네가 미쳤도다’ 했습니다(24절).
베스도가 보기에 죽은 사람이 살아났다는 것을 믿는 것,
거기에 몰두하는 것은 미치지 않고는 불가능하다고 여겼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그 말은 참되고 온전한 말이라고 재차 선언합니다
그러나 무엇인가에서 몰두하는 것이 미쳤다고 한다면
바울은 예수님께 미친 사람이었습니다.
십자가의 제물로 죽으심으로 자신의 죄값을 대신 치루어주신 예수님!
죽음의 권세를 깨뜨리시고 다시 사셔서 자기앞에 영원한 생명의 길을 열어주신 예수님!
진리, 생명의 빛으로 자기 발걸음을 밤낮으로 이끌어주시는 예수님!
바울은 그 예수님의 증인으로 사는 것보다 더 가치있는 일은 없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일평생 예수님을 위해 살았습니다..
먹어도 예수님을 위해, 길을 걸어도 예수님을 위해,
잠을 자도 숨쉬어도 예수님을 위해,
모진 박해에도, 영광받아도 예수님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심지어 죽어도 예수님을 위해, 오로지 에수님께만 미친 삶을 살았습니다.
그것이 3일 만에 다시 사신 예수님안에서
자기 인생을 가장 존귀하게 가꾸는 것임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런 예수님이라면 미치지 않는 것이 이상한 것입니다.
바울의 최후 변론은 29절입니다.
“바울이 이르되 말이 적으나 많으나 당신뿐만 아니라
오늘 내 말을 듣는 모든 사람도 다 이렇게 결박된 것 외에는
나와 같이 되기를 하나님께 원하나이다 하니라”
바울은 청문회에 있는 사람들을 향해 선언했습니다.
‘결박된 것 외에 모든 사람도 다 나와 같이 되기를 원하나이다’
나와 같이 되기를 원한다.
이와같은 말은 2차 전도여행 중에 기록한
고린도전서에서 언급한 바 있습니다.
“나와 같이 모든 일에 모든 사람을 기쁘게 하여
자신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고 많은 사람의 유익을 구하여
그들로 구원을 받게 하라.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가 된 것 같이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가 되라”(고전10:33-11;1)
고린도교회에 편가르는 일로 사람들이 실족하는 일들이 일어났고
복음 가지고 자기 이익을 위해 행동한 까닭에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걸림돌 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을 걸림돌이 아닌 유익을 주고,
그들로 하여금 구원받게 하는 삶을 살라고 이 말을 했습니다.
이 말은 2차전도 여행 중 고린도를 방문해서 복음을 전했고
그곳에 교회를 세웠기에 나를 본 받는자 되라고 권면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 청문회장은 사정이 다릅니다.
그리스도인은 단 1명도 없었습니다.
바울과 신분이 다릅니다.
청문회장에 있는 그들 모두는 로마제국 식민지의 땅인
이스라엘에서 최고의 지배자들입니다.
그들보다 부귀영화 누릴 사람도 없습니다.
그들앞에 서 있는 바울을 2년 동안 옥살이로 걸인 같은 모습이었습니다.
주머니에 동전한 닢 없는 그에게는 자랑할것이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외형적으로 그 앞에 있는 사람들을 부러워해야 합니다.
그런데 지금 정반대로 ‘구금당한 것 외 여러분
모두는 나와 같이 되기를 기도한다’고 선언했습니다.
바울에게는 세상의 ‘금과 은’은 없어도
매사에 예수 그리스도가 함께 하고 계셨습니다.
인간의 죄값을 치르기 위해 십자가에 죽으셨다 다시 살아나신
영원한 생명의 주님이 계셨습니다.
그에게는 영원한 진리의 빛인 예수님 말씀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고관대작들을 향해 나와 같은 사람되라고 한 것입니다.
예수 없는 인생, 아무리 외양이 화려해도 죽음 향한 행진일 뿐이요,
바울 자신은 그런 사람들을 예수님께 인도하는 증이이었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이 선언을 남기고 그 무대에서 퇴장했습니다.
본문 직후 로마로 출발하게 됩니다.
본문의 사람들은 이후 바울을 다시 보지 못했습니다.
만남은 종결되었습니다. 과연 그럴까요?
바울을 다시 보지 못했다고 바울의 퇴장이
흔적도 없이 증발한 것이 아닙니다.
바울의 퇴장은 그들에게 새로운 등장을 다가왔을 것입니다.
내가 구금 당한 것 외에는 나와 같이 되기를 원한다고
당당하게 선언하던 바울의 모습, 음성이 시간이 지날수록
마음에 되살아 났을 것입니다.
살아있는 인간은 누구나 인생무대에서 퇴장이 있습니다.
코 끝에 호흡이 멈추면 인생무대에서 퇴장해야 합니다.
직책, 모든 자리에서 퇴장해야 합니다.
그러나 인간의 퇴장은 반드시 새로운 차원의 등장으로 나타납니다.
가룟유다는 예수님을 팔아넘기고 자살로 인생을 마감했습니다.
그와 동시에 다시 등장했습니다. 진리를 짓밟는 인생이
얼마나 비참한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나와 같이 되기를 원한다 했던 바울은
로마에서 참수형을 당해 죽었습니다.
역사무대에서 퇴장했습니다.
그와 동시에 역사무대에서 다시 등장했습니다.
3일만에 다시 살아나신 예수님안에서만 영원한 생명이 있음을
그의 삶속에서 우리 모두에게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우리를 살리기 위해 예수님께서 죽으시고 부활하심을 통해
우리 자신을 되돌아 보기를 바랍니다.
본문 말씀이 주는 물러설 수 없는 도전이 있습니다.
우리는 세상적으로 가진것 없다해도 바울처럼 세상 사람들을 향해
여러분도 나와 같은 사람이 되기를 바란다고
당당하게 외칠 수 있는 진짜 그리스도인으로 지금 살아가고 있는가?
오늘은 어떤 의미에서든 우리에게도 퇴장하는 것 있다면
우리 어떤 의미로 다시 등장하게 될까요?
바울처럼 닮고 싶은 사람으로 등장할까요?
유다처럼 닮아서는 안될 반면교사의 모습일까요?
진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는 한 그의 퇴장은
새로운 등장으로 나타날 것이고 그 삶의 지평은 새롭게 될 것입니다.
우리이 죄 값을 지시기 위해 십자가에 제물로 죽으신
예수님으로 인해 우리의 옛 사람은 죽고 다시 사신 예수안에서
영원한 피조물 됨을 믿고 있습니까?
그렇다면 죽으심과 다시 사심을 믿는 우리는
우리가 마땅히 가야 할 믿음의 길을 함께 가야만 하지 않겠습니까?
우리에게 가진 것 없다해도, 보잘 것 없다해도
바울처럼 세상 사람을 향해
여러분이 우리처럼 살아가기 바란다고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길 당당히 걸어갈 때 우리 호흡이 멈추는 순간
퇴장으로 끝나지 않고 새로운 등장이 될 것입니다.
그 결과 역사 지평이 새로워 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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