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기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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롬16장_동역자와 교회의 참모습
- 느헤미야강
- 2019-0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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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서 16장을 통해서 주신 은혜가 너무 많습니다.
로마교회의 27명의 성도들과 고린도교회 8명의 성도들의 이야기
이들 교회공동체를 구성한 사람들의 신앙이야기가 몇 단어들에게
고스란히 담아 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첫 시작인 뵈뵈와 여인들의 이야기.
누군가에게는 많이 수고했다는 표현들,
아버지와 아들뻘되는 바울과 디모데의 동역자됨이
교회의 방향을 보여주는 것 같기도 하고
서로 잘 모르는 로마교회와 고린도교회 성도들이
바울을 매개로 하여 문안함으로 하나됨을 보여주는 것.
왜 로마서의 마지막이 이렇게 기록되었을까 등등..
그 많은 은혜중에 두가지 짧은 묵상과 은혜를 나눕니다.
“너희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나의 동역자들인
브리스기와 아굴라에게 문안하라 그들은 내 목숨을 위하여
자기들의 목까지도 내놓았나니 나뿐 아니라
이방인의 모든 교회도 그들에게 감사하느니라”(3,4절)
1.
바울이 브리스가와 아굴라를 자신의 동역자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동료와 동역자는 다릅니다. 같은 사무실에서 일하는 사람은
동역자라 하지 않고 동료라고 합니다.
적어도 동역자라면 같은 생각, 같은 마음, 같은 목적을 가지고
함께 일하는 사람을 가리켜 동역자라고 합니다.
그런데 신앙인으로 동역자가 되기 위해서는 한 가지가 더 있어야 합니다.
바울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나의 동역자’(3절)라고 했듯
함께 그리스도안에 있어야 합니다.
같은 신앙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진리의 길을 걸어가는데는 동역자가 필요합니다.
혼자서는 진리의 삶을 완성시켜 나갈 수 없습니다.
위대한 사도 바울에게도 동역자가 필요했습니다.
예수님도 제자들을 동역자로 여기며 함께 하셨습니다.
우리 역시 신앙의 동역자가 있어야 합니다.
아굴라 부부가 바울을 위해 생명을 걸었던것처럼
우리도 서로를 위해 모든 것을 아낌없이 버릴 수 있는
동역자가 되어 주고 있는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아굴라 부부가 어떻게 바울을 위한
신실한 동역자가 되어 줄 수 있었습니까?
바울이 참된 진리의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꽃이 나비를 찾아 다니는 법은 없습니다.
꽃은 향기만 풍기면 아무리 그늘진 곳에 있다 해도 나비가 찾아옵니다.
진리가 사람을 따라 다니지 않습니다.
진리가 진흙속에 감추어져 있어도 그것이 진리임을 아는 사람은,
그것을 찾으러 갑니다.
내가 정말 진리의 사람이 되면 진리의 동역자가 모입니다.
내 주위를 둘러보았을 때 진리의 동역자가 없다면
나 자신의 삶을 성찰ㄹ하고 바꾸어야 합니다.
2.
5절 상반절입니다. “또 저의 집에 있는 교회에도 문안하라”
브리스가와 아굴라의 집이 예배당으로 사용되었고
그 가정이 교회였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2천년 전 로마 교회는 예배당이 없었고 각 가정이 교회였습니다.
그 가정들이 모여 하나의 지역교회를 이루어 갔습니다.
이 부분과 관련해서 2가지를 생각하고 도전합니다.
첫째, 교회는 건물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들의 모임이라는 것입니다.
초대교회가 오늘날 수많은 교회들의 본이 되는 이유는
건물이 멋지거나 아름다워서가 아니라
교회를 이룬 교인들의 삶이 은혜로웠기 때문입니다.
다른 교회에 실망한 많은 성도들이 소문을 듣고
우리 교회를 찾아온다면
우리 교회를 이루고 있는 사람들에 대한 기대 때문입니다.
우리교회가 초대교회처럼 이상적이고 은혜로운 교회가 되고자 한다면
교회를 이루는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참된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합니다.
둘째, 그리스도인의 가정은 아름다운 교회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교회역사를 보면 가정과 가정이 모여
오늘날과 같은 조직적인 교회가 되었습니다.
따라서 어느 교회든지 바람직하고 아름다운 교회가 되기 위해서는
그 교회를 구성하고 있는 단위세포인 가정이
바른 교회가 되지 않으면 불가능합니다.
대개 예배당 안에서의 우리 모습과 가정에서의 우리 모습은 다릅니다.
우리 가정이 교회로 가꾸어지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우리 가정을 교회로 가꾸기 위해
어떤 노력과 애를 쓰고 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의 가정이 교회가 되려면,
가족끼리 그리스도 안에서 신앙을 나누고
사랑을 나누는 훈련을 해야 합니다.
신앙과 사랑은 훈련을 거치지 않고는 절대 성숙되지 않습니다.
미움은 그냥 놔두어도 자랍니다.
그러나 신앙과 사랑은 이내 소멸되고 맙니다.
3.
7절, “내 친적이요 나와 함께 갇혔던
안드로니고와 유니아에게 문안하라
그들은 사도들에게 존중히 여겨지고
또한 나보다 먼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라”
안드로니고와 유니아는 바울보다 먼저 예수를 믿은 사람입니다.
그들이 지금 바울에게 복음을 배우고 있습니다.
자신들이 먼저 믿었으니 바울이 말하는 것을 듣지 않으려 했다면,
그들은 로마서에 담겨 있는 복음의 진수를 접해 보지 못하고
그 겉만 핥다가 인생이 끝났을지도 모릅니다.
그들은 나중 믿은 사람의 말에 귀 기울일 줄 알았던
겸손한 사람들이었습니다.
나중 믿은 바울이 처음부터 복음을 가르친 것은 아니었습니다.
수년에 걸친 검증 기간을 거친 뒤에야
먼저 믿은 사람들이 나중 믿은 바울의 말에 귀 기울이고
그가 전한 복음에 자신들을 맡기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처럼 먼저 믿은 사람이 나중 되고 나중 믿은 사람이
그리스도안에서 먼저 되는 이 하나님의 법칙을 깨달으면,
우리는 세월이 흘러도 교만에 빠지지 않고
겸손히 깨어 있는 그리스도인으로 살아 갈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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